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시인’ 다시 시를 말하다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풀꽃시인’ 다시 시를 말하다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10.0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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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가장 사랑받은 교보 글판은 무엇일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그의 시는 쉽게 읽히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느 마을의 벽화에서, 동네 담벼락에서 한번쯤은 봤을법한 시들은 풀꽃처럼 생명력이 강하다.

‘풀꽃 시인’이 다시 시를 말한다. 시의 기본을, 시인의 자세를, 시를 둘러싼 세상을 들여다봤다.

그는 배우고 가르치느라 55년 동안 학교를 다녔다. 다시는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결심은 빗나갔다. 시인은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전국의 학교를 돌면서 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강연장에서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많아 이 글을 썼다. 자잘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여기서 떠올린 사람이 출판사의 한 젊은 편집자, 정혜리 씨다. 이 책은 여러 차례 시인의 책을 편집해준 그에게 말을 건네듯 쓴 기록들의 모음이다.

책머리는 ‘혜리에게’로 시작한다. ‘혼자서도 꽃으로 / 피어날 줄 아는 너에게 / 지구의 이편에서 잠시 쓴다’고 했다. ‘잠시 쓴’ 글들은 무엇보다 간결하고 아름답다.

‘아이에게 물었다 / 이담에 나 죽으면 / 찾아와 울어 줄 거지? // 아이는 대답 대신 /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 주었다.’ 시인은 경기도 용인의 한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자신의 시 「꽃그늘」을 들려주었다.

여학생 하나가 우는지 고개를 푹 떨궜고, 그 옆자리 친구가 여학생의 등을 쓸었다. 시가 아이와 통했고, 친구의 마음과도 통한 순간이었다. 시인은 “저 아이들은 오늘의 나와 나의 시를 충분히 기억해 줄 것이다.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 목숨이 되는 것이고 나의 시 또한 살아서 숨 쉬는 글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숨 쉬는 글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는 힘 뺀 시, 헐거운 시가 좋다고 봤다. 쉽고, 짧고, 간결하게, 단품요리처럼 한 가지 이야기만 쓰라는 말이다.

책에서 시인은 자신이 지난 2007년 ‘죽을 병’에 걸렸다 살아났는데 그 뒤부터 시가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시에 들어갔던 힘이 빠져 버렸다. 의도함 없이 그냥 써지는 대로 쓴다. 주로 입말체로 쓴다. 그것도 짧은 형식으로 쓴다. 그러다 보니 헐거운 나의 시가 더욱 헐거워졌다.” 평론가나 시인들이 아니라 독자가 좋아하는 시는 여기서 탄생했다. 시를 모르는 사람도 좋아할 수 있는 시를 쓰게 된 것이다.

시인은 모든 세대가 자신의 시를 좋아하고, 특히 어린 세대가 즐기는 일은 ‘수지맞는 일’이라고 반긴다. 학교 식당에 점심을 얻어먹으러 갔을 때 밥 푸던 아주머니가 자신을 보더니 젊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늙은 사람이라 놀랐다고 말한 일화도 전한다. 강연장에서 왜 그렇게 늙은 사람이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자주 듣는다는 푸념이다.

그가 꿈꾸는 것은 어린 마음의 시, 조그만 시, 조그만 시인이다. 이를 위해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를 불러내 대신 보고 말하게 한다. 그게 나이 들어서도 계속 어린 마음으로 어린 사람의 시를 쓰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명한 시, 유명한 시인이기보다는 유용한 시인이고 싶었고 유용한 시를 쓰고 싶었다”는 그는 글이 지닌 치유능력을 강조한다. 2007년 오랜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그는 집에서 요양을 하며 책을 썼다. 집필을 끝내자 병원생활 중 겪은 고통과 불안을 깡그리 잊을 수 있었고 마음이 가지런해지면서 내부 풍경이 깨끗해졌다.

“글쓰기는 대단한 해결능력이 있다. 앞으로 살아가다가 힘든 날이 있거든 글쓰기를 시도해보라. 여기서 글쓰기라고 해서 대단한 글쓰기는 아니다. 짧은 형식의 글이라고 해도 좋겠고 일기 쓰기라 해도 좋을 것이다. 글쓰기는 분명 인생에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 안의 어린아이를 불러내어 자신에게 필요한 시, 작게나마 남들한테도 도움이 되는 시, 어둡고 추운 날 마음속에 켜놓는 불빛 같은 글을 쓰라는 주문이다. 이어 그는 자신의 시들에게도 당부한다. “나의 시여. 나를 떠나서 멀리, 멀리까지 가거라. 될수록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가볍게 날아가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꽃씨가 되어 싹터라.”

마지막으로 시인은 소망한다. 그가 시와 인생, 사랑에 대해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이 땅의 혜리들에게 가서 마음의 꽃다발이 되고 작은 위로가, 한 모금의 물이 되기를. 혼자서 꽃으로 피어있을지라도 힘들어하지 말기를. / 정연심 기자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나태주 지음|푸른길 펴냄|284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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