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평화를 향한 열망은 교육에서 나온다"…김용민 교수 '루소, 국제 정치와 평화' 강연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평화를 향한 열망은 교육에서 나온다"…김용민 교수 '루소, 국제 정치와 평화' 강연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9.08 15: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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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의 9월 2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3섹션 '정치/경제'의 두 번째 강연으로 김용민 한국외대 교수의 '루소, 국제 정치와 평화'를 주제로 진행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김용민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방문교수, 미국 시카고대 방문교수를 지내고 현대사상연구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루소의 정치철학』 등이 있고 『좋은 삶의 정치사상』, 『보편주의』 등을 공저했다.

김용민 교수

이날 강연에서 김용민 교수는 "루소는 평화에 대한 염원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게 바로 교육"이라며 "세계시민을 향한 교육을 통해 자기편애를 극복, 평화를 향한 열망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루소, 국제 정치와 평화' 강연 요약.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정당한 국내 정치 질서에 관한 설계를 제시하고 있다. 정당한 정치 질서는 권리와 이익을 조화시키고 정의와 유용성을 조화시키고 있는 ‘일반의지’(the general will)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일반의지 속에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일반의지는 모든 시민에게 공동선을 보장한다.

본 글은 루소의 국제정치관에 있어 혼합 상태가 지니는 문제점을 제기를 하고 있는 제1장에 이어, 제2장에서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 모델을 가지고 루소의 국제정치 이론을 분석하고, 제3장에서는 『전쟁상태론』과 『사회계약론』의 1권 4장의 논의를 바탕으로 루소의 평화 사상을 분석하며, 제4장에서는 교육을 통한 세계시민의 형성 및 평화 사상 구축의 가능성에 관해 논의한다.

루소는 국제정치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사상가들과 구별된다. 칸트도 국제정치에 관한 저술을 갖고 있는데, 이런 면에서 루소와 칸트는 국제정치사상의 발전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루소의 국제정치에 대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전통적인 정치철학적 관점들과 비교해 보면 좀 더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

첫 번째 관점을 국가를 고립적 차원에서 다루는 것으로,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 국가를 설계하면서 외국과의 국제적 관계가 절연된 완전히 고립된 상태있는 국가의 질서만을 논의하고 있다.
두 번째 관점은 국가의 경계를 확대해서 세계정부와 같은 보편적 질서를 다루려는 입장으로, 단테, 칸트, 헤겔에서 이러한 사상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세 번째 관점은 개별 국가와 국제 질서를 동시에 다루고 있으면서 각각의 개별 국가는 자연상태를 극복한 사회상태에 있지만 개별 국가 간의 관계는 자연상태에 남아 있다고 보는 입장인데, 홉스와 로크가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루소의 관점은 고립국가나 세계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루소는 개별 국가와 국제 질서를 동시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홉스와 로크와 유사하나,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보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폭력이 개입할 여지가 적어질 것이라는 이들의 논리에 반대하여, 국가 간에는 폭력이 더욱 횡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루소는 고립된 자연인들이 평화롭게 살듯이, 고립된 국가들도 평화롭게 살 수 있지만, 서로가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폭력이 지배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루소의 국제정치관은 자연상태에 놓인 개별 국가를 자연상태에 놓인 자연인과 대조하여 분석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자연인에게 일반의지가 생성되듯이 개별 국가 간에도 일반의지가 생성된다면 국가 간의 평화는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인과 국가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국가는 계약을 통해 창조된 인위적 정치체라는 점에서 자연인에게 적용되는 자연법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게 된다. 인간을 움직이는 자연법의 두 원칙은 자기보존의 본성과 타인이 고통 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동정심이다.

자연인의 생존 본능은 동정심에 의해 완화되지만, 국가는 동정심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해서, 국가 간의 생존경쟁은 치열해지며 자기편애가 생존의 유일한 원칙이 된다.

