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곰돌이 푸’ 의 친구 실제인물 '로빈'의 비극
[책 속 명문장] ‘곰돌이 푸’ 의 친구 실제인물 '로빈'의 비극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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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곰돌이 푸 시리즈는 문학적·상업적면에서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네 편만 쓰였다. 1924년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1926년 『위니-더-푸』, 1927년 『우리 이제 여섯 살이야』, 1928년 『푸 코너에 있는 집』 등이다. 그러나 작가 밀른이 1956년 74세로 사망했음을 생각해보면 약 30년간 일부러 쓰지 않은 셈이다. 왜 밀른은 이렇게 서둘러 시리즈를 마감했을까.

더 이상 집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밀른은 “로빈이 너무 성장해 버려서 더 이상 영감을 받을 곳이 없다”고 했다. 당초 밀른이 외아들 로빈을 데리고 휴가차 숲에 가서 머물 때 로빈이 심심해하자 유머 작가다운 감각을 발휘해 재미있는 동시를 쓰고 곡을 붙여 주었던 게 ‘곰돌이 푸’ 시리즈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책이 나올 때에는 로빈은 만 여덟 살이었다. 인형을 갖고 놀기에는 조금 많은 나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린이이고 밀른의 상상력은 여전히 풍부했다.

진짜 문제는 로빈에 있었다. 로빈이 태어나기 전 밀른 부부는 딸아기를 바랐다. 로빈이 태어나자 로빈을 철저히 유모에게 맡기고 부부는 제한적으로 로빈을 접촉한다. 로빈이 그토록 인형에 집착하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푸 이야기가 엄청난 인기를 모으면서 실제 모델인 로빈에게 관심이 쏟아진다. 학교 친구들도 이상하고 신기한 ‘꼬마 로빈’을 놀리고 비웃고 괴롭혔다. 전학을 갔지만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 밀른은 시리즈 집필을 그만둔다.

시리즈를 끝냈지만 밀른은 여전히 명사 대접을 받으며 강연하러 다녔고 부인은 남편이 사망한 뒤 유산을 흥청망청 낭비해 결국 엄청난 빚까지 지게 되자 남편이 남긴 원고들과 곰돌이 푸 시리즈 저작권을 함부로 팔아 분쟁의 소지를 남겼다. 로빈과의 관계도 완전히 끊었다.

성인이 된 로빈은 ‘나의 어린 시절을 이용했다’라며 아버지와 곰돌이 푸 시리즈를 증오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로빈은 대학을 졸업하고 책방을 열었으나 손님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푸의 친구 로빈을 구경하러 왔다. 로빈의 딸도 아버지 로빈의 고통을 보면서 자랐기에 곰돌이 푸 시리즈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기작가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인터뷰를 요청하며 사진을 찍자는 등 로빈을 괴롭혔다.

로빈의 고통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의 딸은 뇌성마비로 태어났고 자신도 말년엔 중증 근무력증으로 수년간 고통받다 1996년 75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어머니에서 비롯된 저작권 관련 소송은 로빈 사후 몸이 불편한 딸에게까지 이어졌고 결국 1999년 딸의 패배, 즉 디즈니의 승소로 마무리된다.

많은 사랑을 받은 아름다운 동화와, 그 동화가 빛나는 만큼 괴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로빈의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본다.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280~303쪽 발췌 요약> / 엄정권 기자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곽한영 지음 | 창비 펴냄 | 336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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