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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내 그릇'에 ‘너’는 없다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우리의 생활 양식이 외국에 비해 월등하고 품위를 갖춘 게 참으로 많다. 그릇만 하여도 그렇다. 이웃나라 일본은 사기그릇 같은 경우 이가 빠진 것을 그냥 쓰기 예사이다. 우리는 어떤가. 만약 귀한 손님이 집안에 왔을 때 이 빠진 그릇에 음식을 담아냈다면 손님을 푸대접 했다는 인상을 지울길 없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릇을 매우 중히 여긴 듯하다. 그래 음식을 담는 그릇에 흠결이 있는 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나보다. 또한 그릇을 단순히 음식만 담아내는 도구로 여기지 않았다. 사람 됨됨이를 이것에 비유하기조차 하였다.

이는 그릇의 용도에 의한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종지엔 종지 크기만큼의 음식이 담긴다. 사발은 사발 크기만큼의 음식이 담기는 것으로 보아 그릇 크기의 양적인 면을 사람의 인품에 빗댄 조상님의 발상도 일리가 있다.

요즘 세상엔 겉은 멀쩡한데 온갖 정신병을 소유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단다. 그 중에서 다중 인격, 편집증 및 열등감, 우울증은 범죄 유발 요인을 지닌 정신병이란다. 무엇보다 열등감을 지닌 자는 자신보다 외모, 사회적 신분, 능력 등이 우월한 사람을 보면 무엇으로든 흠집을 내고 트집을 잡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시기, 질투를 못이겨 상식 밖의 언행으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트리고 없는 사실을 유포하여 남의 명예를 훼손시키기 일쑤란다. 이런 자의 특징은 강자 앞에선 유순해진다는 사실이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묘한 가면을 준비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지닌 그릇이 있다. 그것이 설령 크기의 정도는 있다 하여도 이 빠진 볼품없는 그릇만큼은 피해야 할 일이다. 그런 마음의 그릇을 지닌 여인을 나는 기억한다. 사람은 여행을 해보면 됨됨이를 안다고 했던가. 어느 여인과 함께 1박의 단체 여행을 하였다.

내가 속한 어느 단체에서 알게 된 그녀와 우연히 여행지에서 단 둘이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은 숙면하기가 매우 힘들다. 밤늦게까지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다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다 첫 화제로 어느 공무원을 사직서를 쓰게 한 일을 마치 무용담인양 털어놓았다.

그녀의 말인즉 자신의 시댁에 땅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웃한 땅 임자와 무슨 일로 소송이 걸렸단다. 이 때 자신이 그 소송에서 패소하고 말았단다. 그 앙갚음으로 공무원인 이웃 땅임자의 사소한 사생활을 꼬투리 잡아 모함, 투서하여 사직서를 내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 공무원은 한창 공부하는 어린 자녀들과 노모를 모시고 있는 처지였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왠지 갑자기 그녀와 함께 한 방을 쓴다는 자체만으로도 께름칙하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화풀이 대상으로 죄 없는 사람을 모함하여 한 가정을 파탄시킨 그녀가 인두겁을 쓴 악마로까지 비쳤기 때문이다.

요즘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이해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 갖고 법적 소송으로 치닫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는 조금치도 자신은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에서 일게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잇속을 위해 타인의 삶을 짓밟는 일은  피하는 게 사람 도리 아니던가. 생선은 아무리 향내 나는 종이로 싸도 비린내를 숨길 수 없다고 하였다. 겉으론 교양과 지성을 갖춰 보이는 그녀의 허울이 순전히 내숭이었고 눈가림이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해코지한 여인과의 여행길이 꼭 구린내 나는 인분을 밟고 온 기분이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생각할수록 그런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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