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미국 헌법은 대립과 갈등 속 수많은 타협의 산물"…최장집 교수 '제퍼슨, 매디슨과 미국 민주주의' 강연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미국 헌법은 대립과 갈등 속 수많은 타협의 산물"…최장집 교수 '제퍼슨, 매디슨과 미국 민주주의' 강연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25 20: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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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의 9월 16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3섹션 '정치/경제'의 네 번째 강연으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제퍼슨, 매디슨과 미국 민주주의'를 주제로 진행됐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과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중에서 시민으로』, 『민주주의의 민주화』 등이 있고 그밖에 『양손잡이 민주주의』,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어떤 민주주의인가』,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등을 공저했다.?

이날 최장집 명예교수는 강연을 통해 "미국 헌법을 만든 정치 지도자들은 최고의 엘리트였으며 매우 정치적으로 성숙했다"며 "높은 교육 배경과 지적 수준이 새로운 헌법을 통해 사려 깊은 공화주의적제도를 만들고, 이러한 제도적 기초로 인해 뒷날 모든 대의제 민주주의의 모델 사례가 될 수 있는 공화국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최 명예교수는 이어 "국내도 최근 개헌 요구가 정치권 일각에서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를 하기 이전에 헌법이 무엇인지, 왜 개헌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것을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광범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강연 요약.

* 민주주의는 현대의 대의제적, 자유주의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일컫는다. 이 말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민주주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대의 그리스를 중심으로 했던 직접민주주의로서, 자유주의도 아닌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얼마나 다양하든,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시작이 미국 독립 이후 연방국가를 건설하면서 정치체제로서 최초의 성문헌법에 기초한 미국에서의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강연의 제목은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그리고 대의제 민주주의”이지만, 내용상으로 여기에 알렉산더 해밀턴이 추가될 수 있다. 이 세 사람을 빼고는 미국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로크의 이론에 기초해 인민주권의 원리를 근본으로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이론의 근본 원리를 제시했던 정치 지도자이자 이론가이다. 제퍼슨이 제시하는 공화주의 이론의 토대 위에서 매디슨과 해밀턴은 미국 연방국가 건설의 설계도라 할 헌법 이론을 만들 수 있었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서 두 번째 패러그래프의 첫 번째 두 문장을 보자. “우리는 모든 인민들(people이 아니라, men이라고 표현한다는 데 주의를 기울이자)이 평등하게 창조되고 그들이 그들의 창조주에 의해 특정의 불가양도의 권리를 부여받고,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가 그 권리에 포함된다는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권리들을 확실히 하기 위해 피치자의 동의로부터 정당한 권력을 이끌어내면서 인간들 사이에서 정부가 제도화된다는 자명한 진리도 알고 있다. ……”는 문장을 담는다.

이 문장은 로크의 『제2정부론』의 구절들을 그대로 갖다 놓은 것 같다. 우리의 강연 주제와 관련하여 극히 중요한 의미를 담는 두 번째 문장이 뒤따른다.

그것 역시 로크의 텍스트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의 건국 초기 정부 형태가 “피치자의 동의에서 권력을 이끌어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당시에 공화주의라고 불렀던 정부 형태를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것은 피치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 시기의 인민 스스로의 정부(self-government)는 오늘의 의미에서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인민들이 투표를 통해 통치자를 선출해서 그들로 하여금 통치토록 하는 것, 즉 대의제 민주주의 한 정부 형태를 말하고 있다. 독립선언서에 제퍼슨이 말한 것은, 매디슨의 「연방주의자 논설」에서 더 분명한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들을 포함해 헌법을 만든 정치 지도자들의 지적 배경에 대해 보도록 한다. 필라델피아 헌법회의에 참석하기로 돼 있는 대표들은 (로드아일랜드의 급진농민당이 지배하는 의회에 불참하기로 한 결과) 12개 주로부터 모두 74명이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회의에는 실제로 55명이 참석했는데 회의 참석자들 가운데 거의 60%가 대학에 다녔고, 프린스턴 대학이 9명, 예일 대학이 4명, 하버드 대학이 3명이었다.

당시 미국의 사이즈를 생각한다면 참석자의 압도적 다수가 무척 지적 수준이 높은 재능 있는 엘리트들임에 분명하다. 직업 분포로 말하면 법이 제일 많아, 34명이 법률가이다.

