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궁리』, 통일에 대한 한 개인의 열정과 고난…상상력이 문학을 뛰어넘었다
[리뷰] 『궁리』, 통일에 대한 한 개인의 열정과 고난…상상력이 문학을 뛰어넘었다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29 15: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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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는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는 시대다. 전쟁을 말로만 듣고 자란 세대, 먹고 사는 일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통일’이란 뉴스에서나 등장하는 추상적 관념어일 뿐이다.

그런데 남복희 작가의 『궁리』는 이미 빤한 얘기 같지만 실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통일' 문제를 건드리며 남북 관계에 대한 신선한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현재 국군방송 프로듀서 겸 아나운서인 작가의 다양한 경험이 만들어낸 이 스토리에서 인물들의 행동은 초인적인 신념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사소한 일로 시작한다. 거기에 어린 시절의 추억과 이후의 수많은 만남들이 가져다 준 체험이 하나의 아이디어로 엮인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한 사람의 깊은 생각이 우리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다.

방송국 PD로서 인기와 명망을 얻고 있던 '나온'은 한 모함에 빠져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배웠던 장기를 활용하여 새로운 인연을 맺고, 오히려 ‘가이아’라는 엉뚱하고 기발한 프로젝트를 창안하며 기회를 만든다.

북한에 부동산 투자 분위기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북한을 개방시키자는 발상의 기획이다. 그 과정에 장기를 통해 이미 친구가 된 기철과, 나온에게 이상하리 만큼 호의적인 석호라는 탈북 요원이 합류한다.

그러나 심기철은 탈북민으로 위장해 남한에 들어와 사업가로 성공한 북한 요원이었다.

어쨌든 계획은 난관이 잇따른다. 아군인줄 알았던 상사의 배신, 번복되는 프로젝트 진행 일정 등 갖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근차근 추진해나가던 일이 끝내 나온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궁리』
남복희 지음 세그루 펴냄 204쪽 15,000원

조국을 배신한 죄로 심기철을 처형하기 위해 남파된 기철의 친누이에게 심기철 대신 나온이 찔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나온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

결국 1년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어린아이 정도의 뇌 상태로 깨어난 나온은 새로워진 세상을 자신만의 정신적 채널 속에 갇혀 손뼉 치며 바라본다. TV에 나온 자신을 보며 밝게 웃는 그녀는 어쩌면 또 다른 세상, 즉 신세계를 꿈꾸는지 모른다.

타성에 젖어 그저 주어진 대로 살거나 눈치껏 사는 사람들 속에서 불의나 비리에 타협하지 않으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던 나온. 한 사람의 선하고 신선한 생각이 가져온 새로운 세상을 우리는 또다시 궁리하며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오랜 시간 방송국 프로듀서로, 아나운서로 활동해온 작가의 경험이 기존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흥미로운 글을 만들어냈다고 할까? 소설로만 읽히지 않을 글이다.

형태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내용 또한 기발하다. 비무장지대를 공연무대로 삼아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방송을 송출하자는 프로그램 기획에 대한 이야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만물의 어머니인 ‘가이아’ 라는 이름에서 따온 북한의 부동산 투자 계획 '가이아 프로젝트' 실행과 같은 스토리 전개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방송인답게 문자와 스크린의 제휴를 제안하는 듯한 과감한 구성으로 기존의 소설 양식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는 『궁리』는 문학 영역의 확장을 예고하는 점에서 값진 가을의 수확이라 할 만하다.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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