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북-『사랑, 삶의 재발명』] "국민 첫사랑은 수지 이전에 『소나기』의 윤 초시 손녀딸"
[메트로 북-『사랑, 삶의 재발명』] "국민 첫사랑은 수지 이전에 『소나기』의 윤 초시 손녀딸"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11 0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태풍이 지나가는 바다처럼 사랑의 감정은 젊은 우리들을 격랑 치게 했다. 사랑의 열정 이후에 남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사랑의 지혜 같은 것이기를 바랐으리라. <9쪽>

현대시를 전공한 박사로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KU 연구 전임 교수로 있는 임지연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에 대한 몇 가지 물음들’이라는 제목의 ‘들어가며’에서.

은행나무 출판사가 펴낸 마이크로 인문학 2차분 9권 『사랑, 삶의 재발명』을 들춰 보았다. 손바닥만한 크기 책이지만 풀어내는 인문학 분량은 전혀 ‘마이크로’하지 않고 저자의 박학한 사유는 광대하다. 임지연은 거기에 거침 없는 달변을 장착해 읽는 이들에게 몰입의 행복을 준다.

문학 속 사랑 들춰보고 뜯어보고
거기서 깨닫는 사랑

사랑은 삶의 문제, 사랑의 발견은 삶의 발명입니다

사랑 관련 인용 책들이 동서양을 넘나들고 고금을 관통한다. 책 맨 뒤에 밝힌 참고문헌이 152개에 이른다. 페이지당 한 개(권) 꼴이다. 그리고 그 소설 등에 대한 해석이 경쾌하고 당차다.

다소 단정적이다 싶은 감은 있지만 그 정도는 학자의 자부심이라 치부하자. 사랑의 세계, 할 말이 많은 주제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갖지 말고 편하게 읽으면 더욱 재미있다. 

황순원 「소나기」 얘기. “「소나기」가 여전히 한국문학사에서 고전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첫사랑에 대한 환상 때문이다. (…) 첫사랑의 기억을 입 안 가득 침으로 고이게 만드는 물리적 작용이 「소나기」를 한국문학사의 고전으로 만들었다.

갈밭 사이로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뛰어가는 소녀의 하얀 목덜미, 왜 바보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찔하게 자극적인 말들, (…) 소나기 내리는 수숫단 안쪽에서 훅 끼쳤을 몸 냄새, 소년의 등에 업혀서 느꼈을 최초의 성적 감각(…) 죽음으로 봉인된 불가능한 순수한 사랑은 한국인에게 코드화되어 국민적 감수성이 되었다”

『사랑, 삶의 재발명』
임지연 지음 | 은행나무 펴냄 | 168쪽 | 8,000원 (107×177㎜)

임지연은 “국민 첫사랑은 수지 이전에 윤 초시네 손녀딸이 먼저 있었다”고 덧붙였다. 임지연의 진가는 다음에 나타난다.

“첫사랑은 윤 초시네 손녀딸처럼 잔망스럽지만 순수해야 하고, 주인공 소년처럼 부끄러워하면서도 행동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잔망…순수… 부끄러움… 행동적…. 사랑은 싹트는 건 단순한 듯 하지만 여러 감정이 뒤엉킨다.

사랑은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박범신은 『은교』에서 노년기의 사랑이 청춘의 그것과 구조적으로 다를 바 없음을 미학적으로 증명했고 소설가 박완서는 늙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갈했다”고 임지연은 말한다. 임지연의 촉각은 문학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영화도 섭렵했다. “영화 「죽어도 좋다」는 노년의 사랑이 품위나 점잖음이 아니라 쾌락과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노년 커플이 성행위를 하면서 “에, 나 죽겄네, 너무하네, 너무하네”라는 오르가즘을 표현하는 에로틱한 대사는 노년의 사랑이 가닿을 수 있는 최대치이다.

영화 「45년 후」도 언급했다. 노년의 질투, 기억, 신뢰, 열정적 사랑과 지속적 사랑의 문제를 다룬다. 결말은 어떨까.

임지연은 존 그레이를 박살내는 데서 통렬함의 극강을 보여준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만든 목표는 분명하다.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할 때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 차이-인정-존중-사랑이라는 키워드에는 동의하지만, 존 그레이가 말하는 차이, 인정, 존중, 사랑의 개념과 내용에 대해서는 인정하기 어렵다”

“존 그레이는 문제가 생겼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조언을 하면 남자는 자기 능력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고 불쾌하게 여기기 때문에 조언을 하지 말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임지연이 묻는다.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여자는 닥치고 가만히 있을 것. 문제 해결은 남자에게 맡길 것이라는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이어지는 반론은 조곤조곤 끈질기다. 책을 보시라. / 엄정권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