여기에서 교육 배경과 직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 시기 새 헌법을 만들어 연방국가를 건설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서 최상층 엘리트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헌법의 내용이 미국의 최상층 이익을 보장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 사회의 저변층 다수 민중들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의회의 힘을 억제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미국 헌법은 그러한 목적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 강연자가 말하려는 것은 그 반대이다. 그 높은 교육 배경과 지적 수준이 새로운 헌법을 통해 사려 깊은 공화주의적제도를 만들고, 이러한 제도적 기초로 인해 뒷날 모든 대의제 민주주의의 모델 사례가 될 수 있는 공화국을 만들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요컨대 흄을 비롯한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국 국가와 민주주의를 만든 지도자들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계몽철학의 영향은, 매디슨은 물론 버지니아주의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에서 공부한 토머스 제퍼슨이나,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알렉산더 해밀턴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모두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를 지적 훈련이 시작되었던 고교 시기 학교 교육을 통해 마스터했고, 대학에서 철학, 역사, 법, 정치학 등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시기 미국을 이끌었던 지식인 정치인들을 볼 때, 미국의 건국과 세계 최초의 공화주의적 성문헌법을 기초로 하여 연방국가를 건설하게 되는 사건은 넓은 의미에서 프랑스 혁명의 지적 배경과 마찬가지로 계몽철학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계몽철학은 성장기의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철학적 전통으로도 유명하다.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는 북구의 아테네로 불리웠던 도시이다. 이들의 철학은 스코틀랜드라는 발상지를 벗어나 미국이라는 신대륙에서 만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토머스 제퍼슨은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를 이어 세 번째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의 독립선언문의 주 작성자로 유명한 ‘건국의 아버지’의 한 사람이다.

그는 고등학교, 대학 시절 이미 그리스어, 라틴어를 마스터하고, 유럽의 주요 언어를 모두 알고 철학, 형이상학, 법과 같은 인문학만이 아니라, 수학을 비롯한 자연과학, 원예술, 수리농업 기술 등 수많은 영역에서 달통한 르네상스형 지식인이었다.

직업으로서의 학자가 아니지만 (그러나 퇴임 후 버지니아 대학 창설) 학자 지식인 정치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16세의 나이의 대학 시절 교수로부터 로크, 베이컨, 뉴턴과 같은 영국 경헝론을 배운 제퍼슨은 이들을 가장 존경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퍼슨이 로크를 받아들인 것만큼, 매디슨은 흄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미국의 모든 대통령을 통틀어 지식 수준이 가장 높은 대통령으로 평가할 정도다. 미국 헌법을 제정했던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 참석하지 못해 서명자 명단에서 빠진 것은 그가 당시 프랑스 대사로서 미국 독립을 위해 활동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미국을 아는 사람치고, 제퍼슨을 모를 수 없지만, 매디슨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매디슨은 제퍼슨과 같이 버지니아 출신으로, 1743년생인 제퍼슨에 비해, 1751년생으로 8년 뒤에 태어난 동향의 정치 후배이다. 두 사람은 모두 대농장주 가정 배경에 학문적 수준과 열정에서도 비슷하고, 이 시기 모든 주요 정치 현안에 있어 관점과 정치철학도 유사하다. 그들이 같은 공직을 역임했던 것도 여럿이다.

매디슨은 제퍼슨 후임으로 2차 ‘주연합 의회’의 버지니아 대표로 선출됐고, 제퍼슨 대통령 시기 국무 장관을 역임한 뒤, 그를 이어 4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제퍼슨과 마찬가지로 연임에 성공했던 것도 거의 비슷하다.

매디슨이 1787년 필라델피아 회의에서 헌법을 쓰는 중심적 역할을 했을 때, 그리고 뒤이어 해밀턴과 함께 뉴욕 주에서 헌법 비준을 위해 「연방주의자 논설」을 쓸 때, 제퍼슨은 파리에서 매디슨이 주문하는 엄청난 분량의 공화주의와 관련된 고전과 이론서들을 파리 서점에서 구입해 우송해주었던 친구이기도 했다. 매디슨이 연방국가의 설계도라 할 미국 헌법을 쓰고 만드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를 일컬어 '헌법의 아버지'로 부른다.

