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오전 7시. ‘의무’라는 글감이 찾아왔다. 오늘의 글감은 하현 작가의 『달의 조각』에서 따왔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의무가 되는 순간 버거워진다. 꿈도 취미도, 그리고 사람과 사랑도, 우리의 삶이 자주 버거운 것은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일상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무가 되었기 때문에”
나도 작가가 된 듯, ‘의무’에 관해 짧은 글을 써 본다. 다른 이용자들과 글을 공유하고 싶다면 ‘공개’ 버튼을 누르면 된다. 글감이 도착함과 동시에 몇백 편의 글이 쌓이고, 다른 이들은 ‘의무’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둘러본다. “내 등에 지어진 의무라는 것은 내 삶보다도 무거운 것이었고 상응하는 권리는 주어지지 않은 채 시간은 그저 날 절벽으로 밀고 있었다”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주로 감성적인 글들이 많다.
글쓰기 어플리케이션 ‘씀’을 활용한 기자의 후기다. 2015년 출시된 씀은 학교 선후배 사이인 이윤재 씨(27·UNIST 디자인 인간공학부 4년)와 이지형 씨(24·UNIST 컴퓨터공학 3년)가 만든 서비스다. ‘글쓰기’라는 공통 관심사를 갖고 있었던 두 사람은 약 한 달 정도의 토론과 세부 기획 과정을 거쳐 15년도 9월부터 앱 제작에 들어갔다.
이들의 목적은 기존 SNS에서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자신만의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두 달 정도의 제작 기간을 거쳐 15년도 12월에 씀 안드로이드 버전을 출시했고, 출시 일주일도 채 안 된 시기에 가입자가 2000명을 넘었다. 이때 두 사람은 이 앱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라는 확신을 가졌다.
오전 7시, 오후 7시에 한 번씩 찾아오는 글감은 어떻게 선정하는지 물었다. 이지형 씨는 “책에서 좋은 문장들을 먼저 찾은 뒤, 다시 그 문장 속에서 글감이 될 만한 단어나 구절을 찾는다. 특정한 직업군이나 연령대만 알 수 있는 소재는 피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한 글감당 평균 2000편의 글이 올라오고, 지금까지 총 400만 편의 글이 작성됐다고 한다. 가장 많은 글이 쓰인 글감은 ‘내일’이었다.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글쓰기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좋은 도구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씀 개발자로서 한 마디 부탁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글쓰기에 도움을 주고 싶다. 글쓰기에 관심은 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글감을 제공함으로써 글쓰기가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한다. 글쓰기가 익숙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아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
씀의 목표는 명확하다. 앱을 제작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구글과 애플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글 쓰는 사람들에게 ‘씀’도 그런 존재가 됐으면 한다. 글 쓰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는 지금, 그 목표가 허황되지만은 않아 보인다. / 이정윤 기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32호(2017년 9월 28일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