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작가 한강 "넋이 돼 곁으로 오는 5·18 소년...다 거짓이었으면..."
『소년이 온다』 작가 한강 "넋이 돼 곁으로 오는 5·18 소년...다 거짓이었으면..."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1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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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소설가 한강이 화제작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외신을 인용, 연합뉴스등이 전했다.

한강은 이미 지난해 5월 영어권 최고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거머쥐며 세계적 수준의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이번 이탈리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됨으로써 다시 한번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전세계 문학계 스타로 발돋움하게 됐다.

이탈리아 문학상을 안긴 작품 『소년이 온다』는 한강에게도 특별한 작품이다. 한강은 지난해 12월 13일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주최한 ‘치유의 인문학’ 강연차 광주를 찾아 5·18민주화항쟁을 주제로 쓴 소설 『소년이 온다』 강독과 함께 집필 뒷이야기, 강연 주제인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에 맞춰 소설가가 된 과거와 글쓰기와 관련된 현재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당시 독서신문은 현장 취재를 통해 한강의 강연을 3회에 걸쳐 온라인 연재했었다. 다음은 기사 요약.

한강 작가가 지난해 12월 13일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주최한 ‘치유의 인문학’ 강연차 광주를 찾아 5·18민주화항쟁을 주제로 쓴 소설 『소년이 온다』를 강독했다. <독서신문DB>

* 광주에 다시 왔으니 『소년이 온다』를 읽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떤 부분이 좋을지 생각했는데 3장이고요. 당시 배경은 1985년입니다. 출판·공연물 전부 다 검열을 거치던 시대에요. 3장과 4장의 주인공이 출판사 직원인데 자신이 교정교열 봤던 작품이 검열을 당해서 겁을 먹고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지우는 것도 모자라 롤러로 완벽하게 페인트로 지워버린 가제본을 받아든 장면이에요. 요즘 시국과 관련 있다고 생각돼 읽어볼까 합니다.(소설 낭독)

이 소설은 80년 5월에 죽은 만 15살 소년 동호를 위한 것이에요. 1장과 2장은 80년 5월 당시를 그리고 있고, 그 다음부터는 세월을 건너서 소년이 옵니다. 각 장의 화자들이 소년 동호를 기억하는데요. 기억하고 부르기 때문에 소년이 천천히 우리 곁에 오는 거예요. 에필로그에 이르면 현재가 되는데 어렴풋한 장막 같은 것을 걷고 넋의 걸음걸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걸음걸이로 소년이 오게 되는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5장에서는 5·18 생존자인 선주라는 화자가 이야기하는데요. 순서대로 썼다면, 제가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썼을 텐데 마지막으로 쓴 부분이 5장이에요. 5장을 조금 다른 내용으로 썼다가 고쳤거든요.

이유가 제가 이 소설을 2012년 겨울에 자료 수집을 하면서 쓰기 시작했는데요. 3개월 정도 자료만 봤어요. 사실 제가 이 소설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선배 작가들이 워낙 훌륭하게 작업해 놓은 것이 있었고, 저는 광주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80년 1월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에 직접 체험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다 보니 광주 이야기를 쓰게 될 거라곤 짐작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였죠. 그러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 이야기를 뚫고 지나야 하겠다는, 그렇지 않으면 글을 못 쓰게 될 것 같은 그런 시점에 도달했을 때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됐어요. 광주 출신에 89학번이다 보니 그런 자료들을 접했던 세대라고 제가 많이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자료를 읽다 보니 제가 잘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얼마나 잔혹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더 놀라운 것은 열흘간의 항쟁이 끝난 후에 얼마나 잔인한 폭력이 계속됐는지 잘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의외로 저 말고도 5·18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소설 출간 후에 알게 됐어요. 자료를 읽는 기간 동안 제 안에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경험했는데 첫 번째로 실상을 알면 알수록 소설을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왜 그랬는지 알아야 하니까 제주 4·3사건 자료도 찾아서 읽어봤고, 인류가 20세기에 저지른 무서운 일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읽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이구나 생각을 하게 됐던 시점에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됐어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제 삶이 조금은 바뀐 것 같아요. 쓰는 도중에도 바뀌었고 다 쓰고 난 다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 책의 자장에서 제가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은 아직도 가끔 악몽을 꿔요.

이 소설을 쓰던 당시에는 좀 더 직접적인 무서운 폭력의 꿈을 꿨다면 소설이 완성된 다음에는 다른 느낌으로요. 2014년 여름에는 어떤 꿈을 꿨느냐면 책만 나오면 악몽도 안 꾸고 많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거죠. 2014년 꿨건 꿈은 제가 무덤 많은 산을 걷는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여기가 바다 들어오는 곳이니까 빨리 피하라는 거예요.

왜 바다가 들어오는 땅에 이렇게 많은 무덤을 썼지? 어떻게 하지? 이쪽에 있는 무덤을 빨리 옮겨야 하지 않을까? 당장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어떡하지? 이미 무덤 아래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다가 깨고요.

“아, 이게 광주 꿈이구나” 생각했죠. 이 이야기를 쓰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결국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조금씩 약해질 순 있겠지만 껴안고 가야 하는 몫이 됐구나. 그런 걸 느끼고 있어요. 지금도 여러분과 ‘소년이 온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마도 계속 그렇게 될 것 같아요.

한강 <독서신문DB>

이 책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라 했는데요. 왜냐하면, 이 소설은 저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제가 소년들에게,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저의 감각과 삶을 빌려드리는 형식으로 썼던 것이기 때문이에요.

불행히도 이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면 좋겠는데 일대일 대응까지는 아니지만, 사건은 모두 진짜거든요. 오히려 더 잔인했는데 소설의 용량을 초과해 쓰지 못했던 잔인한 부분도 있고요. 저의 자의식이나 저 자신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니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오면 굉장히 당황스럽고 그랬어요.

고통이 있는 자리에 언제나 대답이 있는 것 같아요. 고통을 느낀다는 건 우리가 삶을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 같아요. 『소년이 온다』가 인간의 참혹함과 잔혹함에서 출발해 인간의 존엄함으로 기어가려고 애쓴 거였다면 이제 제가 가야 할 곳은 사랑이 아닐까. 이 모든 것, 이 모든 고통이 사랑 때문이라면 그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참 어려워요.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고통이 존재하고 참혹한데 그걸 딛고 사랑을 향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씩 애쓰면서 더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정리=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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