모든 건국의 아버지들은 사유재산과 개인 자유 간의 연관 관계에 대해 잘 이해했다. 즉 사유재산의 확대와 그것을 위한 정부의 보호는 개인 자유를 침해하고 제약한다는 점을 말한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거대한 잠재력이 과거의 농업 경제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 산업적 미래에 있다는 것을 잘 인지했던 사람은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다.

그는 이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역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정부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정부하에서 미국 최초의 재무부 장관이 된 해밀턴은 그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옳길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는 혁명 전쟁 부채를 국가 부담으로 돌리고, 개별 주들의 경제를 국가 경제의 틀로 연결하고, 국민적 신용 체계와 유동적인 자본시장의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나아가 제조업과 도로, 교량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투자를 촉진할 수 있도록 강력한 특허법이나 고관세 부과 등의 정책을 폈다. 제퍼슨은 이러한 정책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부유한 상업적 이익과 연계된 강력한 중앙정부가 토지에 연계된 평등한 민주주의의 비전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에 대해 해밀턴은, 자본이 지방의 토지 이익으로부터 풀려날 때만이 미국민의 에너지와 기업 의욕이라는 가장 강력한 자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두 사람의 이러한 차이에 대해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의 출세작으로 유명한 책 『담대한 희망』에서 제퍼슨이 해밀턴의 비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라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자기 이익과 공동체 사이에, 시장과 민주주의, 부와 권력의 집중과 기회의 개방 사이에 항상 균형을 이루려고 시도해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해밀턴이 헌법안 가결에 부정적인 여론을 돌리기 위해 대대적인 설득 작업을 기획하면서, 매디슨을 설득해 끌어들였던 것은 이런 정황하에서이다. 3인을 저자로 해서 정기적으로 신문에 논설문을 게재키로 한 당초의 계획은 존 제이의 탈락으로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쓰게 되는 것으로 변했다.

1787년 가을부터 1788년 봄까지 이들이 '푸블리우스'(Publius)라는 가명으로 85편의 논설을 뉴욕에서 출간되는 5개 신문 가운데서 4개 신문들에 번갈아 가면서 기고한 것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유명한 논설문이다. 매디슨의 아이디어는 이 논설문의 핵심을 이룬다. 비준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수천의 에세이, 연설, 팸플릿, 편지 등이 헌법안의 찬반을 둘러싸고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고, 수준 높은 것이 바로 헌법 비준을 지지했던 「연방주의자 논설」이다.

10번은 그동안 반연방주의자들이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설은 데이비드 흄의 저작에서 빌려온 것이지만, 그 이론을 미국 사례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주장을 발전시켜왔던 결과물이다.

매디슨이 말하려는 주제가 공화정인 한,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의 정의를 따르면 공화정은 “대표의 구도”(the scheme of representation)가 발생하는 하나의 정부 형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다른 전망을 열어주고, 무엇을 치료할 것인가를 약속해준다. 그는 공화정(republic)과 순수 민주주의(pure democracy)를 구분하면서 그 둘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말한다.

10번에서 제일 먼저 매디슨이 제기하는 문제는, 어떻게 다수 시민들이 소수를 전제적으로 통치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이다. 그는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답하면서 파벌(factions)의 문제로 초점을 돌린다. 여기에서 그는 파벌을 민중적 정부들이 도처에서 붕괴되는 치명적 질병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파벌은 무엇인가, 그는 파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파벌이란 “다른 시민의 권리에 대해, 또는 공동체의 항구적이고 집합적/집단적 이익에 대해 적대적인 열정이나 이익이 빚어내는 어떤 공동의 충동에 의해 단결되고 활성화되는, 그리하여 그것이 전체의 다수 또는 소수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가져오는 다수의 시민들”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파벌은 현대의 이익집단이나 정당 같은 성격과 많은 공통점을 갖는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연방주의자 논설」 10번은 다른 논설에 비해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이 국가로서 규모가 커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그러한 성장이 공화국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한 매디슨의 설명 방식이 큰 혜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이 논설은 재평가되고 유명해졌다. 민주주의에 대한 매디슨의 관점은 다원주의로 불린다. 사회의 수없이 다양한 이익을 긍정하고 공공 정책을 통해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이익들 간의 경쟁이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일반적으로 수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51번은 정부 기구들을 다른 부서들로 분할하고 그들에게 상대방의 행위에 개입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한다는 기계적인 작동 방식의 접근을 제시한다. 이러한 발상을 뒷받침하는 핵심 이론은 흄의 철학으로 “야망은 야망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리였다.

