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 저자] 『스무 살 아들에게』 낸 김별아 작가 "다음 작품도 역사소설"
[인터뷰- 이 저자] 『스무 살 아들에게』 낸 김별아 작가 "다음 작품도 역사소설"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8.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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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그녀 얼굴에선 미실의 흔적도 논개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팜므파탈 같은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높은 기개와 순수한 영혼을 보려한 것도 아니다.

7월 26일, 뜨거운 여름날 오후, 에어컨 빵빵한 방배동 카페와 그녀의 수다는 잘 어울렸다. 갱년기의 모정은 군대 간 아들의 전화 한 통에 눈물 찔끔 흘리는데, 부산에 있는 스마트 폰 속 아들은 탯줄이 되어 그녀의 모성을 끊임없이 당기는 듯 했다.

군대 얘기는 기자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야기는 그녀가 주도하다시피 하며 술술 잘 풀렸다. 사당역 인근에서 막걸리 번개 모임이 있다는 김별아 작가를 오래 붙들어 앉혔다.

생각보다 미인이십니다, 라는 인사말을 하고 아차 ‘생각보다’는 말은 뱉어서는 안되는 말인데… 하는 순간 김 작가는 오래된 사진을 보셨군요, 하고 받아넘긴다.

최근 『스무 살 아들에게』 책을 낸 터라 아들 얘기로 말머리 삼았다. 책은 아들이 입대한 날부터 훈련소 수료식까지 38일 동안 매일 써내려간 38편의 편지와 백일, 첫돌 때 썼던 편지를 묶으니 41편이 됐다. 김 작가는 이를 국방일보에 6개월 간 연재했다.

『스무 살 아들에게』       
김별아 지음 | 해냄출판사 펴냄 | 228쪽 | 14,500원

엄마는 아들이 낯선 벌판에 혼자 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걱정은 불안을 부르고 불안은 ‘검색’을  재촉했다. 엄마는 아들의 숨결이 있을 것이라 믿어지는 곳을 대번에 찾아낸다.

훈련병 부모들이 가입해 있다는 인터넷 카페를 샅샅이 뒤졌고 훈련소 홈페이지를 통해 전해지는 각종 잡다한 소식, 이를테면 식단도 챙겨본다. 그런 검색이 끝나야 엄마의 스마트 폰은 잠시 쉰다. 엄마의 엄지 검지가 화면을 바쁘게 상하좌우로 운동하며 호흡이 가빠지듯 스마트 폰도 배터리가 뜨끈뜨끈하다.

아들이 많이 힘들어하나요, 라는 질문은 엄마도 힘드시나요 라는 질문과 다름없다. “아이가 중· 고등학교 때 병영콘서트를 같이 많이 다녔어요. 육해공군 안 가본 데 없죠. 그런데 실제로 아들을 군대 보내려니까 다르더라고요”
 
엄마 김별아는 탁자 위에 있던 스마트 폰을 다시 집어 든다. 그리고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엄지 검지가 부지런히 화면을 탄다. 아들 군대 모습만 수십장에 이른다. 기자 시선이 한 군데 멈추었다.

지금 현재 복무일수가 얼마이고 남은 일수, 즉 전역일까지 얼마 남아있고 거기에 현재 복무율이 옆으로 누운 온도계처럼 파릇파릇 표시된다. 60%다. 푸른 군복 사이 불끈 솟은 푸른 정맥이 뛰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부른다.

엄마 김별아는 말한다. “요즘 애들은 군대가면 정체된다는 느낌을 갖는 것 같아요. 밖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다른 애들은 여행이다 뭐다 즐기고 그런 모습이 SNS에 다 뜨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엄마는 아들 군복무율이 60% 넘어서더니 이젠 다른 아들의 모습도 보이는 여유를 얻은 것 같다. 엄마의 말은 옳다. ‘군에서 느끼는 정체 또는 그에 따르는 무력감’. 김별아의 소설가 ‘촉’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직 아들이 힘들어 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안했다. 아들은 운전병으로 부산에 있다니 그 정도면 ‘아주 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자도 촉이 있다 소설가만 촉이 있는 게 아니다.

