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판 교실에서 발견한 『식물의 힘』
싸움판 교실에서 발견한 『식물의 힘』
  • 정연심 기자
  • 승인 2017.09.2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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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힘』-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
스티븐 리츠 지음│오숙은 옮김│여문책 펴냄│404쪽│ 20,000원

씨앗 한 알에는 숲을 향한 약속이 들어있다. 구제불능 아이들을 한 알의 씨앗으로 보고, 희망을 싹 틔우고, 마침내 나무를, 숲을 키워 세상을 바꾼 한 남자가 있다. 프로농구선수를 꿈꾸다 다리 부상으로 교사가 된 남자는 ‘누구에게든 가능성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로 사람을 변화시켰다. 식물이 가진 힘으로 마침내 인간을 경작한 ‘사람농사꾼’의 기름진 농사법이 공개됐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빈곤지역이자 우범지대인 사우스 브롱크스. 이곳 아이들은 고질적인 범죄와 마약, 가난,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1984년 여름, 이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 21세의 청년이 임시교사로 부임한다. “내가 선생님이 된 게 뭐 이상해?” 철부지 청년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특수교육 대상 문제아들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한다. 

2004년 10월, 저자는 브롱크스의 월턴고등학교에서 인생을 바꿔놓을 ‘우주적 경험’을 한다. 수업시간에 몸싸움을 벌이던 두 아이 중 하나가 교실 안 라디에이터 밑으로 손을 뻗어 무엇인가를 잡아 뜯었다. 이내 초록색 줄기마다 수십 송이의 밝은 노란색 꽃이 와르르 쏟아졌다. 교사인 그가 양파인줄 알고 쳐 박아둔 수선화 구근에서 어느새 꽃이 피어난 것이다. 교실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고, 싸움은 중단됐다.

“보잘것없는 노란 꽃에 열광하는 월턴 고등학교의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던 그때,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가장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자연은 우리 모두의 관심을 사로잡고 영감을 주고 기쁘게 할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던가. 여기서 희망은 눈에 보이는 것이 되었다. 그 놀라운 꽃송이들은 식물이 지닌 힘에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저자는 극적인 우연의 순간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는 순간’으로 인식했다. 식물의 경이로운 가치에 눈뜬 그는 학교와 시민, 지역사회가 함께 건강해질 수 있는 녹색교육을 실시했다. 

학생들과 함께 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화단을 만들었다. 콘크리트와 철조망뿐인 동네가 달라지자 학생들도 서서히 변화했다. 우선 사건사고가 절반으로 줄었다. 평균 출석률 40%, 졸업률 17%에 불과하던 아이들은 100% 가까운 출석률과 졸업률을 기록하며 문제아라는 꼬리표를 뗐다. 미국의 신문과 TV는 이들을 주목했다.

그는 2005년부터 화단 대신 텃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채소를 길러 아이들과 먹고 나누고 기부했고, 그 과정을 교과목에 통합했다. 이를 ‘그린 브롱크스 머신’이라는 교육 프로그램 발전시켜 미국 내 학교 5,000개교를 비롯한 캐나다, 두바이, 카이로 등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다.

저자가 30여년 동안 사랑으로 심고 가꾼 학생들은 아름다운 나무로 성장해 자신을 헌신할 줄 아는 시민이 되었다. 녹색기적을 일군 그는 2015년, 교육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국제교사상 최종 10인에 올랐고, 미국 테드 강연에서 두 번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 여세로 백악관에도 초청받고, 교황을 접견했다. 그는 지금도 브롱크스에 살면서 아이들과 1년 내내 농사를 짓고 농장과 텃밭을 늘려가고 있다. / 정연심 기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32호(2017년 9월 28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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