요약하면 논설문 10번은 헌법의 최고 설계자의 중심 테제라 할 다원주의 이론을 담는 것이다. 51번은 필라델피아에서 정치과정을 통해 나타난 정부의 체계가 어떻게, 왜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논설들이 쓰여진 이래 헌법의 작동과 관련하여 매디슨의 혜안은 확인될 수 있었다.

우리는 미국 헌법이 만들어진 지 220~2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오늘의 시점이라는 이점을 가지면서 문제를 볼 수 있다.

과연 미국 헌법과 그것을 기초로 했던 미국 민주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의 대의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기여했나?

이 질문에 대해 여러 수준에서의 비판적 관점이 존재한다. 제퍼슨과 「연방주의자 논설」의 저자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헌법의 중심 사상과 그 구체적인 구현으로서 헌법 체계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러 한계를 안는다. 미국이 헌법을 통해 구현했던 “인민 스스로의 정부 또는 통치 체제”(self-government)는 민주주의라고 표현하는 정치체제, 또는 정부 형태-고대 그리스어로 표현된 바 있는 데모크라시, 즉 “인민의 권력/인민 스스로의 통치”(demo 그리고 kratia)를 의미하는-의 이상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나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헌법은 로버트 달을 포함하여 샤츠슈나이더,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등 여러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인민주권의 원리, 보통선거권, 낮은 수준의 대표성, 흑인 차별,인민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정부 등 여러 기준에서 많은 문제와 한계를 포함한다.

그러나 미국 헌법의 여러 약점들은, 한 저자의 일관된 비전과 철학을 담은 체계적인 저술이 아니라, 저자들(해밀턴과 매디슨) 사이에서, 그리고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 사이에서 그리고 수많은 정치적 힘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18세기 말 헌법이 만들어졌던 시대적 조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시기는 미국의 빠른 영토 확장과 더불어 경제 발전, 그리고 보통선거권에 대한 요구의 분출을 포함하여 인민의 정치 참여, 정당의 발전과 같은 대의제적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힘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 변화를 감안할 때 미국 헌법은 그 안정성이 엄청나게 높다.

매디슨 헌법의 발전, 내지 궤적은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이 헌법 그 자체로서 작용하고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헌법은 그것이 작용하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상호 관계를 가지면서 작용하고 변화한다.

이 점은 오늘의 시점에서 매디슨 헌법을 되돌아본다는 것을 뜻한다. 이 문제는 특히 198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서 빠른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 중산층의 붕괴, 복지의 해체, 인종 차별 등 사회경제적 현상들과 동반했던 헌법 개정ㆍ적용ㆍ해석을 포함하는 헌법의 퇴영적 변화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포함한다.

오늘의 미국 헌법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제헌 헌법이래 한국 헌법은 최소한 기본적인 것에 관한 한, 미국 헌법 원리에 기초를 둔다. 따라서 한국헌법과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미국 헌법을 이해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큰 지적 자원이다.

한국에서 분단 국가가 건설되고 제헌 헌법이 만들어질 때의 혼란 상황에서 미국의 헌법 제정 과정과 그 내용을 보고 이해하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상황이 다르다. 특히 민주화 이후 시기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촛불시위 이후 지금도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를 하기 이전에 헌법이 무엇인지, 왜 개헌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것을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광범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있는 헌법 조문을 이행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치인 또는 어떤 시민이 있다면 그는 깊은 성찰 위에서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공익에 기여한다고 확신할 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은 이성적 공론장에서 널리 논의된 연후에 또는 그와 병행해서 논의돼야 한다.

그런 이성적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미국 헌법이 어떻게 정치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공론장에서 논의되는가 하는 논의의 방식이 헌법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았다. 또 그런 방식이 있을 때 좋은 내용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정리=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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