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다시보기]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 이래서 오늘날 더욱 생생하다
[역사, 다시보기]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 이래서 오늘날 더욱 생생하다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10.06 1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다산 정약용은 조선 500년이 배출한 국가대표급 학자다. 그가 쓴 글은 마치 산더미 같아, 한 사람이 썼다고는 짐작할 수도 없는 분량이다. 방대한 독서, 폭넓은 사유 그리고 열정적인 집필이 다산을 만들었고 오늘날도 흠모의 대상으로 남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를 숭상하는 이들은 그의 학문에 앞서 인간됨을 먼저 손꼽는다. 다산의 생각과 철학은 제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민 교수가 다산이 제자들에게 남긴 가르침을 발로 뛰어 모으고 머리를 짜내 드디어 글로 엮어 책으로 냈다. 『다산의 제자 교육법』이다.

토막글이라 읽기에 부담 없고 정민 교수가 친절하고도 감칠맛 나는 해설을 붙여 놓아 세월의 간격을 좁혀 이해를 충분히 돕고 있다. 책 내용을 발췌해 요약 정리한다.

벌보다 나비! 다산에게 꿀벌 한 통이 있었다. 벌이란 놈들은 방을 만들어 양식을 비축하는데 염려하고 근심함이 깊었다. 그런데 나비를 보니, 둥지나 비축해 둔 양식도 없는 것이 마치 아무 생각 없어 보였다. 벌은 비축해둔 것이 있어 마침내 큰 재앙을 부르고 창고와 곳간은 말벌 같은 약탈자에게 털리고 무리는 살육자들에게 반쯤 죽는다.

반면 나비는 아무 근심 없이 천지 사방을 거침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계획성 있고 부지런한 벌처럼 살라고 할 줄 알았는데 다산은 예상을 빗나갔다. 결국 부는 재앙을 부르고 가난은 오히려 맑은 명예를 선사한다. 깃털이 화려한 공작은 그로 인해 사람의 손에 붙잡히고 사향노루는 제 배꼽을 물어뜯어 재앙을 멀리한다. 지혜를 감추고 부귀를 손에서 내려놓을 때 재앙에서 멀어진다.
 
어리석은 하인을 둔 주인 이야기. 주인 왈 “사고를 치는 것은 괴롭지만 똑똑해서 주인 앞에 기세를 부리는 종보다 낫다. 저 녀석은 제가 부족한 줄 알아서 딴 맘 안 먹고 내 집에 붙어서 그나마 내 일을 도와준다. 그가 좀 멍청하고 모자란 것이 오히려 다행 아닌가”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높은 결실을 주문하는 것은 잘못된 욕심이다. 아랫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라는 말씀.

집안을 일으키는 두 글자가 있다. 첫째가 근(勤), 즉 부지런함이고, 둘째는 검(儉), 곧 검소함이다. 하늘은 게으르고 나태한 것을 싫어해 반드시 복을 주지 않는다. 하늘은 사치스런 것을 싫어해 반드시 복을 내리지 않는다. 유익한 일은 일각도 멈추지 말고, 쓸데 없는 꾸밈은 터럭 하나라도 꾀하지 말아야 한다.

근(勤)과 검(儉)은 정약용의 일상을 지배한 사상으로 아들에게도 이를 매우 강조한 바 있다. 없어도 계획성 있게 단계를 밟아 하나하나 갖춰나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족한 것이 채워져서 주리고 헐벗는 일이 없게 된다.

# 가난한 선비라도 ‘땅 파먹는 재주’는 배워야 한다. 귀족의 후예도 한동안 벼슬을 못하면 몇 대 이후에는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농사는 힘들고 세금도 많으니 모름지기 원포(園圃)로 보충해야만 겨우 견딜 수 있다. 원(園)은 과실을 심는 것, 포(圃)는 채소를 심는 것이다. 단지 집에서 먹으려고만 할 게 아니라 장차 내다 팔아서 돈으로 만들라는 말이다.