루소

루소는 열정이 없는 국가는 죽은 국가이며, 국가는 국가이성보다는 자기편애라는 강한 열정에 따라 행동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개별 국가는 자신의 안전과 보존을 위해서 인접 국가와 협력을 필요로 하나, 자기편애라는 열정은 인접 국가의 협력이 보장되기 전에 먼저 개별 국가로 하여금 무한한 권력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러한 면에서 개별 국가들은 타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개별 국가를 지배하는 군주의 행동 양식을 보면 국가 간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죄수의 딜레마는 더욱 강화되고 탈출구가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루소는 군주의 최대 목표가 ‘정복’과 ‘절대적 지배’라는 두 가지 목표일 따름이며 공공의 복지, 신민의 행복, 국가의 영광 따위의 미사여구는 정복과 절대적 지배를 향한 군주의 욕망을 포장하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루소는 과도한 자기편애를 지닌 군주들로 인해 발생하는 전쟁상태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생-피에르 신부가 주장하는 국가연합의 창설이다. 국가연합이 창설된다면 각 개별 국가는 각 국가가 현재 상태에서 지닌 영토의 크기, 인구, 세력 등에 상관없이 1국 1표라는 평등한 권리가 보장된 가운데 공통의 국제법을 따름으로써 평화로운 국제 질서가 수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는 평화라는 개념에 대해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철학 체계에서 평화는 정의(justice) 이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루소는 평화와 전쟁을 대비시키면서 평화에 대한 개념 정의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는 전쟁과 평화가 서로 상관되어 있지만, 평화라는 달콤한 낱말은 휴식, 단결, 화합, 그리고 호의와 애정의 모든 관념들은 포함하고 있는 포괄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평화의 파괴가 곧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State of War, 194).

즉 예를 들어 휴식의 침해나 애정의 상실이 곧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평화는 ‘전쟁의 부재’보다도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루소가 『전쟁상태론』에서 제시하는 평화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살펴보면 그것은 정의의 개념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정의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루소에 있어 “정의는 신으로부터 나오며, 오직 신만이 정의의 원천이다(Social Contract, 65).” 루소는 이러한 정의는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love of men)이라고 말한다. 루소의 평화에 대한 개념 정의에는, 정의를 정의할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평화의 원천으로서의 신이라는 핵심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지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자유에서 찾고 있는 루소는, 인간은 자유를 상실한 순간 도덕성을 잃게 되며 더 이상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고 선언한다(Social Contract, 50).

인간을 노예로 만들 수 있는 것은 힘 또는 폭력이지만, 이러한 폭력은 결코 노예제를 영속화하고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며, 자유의 양도, 자유의 포기를 전제로 하여 발생하는 노예제도는 어떠한 명목으로도 인정될 수 없는 것이라고 루소는 공언한다.
최강자의 힘과 억압에 의한 노예제는 전쟁상태의 계속을 의미하며, 이러한 상태에서 노예는 언제나 자신의 힘과 폭력에 의존해서 반란을 꿈꾸게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루소에 의하면, 국가 간에 전쟁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일반 개인들은 단지 우연히 적이 될 뿐이며, 더욱이 이들은 인간으로서 혹은 시민으로서 적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군인으로서 적이 될 뿐이다.

다시 말해 개인들은 조국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조국의 방위자로서 적이 될 뿐이다: “우리는 그 방위병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한은 그들을 죽일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여 적 또는 적의 도구가 되기를 그만두자마자 이들은 단순히 인간으로 되돌아오며 우리는 더 이상 이들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갖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루소는 평화에 대한 염원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정당한 전쟁의 원칙처럼 전쟁 시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평화 시에 요구되는 것으로, 평화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교육’이다.

루소는 『에밀』에서 사람들을 한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이자 시민’(a man and a citizen)으로 형성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연인이자 시민이자 세계시민’(a man and a citizen and a cosmopolitan)으로 형성하는 것이 가능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에밀이 시민으로 존재할 때, 그가 추구하는 정의와 평화는 자기가 속해 있는 국가의 동료 시민을 사랑하는 것으로 한정되지만, 에밀이 세계시민으로 존재할 때, 그는 인류 전체를 사랑하게 된다. 『에밀』은 교육을 통하여 국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하나의 낙관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다.

