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은 소설집 등 책의 맨 뒤 또는 맨 앞에 실리는 ‘작가의 말’ 또는 ‘책머리에’를 정리해 싣는다.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는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나 배경 또는 소회를 담고 있어 독자들에겐 작품을 이해하거나 작가 내면에 다가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독서신문은 ‘작가의 말’이나 ‘책머리에’를 본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발췌 또는 정리해 싣는다. 해외 작가의 경우 ‘옮긴이의 말’로 가름할 수도 있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의사는 11살 때 나오지 않은 내 작은 어금니가 잇몸에 숨어 큰 어금니의 뿌리를 밀고 있다고 했다. (…) 11살 때 나올 어금니가 왜 나오지 않고 잇몸 속에 숨어 있었나요? 옆에 큰 어금니가 먼저 나오면서 자리를 차지해버렸기 때문이에요. (…) 잇몸에 누워 있던 작은 어금니는 큰 어금니 옆에 아주 작고 하얀 발목을 조심스럽게 내어 밀어 보였다.
맙소사. 이 나이에, 이가 나다니. 눈치 없고 방정맞은 것.
눈치 없고 방정맞을 것이란 이유로 나는 끝없이 주저했다. 평론가가 소설이라니. (…) 이 죽일 놈의 욕망은 늙지도 않는다.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고 욕망하고 상처 받고 잊어야 하는 오류들. 이것은 생이 주는 과로다. (…) 그러나 나는 이 속절없는 욕망의 흐름에 애써 항복하기로 한다.
(…)
수상한 소녀들의 사소한 사생활을 밝히고 싶었다. 웃기면서 슬프고 유쾌하면서도 쓸쓸한 이야기. 때로 질투거나 동지애, 자유거나 혹은 솔직함에 대한 것들. 과거의 냄새는 가끔 감춰진 감정을 강렬한 감정으로 휘몰아치곤 한다. 그러면 기억이 덜컹, 하고 두개골에서 툭 떨어지는 것이다. (…) 나는 내 십대의 소녀들을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그리고, 흙 속에 잘못 매장된 한 소녀, 혜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녀에게 닥친 폭력과 삶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이 이야기는 잘못 매장된 한 소녀에 대한 헌사다. 절망도 희망처럼 쓰다듬어주어야 하듯. 절망 속으로 걸어 들어가 희망을 만날 때까지 나는,
쓸 것이다. / 정리=황은애 기자
『란제리 소녀시대』
김용희 지음 | 은행나무 펴냄 | 288쪽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