아들과 소통은 잘 되나. 그 나이 때 아들들은 부모에겐 그야말로 멋대가리 없을 때다. 친구와 어울리기 바쁘고 연애에 시간 뺏기고 공부하는 척 바쁘고, 그러니 부모와는 데면데면하다.

이 집은 좀 달랐다. “아들과 나는 좀 특별한 관계에요. 아들과는애기때부터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애기가 얼른 말을 하는 게 꿈이었을 정도에요”라는 말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엄마 김별아 소설가는 더 나아간다. “네가 말을 해야 내가 말을 해주지”라며 네가 아는 세상을 나에게 말해보렴 했다. 그런 속마음을 눈으로 느낀 아들은 엄마와 못하는 대화가 없기에 이르렀고 9살부터는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긴 소설가와 몇 년 줄곧 대화하면 좀 다르긴 다를 터.

어떤 작가도
여자를 역사 속에
가둘 수는 없다

아들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슬쩍 소설로 방향을 틀었다. 김 작가는 시원한 주스 잔을 내려놓는데 얼굴엔 아쉬움이 남고 신경세포가 일제히 일어나는 것 같았다.

“『미실』 전에는 전 무명이었죠. 그 전까지는 개인적인 체험 등을 얘기하다가 『미실』부터 역사 얘기를 한 거죠”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많이 배웠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독자와 소통하는 부분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는 말도 한다.

미실의 캐릭터는 어지간한 독자는 알겠지만 작가의 말을 보자. “성녀와 악녀, 어머니와 창부의 바탕을 한 몸에 가진 그녀이기에 누군가는 그녀에게 매혹되어 열광하고 누군가는 질시하며 비난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미실은 세상의 모든 여성이면서 그 모두를 뛰어넘은 어떤 존재다”

김 작가가 무삭제 개정판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김별아에게 미실은 성녀이며 창부이고 미실에게 김별아는 악녀이자 어머니이다.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고 그 매력은 열광을 불렀다. 20만부 훨씬 넘게 팔렸다.

『백범』       
김별아 지음 | 이룸 펴냄 | 287쪽 | 10,700원

김 작가에게 다시 물었다. 각도를 좀 달리해서 ‘모성의 관능’을 다뤘다는 평도 있는데 어떤가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을 악녀 성녀로 이분법적으로 묘사하는 게 흔합니다. 미실은 그걸 깬 겁니다. 어머니이면서 모든 남자들의 애인인 동시에 사상가였습니다.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자에요” 김 작가는 설명을 더한다. 현대 여성들이 원하는 여성상이라고. 그러면서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여자에요. 성 존중 필요합니다. 인간으로서 상대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아들 군복무율 60%…“되레 엄마 걱정해요”
다음 작품도 역사소설…조선 실제 사건 추리물
나는 개인주의자, 어설픈 민족주의 경계

그러고보니 김별아 작가는 『미실』, 『논개』, 『탄실, 『열애』 등에 조금씩은 다른 여성들이 등장한다. 역사소설이 스타일에 맞는 건가?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하고 기껏 질문했는데 답은 좀 실망이다. 실망이라기보다는 진작에 김 작가의 소탈함과 무정형·무격식을 눈치챘어야 했다. 폼 잡고 물어보면 가볍게 퉁 치는 내공이 있어 보인다.
아들 때문에 역사소설을 시작했다니 좀 허탈해서 캐물었다. “아들이 생기니까 (이야기 거리)취재도 어렵고 체험할 수 있는 분량이 줄어들어요. 김주영의 『객주』 한수산의 『부초』처럼 몸으로 부대끼며 쓰고 싶었지만 자유롭지 못했어요” 유일한 해결책이 공부였다. 『채홍』 『불의 꽃』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등 '조선여성 3부작'은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는 등 고대 중세 근세 현대사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요즘 국역도 잘 돼 있어 열심히 따라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열애』       
김별아 지음 | 해냄출판사 펴냄 | 296쪽 | 13,800원

