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찾사] 우리의 일상을 뽀드득 닦아주는 친절한 소래섭 『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
[시찾사] 우리의 일상을 뽀드득 닦아주는 친절한 소래섭 『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3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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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읽어서 아름다운 시, 한 번 더 읽으면 경쾌한 채색화가 드러나는 시. 또는 읽으면 맑은 샘에서 목을 축이는 느낌을 주는 시, 한 번 더 읽으면 찌든 일상을 뽀드득 닦아내는 마법의 시도 있다.

이 책도 아름답고 깊이 있는 시를 담았다. 그러나 뭔가 다르다. 많이 확실히 다르다. 시를 고른 눈썰미야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국문과 교수니 의심할 바가 없다. 시 한편 싣고 뒤에 달아놓은 ‘해설’이 명품이다. 시를 잦는 사람들(시찾사)이라면 읽어야 마땅하고 가져야 마땅할 책이다. 소래섭 교수가 지은 『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 말이다.

김혜순 「배달의 기수」를 보자. “서울에 살면 / 태양도 배달 온다 / 구름도 배달 온다 / 바람도 배달 온다 / 나는 오늘 창문을 열고 / 퀵 서비스로 도착한 눈보라를 풀어 본다 // 정오에 삼척에 사시는 / 엄마가 보낸 깊은 바다가 도착했다 / 여기가 깊은 바닷속 어느 집 안방이냐 / 심해에서 온 게들이 두 눈을 껌벅였다(…) 택배 꾸머리를 박차고 나온 초승달이 / 미끄덩거리며 비상계단을 오르는 소리 / 식반을 머리에 인 아저씨가 / 빈 그릇 내놓으라 / 주먹으로 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

저자 소래섭은 바로 시 해설에 들어가지 않는다. 먼저 2010년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82%라고 소개한다. 도시와 시골의 삶이 많이 다르다는 설명을 잠시 풀어놓고 도시에서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낯선 사람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설렘보다 피곤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이 설명을 하면서 독일 사회학자 (낯선 이름) 게오르그 지멜을 등장시켜 대도시의 특징 중 하나는 둔감함이라는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는 “시적인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멜이 지적한 둔감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겨우 저자는 먼저 소개한 시 해설의 힌트를 보여준다. 장장 3쪽 절반이나 독자를 끌고 왔다. 이윽고 해설이 시작되나 하는 참에 이어지는 중학교 시절 읽었다는 「북청 물장수」 해설이다. 아, 바로 ‘배달’이라는 키워드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청각 이미지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배달의 기수」 한 편을 읽으려니, 아니 해설하는 저자의 품이 보통이 아니다. 통계청 발표를 인용(신문 스크랩은 아니겠고 인터넷 뒤졌을까)하면서 독일 사회학자의 학문성과를 언급하고 이어 「북청 물장수」를 등장시키더니 최근의 배달문화까지 언급하곤 해설이 끝났다. 장장 9쪽이다. 시 한편을 풀어내기 위해 많은 지식과 주변 자료를 긁어모아 보석처럼 박아 놓았다.

그래서 소래섭의 손을 거치면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나무 같던 시는 과육이 넘치는 열매가 그득하고 그늘이 풍요로운 나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 한편 해설에 사회학적 접근 또는 인문학적 포용
깊이있고 폭넓고 무엇보다 친절,  “삶을 성찰할 기회”

이런 시는 어떻게 풀어낼까.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보자.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 한계령쯤을 넘다가 /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 오오, 눈부신 고립 /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소래섭의 해설, 어떤 키워드로 풀어낼까, 궁금증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튀어 나왔다.

“1592년 4월 13일 (…) 조선을 침공한 일본은 (…) 놀랍게도 이전까지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은 별다른 저항도 못한 채 후퇴하고 맙니다” 일본군 패배 원인 중 하나는 날씨다. 당시 일본군에는 남부 출신이 많은 것도 저자는 알고 있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는 겨울 추위가 우리에겐 독이 돼, 청나라군은 1637년 1월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공한다. 청나라군인 대부분은 만주 북부와 몽골 지방에 살던 기마민족이라는 것도 저자는 알고 있다.

이어 한계(寒溪)령의 지명 유래를 살피더니 시인이 말한 ‘눈부신 고립’을 대면할 수 있는 폭설을 언급한다. 시인의 그 고립은 ‘짧은 축복’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는 김광규 시인의 「이른 봄」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날씨를 소재로 했지만 독자들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시다. 여름 더위를 소재 삼은 황인숙 시인의 「아, 해가 나를」도 소개한다. 저자는 임진왜란 당시 날씨도 파악해야했고 일본군에 남부 출신이 많았고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에 북부지방 병사가 많았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시를 고르는 입장에서 빼기 어려운 명시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소개하고 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 //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해설한다.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을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나려 한다. ‘나타샤’라는 이국적 이름과 흰 당나귀가 우는 환상적인 풍경으로 인해 그 먼 곳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공간처럼 다가 온다”라고.

그러면 ‘푹푹’은 무슨 뜻일까? 어떻게 눈이 푹푹 내릴까? 그러나 누구나 이 시를 읽고 난 후에는 눈이 내릴 때마다 ‘푹푹’이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말도 들려준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백석 이후에 죽은 문장”이라고 호평했다. 좋은 시는 저절로 아름다운 구절이 떠오르고 입가를 맴돈다.

일반적으로 시인의 자질을 꼽는다면 관찰력과 상상력이 되겠다. 거기에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이어지고 성찰로 나아간다. 삶이 죽음에 기대고 있음을 시에서 볼 수 있다.

복효근의 「버팀목에 대하여」를 읽자.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 싹이 트고 다시 / 잔뿌리를 내립니다 //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 뿌려주기도 하지만 /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 이제는 /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 ”

어느 날, 태풍이 불어 나무가 쓰러지고 그 나무가 다시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을 받친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시인은 버팀목 또한 나무로 만들어진 각목이라는 사실을 관찰력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버팀목에 기댄 나무는 꽃을 피우면서 살아나고 자라지만 버팀목은 삭으면서 죽어 소멸로 이어진다. 시인은 이를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시를 해설하려고 소래섭은 성선설, 성악설을 꽤나 길게 설명한다.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라는 사람이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고안했고 히틀러는 이 말에 고무돼 수백만 유대인을 학살했고,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라는 주장을 더욱 확고히 굳히는 리처드 도킨스라는 학자 주장 내용도 들려준다.

더불어 슈테판 클라인의 저서 『이타주의가 지배한다』라는 책을 소개해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보다 더 잘 산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말한다.

『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 
소래섭 지음 | 해냄출판사 펴냄 | 292쪽 | 15,000원

복 시인의 시를 통해 사랑과 희생이야말로 또 다른 사랑과 희생을 낳는 원동력이 됨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를 소개하고 이런 식의 결론을 바로 낸다면 메마르고 성급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교과서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여러 사회학자와 그들의 저서를 소개하면서 친절하게 조곤조곤 설명한다. 이 시 뿐이 아니라 대부분 시를 이런 식으로 이해시킨다. 친절한 래섭씨.

외교학과를 졸업했다는 게 이런 데서 내공을 보이는 것 같다. 소래섭은 우리의 아침을 깨우고 가벼운 휘파람을 불어준다. 하루하루 삶이 좀 근사해지는 것 같다, 소래섭이 있어서.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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