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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독서신문] 냇물에서 물장구 치던 동심은…

[독서신문]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를 훌훌 벗어버릴 때 아이들은 자유와 해방을 느낀다. 퐁당거리고 물장구를 치다가 한 놈이 물을 먹이자 우르르 몰려들어 몸싸움을 벌인다. 소리를 지르는 놈, 깔깔거리며 웃는 놈, 물을 먹고 엉엉 우는 놈, 낮닭이 홰치는 소리도, 비행기 소리도 모두 아이들의 물장구 소리에 파묻혀 버린다”

독서신문 1973년 8월 5일자는 ‘컬러의 눈’이라는 기획물에 ‘삼복을 차는 무지개 빛 동심’ 제하 기사에서 이렇게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묘사하고 있다.

플로베르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 기사와 잘 어울린다. “물오리가 날 적부터 헤엄을 치듯이 어린이들은 나면서부터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천성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들이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물오리의 헤엄을 금하는 거나 다름없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그 천성을 옆에서 도와줄 것이 중요하다”

기사는 이어진다. “우리의 땅 어디를 가나 마을이 있고, 그 앞에는 냇물이 흐른다. 그리고 여름이면 으레 마을 아이들은 거기서 물장구를 치며 한여름을 보낸다. 현대식 푸울장이나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해수욕장에 비하면 하찮은 놀이터일지 모르지만, 바로 이 냇가에는 고향의 정취가 담뿍 어려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른들은 어릴 때 뛰어놀던 마을 앞 냇가를 그리워한다”

기자는 얼마 전 한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과거 언젠가 어머니가 베를 짜는 모습이 독서신문에 실렸는데 신문을 구할 수 있냐고 했다. 신문은 구할 수 없지만 40년 정도 지난 신문을 뒤적였다. 그리고 주인공 사진을 찾아 메일로 보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물장구 치는 사진이 나가면 사진 속 주인공을 찾는 전화가 올까. 44년 전이니 사진 속 주인공들은 아마 50대 중반이거나 후반이겠다.

* 같은 날짜 독서신문 19면에는 ‘세계문학사 비화’라는 기획물에 ‘두 번 죽은 보카치오’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보카치오는 단테의 신곡에 맞선 인곡(人曲)이라고 불리는 데카메론을 1350년 냈다.

유럽 전역이 페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 창궐로 신음하던 때 나온 것으로 절망의 시대를 위로했다는 평이다. 데카메론이 발표되자 원성이 높았다. 호색과 우정 등이 적나라한 14세기 이탈리아 풍속사로서 이 자료들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민중의 관심과 종교계의 반발은 끊이지 않았다.

보카치오는 젊은 시절 나폴리에서 공주와 뜨거운 밀회를 나누었으나 부친의 강권으로 다시 고향 플로렌스로 돌아간 바 있다. 이런 사실도 여론에 한몫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보카치오는 62세로 타계했다.

그러나 400년이 흐른 18세기말 보카치오는 또 한차례 ‘죽음’을 맞는다. 일부 광적인 기독교인들이 그의 묘를 파헤쳐 유골을 이름도 없는  조그만 강에 던져 버렸다. 호모메르스에 대적하여 소설개산(小說開山)의 대조사(大祖師)인 보카치오의 일생은 두 번 죽어 유골마저 땅에 묻히지 못한 것이다. 

* 이어 8월 19일자 11면 ‘세계문학사 비화’에는 ‘노예로 팔린 세르반데스’ 제하의 글이 실렸다. 1571년 세르반테스는 터키해군과 일전을 치른 그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 참전한다. 혁혁한 무공을 세우며 터키 해군을 궤멸시키는데 앞장 선다.

그러나 자신도 가슴 두 군데에 창상을 입고 쓰러졌으며 끝내는 왼팔마저 절단되는 치명적 부상을 입는다. 함상의 세르반테스는 잘라진 왼팔을 보며 태연히 실소한다. 귀국한 세르반테스는 열렬한 군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레판토의 외팔이 세르반테스 만세”라고 군중들은 외쳤다.

이후 세르반테스는 외팔이로서도 여러 전투에 참전해 무공을 세운다. 그러나 해적과 치른 한 전투에서 생포된다. 알제리로 끌려가 노예로 팔렸다. 몸값 2천 두카아드. 세르반테스의 비참한 노예생활은 5년이나 지속됐고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한 기독교 단체에서 한 사내의 몸값을 치르려고 5백 두카아드를 들고 왔으나 그 사내 몸값은 3천 두카아드로 턱없이 모자랐다. 이 때 눈에 띈 것이 바로 세르반테스. 이 단체는 할 수 없이 몸값이 크게 떨어진 세르반테스를 샀다. 당시 최저가였다. 돈키호테가 출간된 것은 그로부터 24년 뒤였다. 온갖 풍상이 그와 함께한 뒤였다.   / 엄정권 기자

엄정권 기자  tasto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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