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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음악과 술이 있는 천국, 외로운 사람들 위한 공간 ‘책바’
피나콜라다 한 잔과 정인성 책바 대표가 쓴 『소설 마시는 시간』

[독서신문] “천국은 도서관처럼 생겼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도서관엔 술이 없잖아. 오히려 이곳이 더 천국과 가까울지도. 좋은 책과 음악, 그리고 술이 있는 #책바 #연희동”

9월이면 연희맛로에 문을 연지 2년이 되는 특별한 공간 ‘책바’. 책바와 관련된 후기를 살펴보니 유독 이 글이 눈에 들어왔다. 책바가 존재하는 이유, 책바의 정인성 대표가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느낌을 정확히 파악한 글이었다. 정 대표가 만든 공간 책바는 칵테일바 겸 책방이다. 도저히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책과 술이 좋아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책바를 열었을 만큼, 이 공간에는 책과 술이 영혼 같은 단짝처럼 함께 한다. 

그는 커피보다 술 한 잔과 함께하는 독서가 더욱 매력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27일 오후 책바를 찾아 그 이유를 물었다. “책을 읽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숨겨진 감수성이 살아난다고 생각해요. 논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책도 있지만, 시, 소설, 에세이는 감수성을 요구하거든요. 술을 가볍게 마시면서 그 책에 몰입할 수 있어요. 두 번째로, 술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술이 등장하는 시점에 읽는 이도 그 술을 마시면서 책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듣고 보니 납득이 됐다. 왜 그렇게 문인들이 술을 즐겨 마셨는지, 왜 최근 들어 술 마시는 책방이 늘어나는지 알 것 같았다. 책바는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문을 여는데, 더 늦게까지 했으면 좋겠다는 손님들도 있다. 혼자 오는 손님들이 70~80%고,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동네 주민들이 많고, 차를 끌고 와 술과 함께 기분 좋게 독서를 한 뒤 대리를 불러서 집으로 가는 손님들도 있다. 

책바의 매력은 뭘까. 정 대표는 책바를 다음과 같은 공간으로 구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우선, 표면적으로는 책과 술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혼자 오는 손님들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혼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면, 책은 안 읽어도 되니 글이나 일기를 쓰고, 여행 계획도 세우는 편한 장소가 됐으면 했다. 운영하다 보니 책바가 품고자 하는 범주가 넓어진 것이다. 이 또한 책바를 칵테일바나 책방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다. 

정 대표는 책바를 열기 전 LG생활건강에서 마케터로 수년간 일했다. 그러다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취미를 찾게 됐고,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따기에 이르렀다. 칵테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었고, 칵테일을 제조하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바텐더의 길을 걷게 됐고, 술만큼 책도 좋아하던 터라 과감히 책바의 문을 열었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마련해 놓은 비밀 공간

책과 술.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조합처럼 보인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그 편견을 깨고자 술에 대한 공부도 꾸준히 하고 책도 틈틈이 읽었다. 군 복무 시절부터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리뷰를 남기던 습관이 빛을 발했다. 

어느덧 리뷰들이 쌓여 300권 정도가 됐고, 읽다 보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술에는 각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작가들은 소설을 구성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술을 등장시켰다. 

예를 들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는 민트 쥴렙이라는 칵테일이 나온다. 유부녀 데이지가 개츠비와 갈등 있는 상황에서 민트 쥴렙을 마시자고 제안하는 장면인데, 민트 쥴렙은 버번 위스키를 베이스로 하고, 약간의 설탕 시럽과 스피어민트, 그리고 잘게 부순 얼음을 넣어 차가운 칵테일이다. 즉 소설 속 묘사처럼 땀방울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흘러내리는 찰나에 마시기 알맞은 칵테일이다.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데이지의 고향이 켄터키 주 루이빌이라는 점이다. 민트 쥴렙은 18세기 미국 남동부에서 탄생해 3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칵테일이다. 게다가 미국의 3대 경마대회인 ‘켄터키 더비’의 공식 칵테일로 지정돼 5월 첫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경기에서 민트 쥴렙이 서빙되고, 매년 만드는 칵테일만 해도 12만 잔이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칵테일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잘 몰랐다면 『위대한 개츠비』에는 민트 쥴렙이 아닌 다른 술이 등장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 대표는 『위대한 개츠비』 이야기를 들려준 뒤, 유독 책에서 술 이야기를 많이 하는 작가로 두 명을 꼽았다. 대놓고 두 명을 고를 수 있다고 했다. 동양의 무라카미 하루키, 서양의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책 한 권 당 칵테일 한 잔이 등장하기 때문에 책바의 메뉴 구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 덕에 책바의 메뉴판은 SS/FW 시즌별로 업데이트된다. 

헤밍웨이는 쿠바의 유명 식당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 앉아 모히토를 마시다가 기분이 나면 ‘엘 플로리디타’로 옮겨 가 다이키리를 주문하곤 했다. 그가 얼마나 칵테일을 좋아했던지, 한 바텐더는 그의 이름을 따서 ‘헤밍웨이 스페셜’이라는 칵테일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정 대표가 지난해 출간한 『소설 마시는 시간』에도 자세히 나온다. 

그는 기자들에게 세 잔의 칵테일을 만들어줬다. 한 잔은 『우리는 사랑일까』에 나오는 피나콜라다, 한 잔은 『기나긴 이별』에 나오는 김렛, 또 한 잔은 책바 사장님의 스페셜 메뉴 엘더플라워 사워였다. 사탕수수로 만든 럼을 베이스로 해, 코코넛 밀크와 파인애플 주스를 넣고 얼음과 함께 갈아 만든 피나콜라다, ‘날카로운 송곳’이라는 뜻을 내포한, 진과 로즈 사의 라임주스를 반반 섞어서 만든 김렛, 엘더플라워에 레몬과 에그화이트를 곁들여 상큼 달콤함을 자랑하는 엘더플라워 사워까지 세 잔 모두 인터뷰를 잊고 책 한 권 읽고 싶게 하는 맛이었다. 

소설가 김영하도 흥미를 갖고 찾았다는 책바. 책을 읽고 싶을 때, 글을 쓰고 싶을 때, 나를 힘들게 하는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책바를 찾아도 좋다. 편안한 웃음으로 손님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인성 대표가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 이정윤·황은애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29호 (2017년 8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이정윤 기자  jylee9395@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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