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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칼럼] 과분한 보석은 병을 부르는 세균이다
황태영 수필가 <보림에스앤피 부사장>

[독서신문]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풍성한 결실이 있고나면 언젠가는 모진 한파가 닥치게 된다. 겨울도 영원하지는 않다. 또 다시 봄은 오겠지만 겨울 없이 봄을 맞는 사람은 없다.

추위에 지치고 힘들 때 사람들은 입산, 여행, 공연, 먹거리, 운동 등 각자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방법을 찾는다. 혼자만의 멋진 힐링도 좋지만 어른을 뵙고 지혜를 듣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후배가 딸 혼사로 열암 송정희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 동행 좀 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열암 선생님은 2006년 독일월드컵 태극전사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던 ‘투혼’, 충무공 이순신 장군 대첩비의 휘호, 두 글자에 아파트 한 채 값을 넘겼다던 현대그룹의 ‘現代’ 글씨, 드라마 ‘왕과 나’, 역대 대통령의 당선 휘호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서체로 일가를 이루신 어른이다.

그리고 고려대학교의 개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에 200억원을 호가하는 5,000점의 작품, 뇌성마비 장애인들로 구성된 곰두리축구단에 15년 이상 수백 점의 작품을 기부하시는 등 나눔도 실천하시는 통큰 서예대가이시다. 선생님을 뵐 때면 대숲에 든 것 같다. 청량한 바람을 쏘인듯 마음이 맑고 후련해진다.

선생님께서 후배에게 물었다. “결혼식장은 어디냐?” 후배가 답했다. “분당 쪽인데 제 마음에는 흡족하지 않습니다.” “결혼은 화려하고 비싼 곳에서 할 필요가 없다. 돈 자랑하고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결혼은 천박할 뿐이다. 조촐해도 실용적인 결혼이 격이 높고 아름답다.” 또 물으셨다. “주례는 누가 서기로 했느냐?” “국회의장을 지내신 분께서 어렵게 시간을 내 주셨습니다.” “주례는 지위 높고 돈 많은 사람이 서는 것이 아니라 덕 있는 분이 서야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녀 결혼식 때 본인의 일화하나를 말씀해 주셨다. “결혼 축하는 축의금액의 다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축하의 마음을 가지고 식장에 와주는 것이 최고이다. 그래서 축의금이 부담될 지인에게 빈 봉투에 이름을 미리 적어서 주고 꼭 그 봉투를 축의금 함에 넣으시라고 말씀드렸다. 결혼식장에는 꼭 오셔야 한다고 누차 당부도 했다.

나중에 집에서 축의금 함에서 빈 봉투가 나왔다고 이상해 했다. 그래서 그 분이 돈이 든 봉투와 착각한 것일 수 있으니 얘기 나가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결혼식장에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려고만 하니 결혼이 축복이 아니라 장사가 되어 버린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결혼식은 자신의 분에 맞게끔 하고 하객들도 자기 분에 맞게끔 축하를 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높은 분들이 많이 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주 만나는 분들이 많이 와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이 최고의 결혼이다.

화려한 것보다 간소하고 간단한 것이 좋다. 선생님께서 충무공 대첩비 뿐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유명한 분들의 휘호도 많이 쓰셨다. 그래서 명함이나 도록에 약력이 복잡하고 길다. 어느 날 지인이 선생님께 충언을 했다. “충무공 어른의 휘호를 적으셨는데 다른 분들 수백 명의 휘호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명함에 잡스런 많은 다른 이력들을 적는 것을 보았습니까? 충무공 휘호 하나만 약력에 적어 놓으시지요.”

복잡하고 현란한 삶보다 맑고 담백한 삶이 아름답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는 삶보다 무괴아심(無愧我心), 스스로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 격이 높다. 도연명은 생활이 몹시도 궁핍했다. 쌀은 떨어지고 추위에 떨었지만 도무지 밥벌이 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하도 사정이 딱해 집안의 어른 한분이 도연명에게 고을 현령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해 공직을 맡았지만 석달 정도 지나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시 생계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판 것이 부끄러워졌다. 쌀 다섯 말의 봉급을 위하여 상급 기관의 관리들에게 굽실거려야 하는 현실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도연명은 사직을 했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자신의 성정에 맞게 전원생활로 돌아왔다. 도연명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현령 생활보다 몸소 농사짓고 청빈한 생활을 하며 또 술과 국화를 사랑하고 시를 지으며 훨씬 더 즐겁고 만족한 삶을 살 수가 있었다.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은 공허하다. 흠집이 생길까, 도적맞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보석은 보석이 아니라 병을 부르는 세균에 불과하다. 빈한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야 하고 거짓 웃음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 당당할 수 있는 맑음보다 더 값진 보석, 더 아름다운 삶은 없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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