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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을엔 시를 쓰겠어요”
방재홍 발행인

[독서신문]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노래로도 잘 알려진 고은 시 「가을편지」다. 가을은 시심에 물들게 한다. 더위에 지친 얼굴에서 시를 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벼르던 편지를 쓴 것이다. 아니 고은 시인은 ‘쓴다’가 아니라 ‘하겠’다고 했다. 쓰는 것보다 하는 게 훨씬 적극적으로 보이기는 하다. 편지를 하는 것은 편지를 부치는 게 전제돼야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고은의 편지는 실제 편지가 아니라 누구를 간절히 그리며 마음을 전하는 말 아닐까?

최근 출판계에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시집 찾는 사람들이 좀 늘었다는 것이다. 통계에 잡힐 만큼 괄목상대할 것은 아니지만 체감은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온라인으로 원고를 받아 만드는 시 전문지가 탄생했고, 한 출판사는 예비 출판 편집자 교육생들이 시인 6명과 깊이 있는 대화를 담은 책을 내기도 했다. 시인들의 내밀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인의 살냄새를 맡을 수 있어, 시인과 시에 한발 다가간 느낌이다.

그런가하면, 시집은 외교사절로도 걸음이 경쾌하다.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중국 작가 ‘치바이스(齊白石) 특별전’을 관람하면서 주한 중국대사 내외에게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선물했다. 역시 김정숙 여사는 도서출판업계의 호프다.

지난 5월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참석해 축사는 물론, 대회장을 돌며 작가를 격려하고 외국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열정을 보여 행사는 만점으로 치러졌다. 그래서 김정숙 여사를 ‘도서출판업계의 호프’라고 부른다. 특히 북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윤동주에겐 중국이 각별하고 중국으로선 윤동주가 또 의미가 있으니 윤동주 시집 선물은 센스 만점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되는 해 아닌가.

또 읽을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시도 있다. “얼굴 대보며 17년 전 아기였던 너의 냄새 맡는다/ 아기분과 젖 냄새, 분유 냄새 / (…) 다시 입히면 좋으련만 / (…) 사랑해 아가야 (…)” 단원고 2학년 딸을 세월호 사건으로 잃고 피눈물로 시를 쓴 사람은 엄마다. 추천사를 쓴 시인은 “시집에서는 칼로 살점을 도려내고 천천히 뼈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이런 시를 읽으면 나이 드는 게 서럽지만은 않다. 박남준 시인의 「쉰」이다. “그리움도 오래된 골목 끝 외딴 감나무처럼 낡아질 수 있을까 / 흘러온 길이 끝나는 곳 세상의 모든 바다가 시작되는 그곳 / 밤새 불빛 끄지 않고 뒤척이며 깜박이는 등대 같은 것”(전문) 그렇다. 나이 쉰살은 길이 끝나지만 바다가 열리는 나이이고 등대처럼 불빛이 살아있는 나이다.

가을의 복판을 넘어선 11월은 외롭다는 시인도 있다. 시인 허순행의 시 「11월」을 보자. “외롭다, 라고 말하자 구름이 몰려왔다 / 나뭇가지에 매달렸던 가을이 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물기를 털어냈다 / 시간이 회색 구름을 꺼내 입었다 // 새벽이면 깊어진 적막이 하얗게 땅을 덮었다” 높게 매달린 하나뿐인 감이 연상되고 땅 위의 서리도 떠오른다.

박남준 시인이나 허순행 시인이나 어려운 말 쓰거나 대단한 수사법을 동원한 건 아니다. 이 정도면 시 쓰는 게 어렵다 할 건 아니다. 만만하다고 하면 시인들에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시 쓰는 게 그렇게 턱이 높은 것은 아니니 한 번 도전해 보자. 이 가을 시 한편, 어떻습니까. 우선 책장에서 시집 한 권 꺼내 먼저 털고 창가에 앉아 읽어보세요.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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