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詩로소이다] 희망과 위로와 사랑의 언어...가을 시집 『반지하 앨리스』 등 6권
[나는 詩로소이다] 희망과 위로와 사랑의 언어...가을 시집 『반지하 앨리스』 등 6권
  • 황은애 기자
  • 승인 2017.09.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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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극복하는 도발적인 아름다움

■ 반지하 앨리스
신현림 지음 | 민음사 펴냄 | 152쪽 | 9,000원

제도권적 여성 담론을 뒤흔든 전위적인 시인 신현림이 10년 만에 선보인 이 시집에는 연작시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를 비롯한 68편의 시가 실렸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반지하에 불시착한 앨리스들의 애환에 주목한다. 그러나 가난의 뿌리를 적나라하게 털어놓는 솔직함에는 언제나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 ‘사랑’이 있다. “쓸쓸한 나와 같은 너를 찾아/슬픔에 목메며/슬픔의 끝장을 보려고/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처절한 고백은 삶의 고통과 아픔에 몰입하는 대신 함께 슬퍼할 사람을 찾고 그 슬픔을 견딤으로써 오히려 슬픔의 끝장을 보는 힘이 된다. 겉치레와 위선 없이 마음의 밑바닥까지 말하는 시집은 시인이 반지하 세계에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보내는 생존신고이자, 함께 더 잘살아 보자는 위로의 편지다.

불행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꿈꾼다

■ 오늘은 잘 모르겠어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 271쪽 | 8,000원

사회학자이자 시인인 심보선은 불행한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긍정적 결말을 끌어낼 수 있는 언어를 풀어놓았다. 시에서 화자는 언제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 중이고, 사랑은 실패하는 중이고,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중이다. 시인은 현재진행형 ‘중’이라는 시적 언어로 일련의 과정을 기록했다.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기록하고, 짧은 찰나 혹은 공백에 놓인 순간들을 빠짐없이 적어냈다. 온전히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던 것들,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던 것들을 사회학도의 눈과 시인의 손으로 잊지 않기 위해 쓴한다. 소멸이 회생 불가능한 지점까지 가닿기 전에, 이별이 영원한 끝이 되어버리기 직전을 포착하는 시인의 시 세계는 그 안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의 공간을 그려낸다.

세상 모든 외로움과 절망을 마주한 시인의 외침

■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신용목 지음 | 창비 펴냄 | 184쪽 | 8,000원

서정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신용목 시인은 당대 사회 현실을 자신의 삶 속에 끌어들여 존재와 시대에 대한 사유의 폭과 감각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시 세계를 보여준다. 각 시편은 삶에 드리워진 슬픔과 상처를 연민에 찬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섬세한 비유와 세련된 이미지, 탄탄한 시적 구성이 돋보인다. 시 속에서 시인은 삶의 고통 속에서 주로 낮고 그늘진 곳을 응시하는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바라본다. 이 어두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고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사랑과 슬픔과 분노”(「노랑에서 빨강」)를 언어로 기록하며 삶의 진실에 다가간다. 슬픔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에 ‘나’와 ‘너’를 아우르는 ‘우리’의 세상을 꿈꾼다는 시인의 간절한 외침은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여운을 남긴다.

코피처럼 쌉싸래하고 소주처럼 진한 인생 시

■ 사장 부장 다 나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이환천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 200쪽 | 11,800원

편히 마음을 기댈 상대와 공간 없이 혼자일 것을 강요받는 이 시대 청춘들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서툰 사랑에 눈뜨고 못 볼 추태를 부리는 모습을 포착한 103편의 시로 구성된 시집이다. 시에 등장하는 온갖 우스꽝스러운 묘사들은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어딘지 씁쓸하고 짠하다. 「빚」 「노페이는」 같은 시를 보면, 일상을 감당할 수 없는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그마저도 언제 떼일까 두려워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너의 웨딩」 「데이트」 같은 시 역시 태생적이고 환경적으로 사랑과 연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세대의 설익은 아픔을 잘 드러낸다. 4자로 구성된 그의 시는 가장 간결한 언어로 오늘날 불편하고 씁쓸한 세대의 모습을 드러냄은 물론 그 생생한 감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를 통해 바라본 인생의 희로애락

■ 인생詩선
손나라 지음 | 트로이목마 펴냄 | 304쪽 | 13,500원

‘인생詩선’은 ‘시의 언어로 인생을 바라본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19년째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저자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명시(名詩)를 소개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인생살이를 곁들여 썼다. 누구나 시험을 위해 외우고 줄긋고 분석하던 낯익은 시이자 윤동주, 백석, 김소월, 황지우, 기형도 등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고, 잘 알고 있는 한국 대표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며, 입시와 시험이란 틀 밖에서 시의 진짜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때로는 한 편의 시가 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힘겨운 삶을 살았음에도 누구보다 아름다운 시를 쓸 시인들의 맑고 순수한 감성을 동경하며, 시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겹쳐낸다.

불편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윤리와 애도의 방식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144쪽 | 8,000원

‘작고 소외된’ 것들에 끝없이 관심을 두고 탐구한 지 4년이 된 박준 시인. 그 시인의 성장이 궁금하다. 모름지기 성장이란 삶의 근원적인 슬픔을 깨닫는 과정이다. 이번 시집에서 날것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순간들에 대한 사유가 짙은 내용의 시들은 시인의 깊어가는 세계를 증명한다. 「미인의 발」 「유성고시원 화재기」 등 타인에게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사고를 써 내려간 시를 통해 저자는 그들의 삶과 불편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애도한다. 한편 독자들은 「꾀병」 「호우주의보」를 통해서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마음 한구석에 있을 사랑을 느낄 수도 있고, 시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인의 열망을 읽어볼 수도 있다. / 황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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