이야기는 자연스레 개정판을 낸지 얼마안된 『열애』로 이어졌다. “나름 근대 3부작의 징검돌이에요. 『백범』 『가미가제 독고다이』를 잇는 셈이죠” 김별아 작가가 말하는 근대의 풍경은 매우 다양하고 다면적이다. 독립운동사(백범)만 얘기하면 식민지 조선(가미가제 독고다이)은 풍경이 너무 다르다. 시대적으로, 사상적으로 중간을 잇는 게 『열애』라는 설명이다.

김 작가의 소탈함은 ‘요즘 책이 잘 안 팔려요’ 라는 대목에서는 잘 몰랐지만 ‘저는 생계형 작가라서요’라는 데서 새삼 느꼈다.

다음 책은 어떤 것을 준비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에서 나온 말이다. 아들이 20살 넘으니 글쓰기가 좀 게을러졌다는 것. 그 전에는 생계형 작가라서 돈벌이 삼아 열심히 썼는데, 아들이 나이 들고 앞가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자 게으른 건지 여유로운 건지 틈이 생기기는 생겼다.

그렇다고 노는 건 절대 아니다. 김 작가는 내면의 불안이 많아 즉흥적으로 무슨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준비해야 하고 그러려니 뭔가 꾸준히 찾아야 하니 저절로 검색의 여왕이 됐다. 스마트 폰은 손에서 뗄 수 없다.

한 가지 좀 무거운 걸 물었다. 옛날 얘기를 지금 자꾸 하는 이유가 뭔가, 그만큼 현실을 잘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라고. 김 작가가 진지한 설명을 하려는 것 같다.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저는 개인주의자에요. 한국은 개인주의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가 매우 강해요. 좌파 우파도 사실상 집단주의입니다. 제가 가장 못 견디는 부분입니다. 저는 민족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런 움직임(좌우 등 이념적 집단주의를 말하는 것 같다)이 역사를 제대로 못 보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역사관을 좀 더 들어보자. “왜 조상은 늘 훌륭해야 하죠? 엄마 아빠를 훌륭해야만 사랑하나요?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었어도 열심히 살았을 터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산성(山城)에 대해 설명했다. 대체로 방어 위주로 전쟁이 나면 성 밖 곡식을 다 태우고 안으로 들어가 저항한다. 곡식을 밖에 그냥 두면 적의 군량미가 되니까. 결사항전하면서 굶는다. 거기서 살아남은 자손이 지금의 우리라는 것이다.

『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지음 | 해냄출판사 펴냄 | 363쪽 | 12000원

그러니 찡하지 아니한가. 역사는 바로 이렇게 생존의 역사라는 것. 어설픈 민족주의보다 이렇게 개개인이 살아있는 것 그 자체가 자랑스럽다는 게 김 작가의 말이다. 그래서 그가 사랑하는 역사 속 인물들은 대의에 휩쓸려 굴복하지 않았다. 곱씹을만한 대목이다.

아직 다음 책에 대한 답이 없어 재차 물었다. 역사물인데 역사 중심이 아닌 살인사건을 다루는 역사추리물이 될 것 같다는 설명이다. 조선 시대 실제 사건을 다룬다. 요즘 대세가 추리소설인 것 같다는 말도 함께 했다.

김 작가는 요즘 시집과 역사서를 주로 본다. 논문도 보고. “그냥 고무인형처럼 바닥에 붙어 있어요. 갱년기 시작인 것 같아요. 불면증도 있고요. 글은 조금씩 쓰고 있고요” 아, 그의 생체리듬이 깨지고 있다.

막걸리 모임이 있다고 해 자리를 파했다. 폭양 속 카페 골목을 돌아나가는 김 작가는 여전히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본다. 무슨 ‘검색’을 하려나. 막걸리, 그래 갱년기 여성에 좋다더라.
 / 엄정권·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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