큰 고을 옆에서 과일나무 열그루 키우면 1년에 엽전 50꿰미(1꿰미는 동전 100닢, 즉 5000닢, 50냥)을 얻을 수 있고, 채소 몇 두둑이면 1년에 20꿰미를 거둘 수 있다. 뽕나무 40~50그루 심어 누에를 대여섯 칸 기른다면 30꿰미 물건이 된다. 매년 100꿰미면 주림과 추위를 구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가난한 선비가 마땅히 알아두어야 할 바다.

# 오직 독서다. 오직 독서 한 가지 일만은 위로는 성현을 뒤쫓아 짝하기에 족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길이 일깨울 수가 있다. 음으로는 귀신의 정상에 통달하고 양으로는 왕도와 패도의 계책을 도울 수가 있어 짐승과 벌레의 부류를 초월해 우주의 큼을 지탱할 수가 있다.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만 뜻을 두어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쳐, 몸뚱이가 식기도 전에 이름이 먼저 사라지는 자는 짐승일 뿐이다. 짐승으로 사는 것을 원한단 말인가?

# 멋진 글을 쓰고 싶은가? 하루는 눈빛이 형형한 열아홉살 이인영이 다산을 찾아왔다. 이인영은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길 수만 있다면 어떤 고통도 감내하겠다며 부디 거두어 달라 청했다. 다산은 “문장이라... 뛰어난 문장이 될 수만 있다면 일생 곤궁해도 상관없다고 했는가? 거참 딱한 노릇이로군”

다산의 말이 이어진다. “문장은 결과일 뿐, 목적이 아닐세. 문장은 얼굴 위로 오른 불콰한 술기운에 불과한 것이야. 뱃속에 든 술기운이 없으면 얼굴이 붉어지는 법이 없네.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시고 얼굴만 붉어지는 일은 없단 말일세.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어 영양상태가 좋아지면 피부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법. 아무 것도 안먹고 피부가 고와지는 경우는 없네. 그러니까 바탕 공부는 맛난 음식의 영양분이고, 향기로운 술의 더운 기운인 걸세. 문장은 그것이 얼굴 위로 드러난 윤기요 홍조일 뿐이라네.

한 번 더 말해주겠네. 문장이란 결과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야. 그러니까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네. 과정 없이 결과만 얻고 싶다고 했나? 그런 건 세상에 없네” 이인영은 풀이 죽어 돌아섰다. 다산은 참으로 모질고 맵게 충고했다. 충고만으로 모자라 긴 글로 써주었다.

# 공직자가 새겨야 할 여섯 글자. 옛날에 소현령(蕭縣令)이 부구옹(浮丘翁)에게 ‘다스림’에 대해 물었다. “내게 여섯 글자의 비결이 있네. 그대가 사흘간 재계하면 들을 수 있네” 소현령은 그렇게 하고 청했다.

한 글자를 주었는데 염(廉)자였다. 두 번 절하고 다시 청했다. 이번에도 ‘염’자였다. 다시 두 번 절하고 청했다. 역시 ‘염’자였다. “이것이 이토록 중합니가” 소현령의 질문에 “자네가 하나는 재물에다 쓰고, 하나는 여색에다 쓰고, 또 하나는 직위에다 사용하게나”라고 부구옹은 답했다. 소현령은 나머지 세 글자를 얻으려고 사흘간 목욕재계했다.

부구옹은 말했다. “나머지 세 글자도 모두 ‘염’일세” 옹이 설명했다. “청렴에서 밝음이 나오는 법일세, 사물이 실정을 숨길 수가 없게 되지. 청렴에서 위엄이 나온다네. 백성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지. 청렴하면 강직하니 윗사람이 얕잡아볼 수 없게 된다네. 이런데도 다스리기에 부족하겠는가?” 소현령이 일어나 두 번 절하고 띠에다 이를 써서 떠나갔다. 이른바 ‘육자염결’이다. /엄정권 기자

『다산의 제자 교육법』
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 316쪽 | 1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3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