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학교 허시명 대표 "막걸리는 ‘한글’입니다. 그냥 말없는 ‘교감’이죠"
막걸리학교 허시명 대표 "막걸리는 ‘한글’입니다. 그냥 말없는 ‘교감’이죠"
  • 황은애 기자
  • 승인 2017.08.2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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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아침부터 안개비가 광화문 즈음을 휘감는 것 같더니 오후 들어 방울이 굵어지며 우산을 때린다. 이런 비를 추적추적 온다 했다. 막걸리학교 허시명 대표를 만나던 7월 28일이 그랬다. 막걸리학교는 경복궁 옆에 있었고, 교실 하나에 한쪽 면은 각종 막걸리병이 점령하고 있었다.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지낸 그는 여행 작가 시절, 경치 좋은 곳에 많이 가봤다. 대부분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물이 맑았고, 물이 좋은 곳은 술도 좋다고 한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 절로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술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4권에 이른다. 어느새 전문가가 된 허 대표는 사람들에게 술을 가르친다.

비가 와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다. 허 대표는 시중에서 보기 드문 막걸리 세 병을 내왔다. 본의 아닌 낮술에 취중 인터뷰가 됐다.

- 세 막걸리에 이야기가 있어 보인다

“한살림 찹쌀막걸리는 계룡시에 있는 작은 양조장 ‘장인정신’에서 만들어졌다. 국내산 찹쌀로만 만들고, 감미료를 넣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흘러 끈적끈적하고 달보드레한 누룩 맛이 강하다.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는 막걸리 바람이 분 이래로 가장 유명세를 탔다. 금정산성이 축성됐을 당시 생긴 막걸리로, 5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평택에서 만들어진다. 한반도 호랑이 지도로 보면 평택이 호랑이 배꼽 즈음이어서 특이한 이름이 지어졌다. 화가인 아버지와 사진가인 딸이 함께 만든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해서 직접 빚게 됐고 라벨에 그림도 그려 넣었다. 음식에도 관심이 많은 딸은 식초도 만든다”

- 막걸리학교는 자리 잡은 지 얼마나 됐나

“2009년에 열어 8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 자리를 택한 건, 우리 문화를 술과 함께 얘기하고 싶어서였다. 하나 말하자면, 여긴 사간원이 있던 곳이다. 지금으로 치면 감사원이나 검찰, 언론과 같은 최강의 권력이 있던 곳인데, 사간원 관리의 혜택 중 금주령이 있어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면책특권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를 가르친다.

조만간 남산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부유한 북쪽 사람들은 떡을, 가난한 남쪽 사람들은 술을 먹었다는 ‘남주북병’이란 옛말이 있다. 그래서 남산으로 간다”

- 수강생들은 어떤 이유로 막걸리학교에 오는가

“요리 개발, 양조장 준비, 은퇴준비 등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은퇴를 앞둔 분들이 수강생의 20%를 차지한다. 귀촌했을 때 술을 빚어놓으면 친구들을 초대할 수도 있고, 김장김치를 자녀나 사촌에게 주듯이 직접 만든 술을 선물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수강생들이 술값이 안 들어 좋다고 말한다. 막걸리는 1인 노동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친분유지는 물론 창업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 기억에 남는 수강생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자기소개를 하며 한 일화를 들려줬다. 전날 막걸리를 마시고 유치원에 갔더니 애들이 ‘아빠냄새가 난다’라 말했다고. 막걸리는 술을 마시고 볼을 비볐던 아버지의 향기다. 더 나아가 막걸리를 통해 우리 정서를 표현할 수 있고, 문학적인 상상력을 키운 작가들도 많다”

- 아는 문인 중에 술꾼도 있나

“『안녕 주정뱅이』 저자이자 대학 후배인 권여선이다. 술 기행을 기획하던 중, 문학평론가이자 술 잘 마시는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 제자의 고모가 충남 서천의 한산 소곡주를 집에서 빚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밀주를 단속했던 때라 알음알음 알게 된 귀한 술을 취재하러 선배와 권여선과 찾아갔다. 소곡주를 받아들고 한산 지산에 올라 함께 술을 마셨다.

- 추천하는 막걸리는 무엇인가

“무감미료 막걸리다. 무감미료 막걸리는 맛이 확실히 깨끗하고 다음 날 숙취도 없어 좋다. 또 하나는 세계 어떤 명주도 감미료를 넣지 않기 때문이다. 원재료가 발효과정을 거쳐 나타나는 향과 맛에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맛을 내는 장인들의 어려움과 수고로움에 화답하자는 차원에서도 추천한다”

- 전통 막걸리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요즘 막걸리는 수입산 쌀로 만들어지는 게 많아 착종이 있다. 이를 ‘다문화 막걸리’라고 표현한다. 전통의 장점이나 매력을 얼마나 잘 재해석했느냐가 중요하지 옛것만을 고집해 마시는 건 아니라고 본다. 무시되고 덮어진 전통을 재해석해 큰 가치를 얻어낸다면 전통을 잘 살렸다고 본다. 근현대화 과정을 지나치게 배제하거나 무시하면 혼란스럽다. 예를 들어, 금정산성 막걸리는 전통 방식으로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호랑이배꼽은 조금 다르다. 전통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가치’를 갖고 있다. 우리 술 비중이 작다 보니 방어적인 민족주의 개념이 들어가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충분히 재해석해 표현할 수 있다. 더 넓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

- 막걸리 점유율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고령화 시대’ 덕분이다. 철도 씹어 먹던 젊은 날엔 소주를 가볍게 털어냈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는 그 맛이 부담스럽다. 소주에 비해 막걸리는 부드럽고 편안한 맛이다. 또 음주하는 여성 비율이 높아지기도 했고, 저도주의 소비가 늘어나며 음료처럼 많이 마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막걸리 종류도 소비에 한몫했다. 앞으로 막걸리 점유율의 추세도 긍정적으로 예측한다”

- 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은

“막걸리는 한글이다. 우리가 한글을 쓰는 건 조상이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에 쓰는 것이다. 내 감정을 ‘달짝지근하다’ 말하면 한국인끼리는 교감할 수 있지만, 외국인은 이해할 수 없다. 전통의 힘이고, 이 땅에서 사는 힘이다. 쌀로 만든 ‘알코올 탄산음료’를 주도적으로 마시는 민족은 한국인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말할 수 있다” / 엄정권·황은애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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