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다시 보기] 조선시대 음식에 숨은 사랑, 음모, 배신… 『음식 속 조선 야사』
[역사, 다시 보기] 조선시대 음식에 숨은 사랑, 음모, 배신… 『음식 속 조선 야사』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09.3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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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간장 게장, 조랭이 떡국, 숙주나물, 콩나물 국밥, 빈대떡, 짜장면….’ 우리 주위를 둘러싼 흔한 음식 속에 왕과 기생의 사랑이 들어있다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음모의 음식으로 사용된 것은 무엇일까. 배신자를 기억하기 위한 음식은? 마지막 남은 고려 왕족이 이성계에게 보낸 저주의 표식은? 밥도둑 간장게장을 먹고 독살된 왕은 누구일까.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 속 조선 야사』는 조선시대의 음식에서 역사책에는 없는 진짜 역사 이야기를 풀어냈다. 저잣거리에서부터 궁궐에 이르기까지 조선 구석구석을 뒤져 음식을 찾아내고, 음식에 깃든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익은 개고기를 쪽즙에 담가 7일 동안 먹으라.’ 조선시대 식이요법서에 실린 항문 주변에 난 부스럼 치료법이다. 1487년, 성종 18년에 의원 전순의가 지은 『식료찬요(食療纂要)』에 나온다. 이 식이요법서는 개고기와 관련한 요리법을 가장 먼저 다룬 책으로 꼽힌다.

책에서는 살생하여 육식하는 것이 금지된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에 들어서부터 개고기를 즐겨먹은 것으로 봤다. 조선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궁궐에서도 개를 잡아먹었다. 끓이거나 찌는 것 외에 어떤 요리법이 있었을까. 

1796년 정조가 쓴 『일성록』에는 개고기 찜이 등장한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개고기 찜을 진찬으로 올렸다. 궁궐음식으로도 개가 이용된 것이다.

현종 11년, 1670년에 안동 장씨 장계향이 한글로 쓴 요리서 『음식디미방』은 개로 만든 순대인 개장을 비롯해 개장꼬치 누르미, 개장국 누르미, 개장찜, 누렁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을 소개했다.

다산 정약용의 차남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  「8월조」에는 ‘며느리 말미받아 본집에 근친갈 제 /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라는 내용이 실렸다. 친정집 갈 때 선물로도 쓸 만큼 개고기는 값어치가 있었다.

밥도둑 간장 게장은 경종을 앗아간 도둑이었을까. 경종은 1724년 8월 25일, 창경국에서 복통을 호소하다 세상을 떴다. 동생 연잉군이 바친 게장과 생감을 먹고 독살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의들은 게장과 생감을 함께 먹는 것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바친 연잉군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다.

간장게장이 검은 음모의 도구였다면, 타락죽은 애인의 뽀얀 속살을 연상시키는 은밀한 음식이었다. 왕과 왕의 연인이 거사를 치른 후 나눠먹던 통정의 음식이었다. 내의원 의녀인 약방 기생은 한 달에 한 두 번 침통을 들고 고종의 침소를 찾았다. 이들은 정분을 나누며 긴 밤을 지새운 후 멥쌀을 곱게 갈아 우유를 넣고 만든 타락죽으로 원기를 보충했다. 

기력을 더하는 음식으로는 승기악탕이 꼽힌다. 기생을 능가하는 탕, 승기악탕은 1469년과 1477년 사이 허종이 대접받은 음식을 말한다. 허종이 여진족을 물리치러 함경도에 이르자 백성들은 ‘바다의 여왕’ 도미에 갖가지 양념을 더한 음식을 진상했다. 허종은 백성들에게 음식이름을 물었으나, 아직 이름이 없었다. 허종은 크게 기뻐하며 기녀와 술보다 이 음식이 낫다는 뜻에서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고 불렀다. 

타락죽이나 승기악탕이 임금의 수라상에만 오르는 고급음식이었다면 장터국밥은 조선시대의 패스트푸드였다. 양반집에서 느긋하게 끓여 먹던 반갓집 곰탕과 달리 장터국밥은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음식이었다. 솜씨 좋은 주모가 주막이나 장터에서 큰 가마솥에 국밥을 끓이면, 갈 길 바쁜 보부상이나 나그네들이 사먹었다.

조선시대에도 남자 셰프가 있었을까.

궁중음식의 총책은 남자인 ‘반감(飯監)’이 맡았다. 반감 아래로는 각색장들이 분업체제로 조리를 했다. 육류와 밥, 구이, 두부, 술, 차, 떡, 찜 담당자가 따로 있었다. 힘 센 남자 요리사는 큰 잔치에서 더욱 필요한 존재였다. 잔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숙수(熟手)’로, 숙수의 작업반장을 대령숙수(待令熟手)로 불렀다. 1907년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계기로 강제 폐위되자 많은 숙수들이 궁궐 밖으로 쫓겨났다. 이들이 차린 궁중 요리집은 3공화국까지 권력을 쥔 정치인들의 밀회장소로 사용됐다.

이 책은 조선의 음식에서 정치사가 버무려진 음식으로 조랭이 떡국, 숙주나물, 젓갈, 인절미, 간장 게장, 탕평채 등을 소개했다. 시대가 만들어낸 음식으로는 간고등어, 오이소박이, 고구마, 자장면을 들었다. 먹고 살기 바빴던 조선 사람들의 일상은 설렁탕, 개장국, 삼계탕, 팥 시루떡에 담겨 있다고 봤다. 타락죽과 약과, 장터국밥, 곱창과 순대에서는 신분을 읽고, 평양 냉면, 동래 파전, 콩나물국밥, 승기악탕에서는 지역의 색깔을 찾아낸다. / 정연심 기자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 속 조선 야사
송영심 지음 | 팜파스 펴냄 | 340쪽 |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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