‘펭귄북’의 정체성 만든 아트 디렉터 ‘펭귄맨’들의 활약상
‘펭귄북’의 정체성 만든 아트 디렉터 ‘펭귄맨’들의 활약상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7.10.1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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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출판사의 1935년 문고판 『애리얼』 표지

[독서신문] 1935년 설립된 펭귄 출판사. 영국에서 처음 생긴 대규모 문고판 출판사다. 설립자 앨런 레인이 첫 문고판을 낸 이래 그들이 만든 책 표지들은 영국 문화의 일부이자 디자인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지금까지 낸 책만 해도 수만 권이다. 펭귄의 표지 디자인은 이제 하나의 고전이 되어 사람들은 모두 펭귄의 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필 베인스는 그중에서도 500여 개 표지를 차용해 1935년부터 2005년까지의 펭귄 북디자인을 살펴본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은 결코 펭귄 출판사의 홍보책자가 아니다. 단지 펭귄 출판사의 발전과 그들이 낸 책,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커다란 윤곽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 제목 스타일, 판형과 로고의 변화 등을 살펴보면 펭귄이 어떻게 디자인 고전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펭귄의 7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그 겉모양을 결정하는 데 기여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의 역할, 그리고 이를 둘러싼 영국의 전반적인 출판 상황, 표지 디자인의 발전상을 상세히 기록했다. 또, 디자이너들의 연대기와 그들이 만들어낸 책들을 보면서, 펭귄이 어떻게 표지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했는지를 밝힌다. 

1971~1972년에 출간된 펭귄 출판사의 교육 총서

* 펭귄의 설립 초기에는 디자이너와 아트디렉터, 인쇄업자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았다. 앞표지를 세 부분으로 나눈 수평선과 펭귄 로고 또한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제작부장 에드워드 영이 만들어낸 것이다. 색은 장르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됐는데 오렌지색은 픽션, 녹색은 추리소설, 어두운 청색은 전기문학, 선홍색은 여행과 모험소설, 그리고 빨간색은 희곡을 각각 상징했다. <19쪽>

* 1947년 3월 얀 치홀트(당대 최고 타이포그래퍼)는 드디어 펭귄의 타이포그래피와 생산 전반을 책임지는 일을 맡아달라는 펭귄사 사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펭귄 타이포그래피의 모든 면을 유심히 관찰했다. 본문의 타입세팅 방식, 로고의 모양, 그리고 가장 중요한 표지 형식까지. 펭귄에서 일했던 2년 동안 그는 모든 인쇄업자들에게 타입세팅의 표준 규칙을 재교육시켰다.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원칙은 ‘대문자 사이의 자간은 반드시 일일이 손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50~51쪽>

* 파세티는 추리소설 총서를 세 명의 디자이너들(브라이언 소웰, 데릭 버솔, 로멕 마버)에게 시안을 의뢰했고, 그중 마버의 안을 채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버는 셋 중 유일하게 단 한 번도 펭귄 책을 디자인한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새로운 표지-기본적으로 타이포그래피는 일관된 톤을 유지하되 제목의 길이에 따른 적절한 변화를 줘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배치 하에 제목과 저자 이름을 다른 색상으로 구분해준다면 독자들이 보다 쉽게 인지할 것이다. 펭귄만의 ‘그리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리드는 생산의 효율 문제 또한 상당 부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98쪽>

이 책은 임프린트 숫자만 해도 50여 개를 헤아리는 거대 출판 그룹 ‘펭귄’의 70년 역사를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얀 치홀트, 한스 슈몰러, 로멕 마버 등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펭귄맨’들의 역할도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 

만약, 한국의 출판사를 대상으로 이런 책을 쓴다면 어느 곳이 가장 적합할 곳인지 궁금해졌다는 옮긴이의 말이 인상적이다. 옮긴이 김형진 씨는 을유문화사, 민음사, 문학과지성사, 열린책들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정병규, 박상순, 정보환 등 걸출한 아트 디렉터들을 가졌던 민음사가 적절하다고 했다. 출판사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아트 디렉터’ 즉 북디자이너들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하는 책, 『펭귄 북디자인』이다. / 이정윤 기자 

『펭귄 북디자인 1935-2005』 
필 베인스 지음 | 김형진 옮김 | 북노마드 펴냄 | 263쪽 | 18,000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33호 (2017년 10월 19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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