루소에 있어 국가 간의 평화를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국가연합이지만, 이 방법은 군주들이 지닌 자기편애로 인하여 실현될 수 없는 대안으로 루소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군주의 자기편애가 절대로 극복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루소는 군주의 실질적 이익과 외양적 이익을 언급하면서, 군주가 지혜를 갖추게 되면 실질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 섞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루소는 『에밀』에서 청년기에 이른 에밀에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자기편애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편애를 타인에게까지 확장하고 개별 이익을 일반화시킬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방법은 군주나 국가에게도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원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폴란드의 시민교육이 ‘폐쇄적 애국심’에 기반을 둔 애국적 시민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에밀』에서 추구하고 있는 교육은 ‘개방적 애국심’에 기반을 둔 인간주의적 시민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루스벨트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에밀의 교육은 시민정신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가 지닌 시민정신은 애국적이라기보다는 인류애적이다. 폴란드의 청년들은 폴란드의 시민이 될 수 있을 뿐이지만, 에밀은 궁극적으로 세계의 시민처럼 느끼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생-피에르 신부의 영구평화안을 정리하고 비판하면서 영감을 얻은 루소의 평화구상안은 칸트가 『영구평화론』을 저술하는 데 있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칸트는 루소가 제시한 국가연합이라는 지역적인 평화 해결책을 뛰어넘어, 국제 평화를 위해 모든 국가가 참여하여 “국제연맹”을 결성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주창했다. 칸트는 공화국이라는 정치체제
에서는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 국민의 동의라는 과정이 필요함으로 해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각국에서 공화국제가 수립되고, 이런 공화국들이 연맹을 맺어 세계정부가 아닌 국제연맹을 결성할 때 국제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고 하는 새로운 평화이론을 제시했다.

현대에 들어서서, 루소와 칸트의 평화 구상안을 계승한 정치철학자가 바로 존 롤즈이다. 존 롤즈는 『만민법』(The Law of Peoples)에서 자신의 평화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는 자기의 기본 생각이 “『영구평화론』에서 제시된 칸트의 선도적 발상과 그의 평화적 연합의 개념”을 따르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Rawls 1999, 10). 롤즈는 칸트가 말하고 있는 공화국의 개념을 민주적 정체로 바꾸어 표현하면서, 민주적 정체는 평화 지향적이라고 주장한다.

롤즈는 국가와 국민을 구별하고 있는데,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는 타 국가와의 관계에서 전쟁상태에 있지만, 정의원칙에 입각한 민주적 사회에 존재하는 ‘자유적 만민’(a liberal people)은 다른 사회의 만민에 대해서도 정의와 평화를 보장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롤즈에 따르면 자유적 만민은 자신의 정의관에 따라서 국내적으로는 근본적 이익들을 추구하며 국제적으로는 평화를 보존하려 한다. 그러나 롤즈는 이성적으로 합당한 정의 원칙만으로는 평화를 위한 충분한 조건을 창출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루소가 말하는 자기편애의 도움을 받는 것이 긴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롤즈가 만민의 평화를 위하여 루소가 말하고 있는 ‘자기편애’를 원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눈여겨 볼 일이다. 롤즈가 이성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칸트의 평화관이다. 그러나 칸트의 평화관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루소가 말하는 자기편애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생-피에르 신부→루소→칸트→롤즈로 연결되는 국제정치사상에서 루소는 핵심적 고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루소가 없었다면, 위와 같은 사상의 연결고리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루소 철학의 핵심 개념인 자기편애는 인간은 물론 국가, 만민의 행동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자기편애에 매몰된 개인과 국가는 타 국가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인류에게 정의, 평화, 행복은 영원히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루소는 우리가 불행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 해결책은 다름 아닌 에밀과 같은 세계시민을 형성할 수 있는 교육이다.

한 국가의 경계 내에서 작용하는 일반의지는 그 시민에게 너무 많거나 혹은 너무 적은 질서를 요구할 수 있다. 일반의지가 지닌 이러한 문제는 교육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에밀과 같은 시민으로 구성된 공화국에 있어서 혼합 상태의 문제는 많이 완화되며, 모든 국가가 공화국의 형태를 취할 때 혼합 상태의 문제는 완전히 해소될 수 있다. 공화국들 간의 국가연합의 수립이라는 루소의 이상은 실천에 옮겨지기가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자기편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루소의 신념은 우리로 하여금 평화에 대해 적잖은 희망을 갖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국제정치사상에 있어 루소의 가장 큰 공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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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moon 2017-09-12 15:47:29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것은 세계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신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과 아픔이 가득한 전쟁을 바라지 않습니다 평화를 위해 실질적으로 움직이고있는 이들과 관련한 기사가 있어 첨부하니 읽어봐주세요 http://bit.ly/2f9pj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