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혼돈과 질서는 복잡하지만 그 반복은 곧 인류 역사"- 신국조 교수 '프리고진, 복잡계의 이해' 강연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혼돈과 질서는 복잡하지만 그 반복은 곧 인류 역사"- 신국조 교수 '프리고진, 복잡계의 이해' 강연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7.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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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의 7월 22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2섹션 과학/과학철학의 일곱 번째 강연으로 신국조 UNIST 석좌교수의 '프리고진, 복잡계의 이해'를 주제로 진행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신국조 UNIST 석좌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맥길(McGill)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UNIST 석좌교수이자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다. 역서로는 일리야 프리고진, 이사벨 스텐저스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대화』 등이 있고 『현대 과학혁명의 선구자들』 등을 공저했다. 그밖에 제1회 서울대 연구상(1999), 대한화학회 이태규 학술상(1999)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2012)을 수훈했다.

신국조 UNIST 석좌교수

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프리고진은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계에서는 요동의 증폭으로 인하여 계가 불안정해지고 어떤 분기점에서 새로운 자생적으로 조직화된 질서 있는 산일 구조가 생성됨'을 알아내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찾았다"고 프리고진의 업적을 강조했다. 

이어 신 교수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가 얻어진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계가 다시금 불안정해지며 또 다시 나타나는 분기점에서 새로운 혼돈 상태로의 진화가 이루어진다"며 "자연 현상이 혼돈에서 질서로, 다시 질서에서 혼돈으로의 진화가 이루어지듯이 인류의 역사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는 복잡성의 과학을 탄생시켰고 이는 다른 분야에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특히 신 교수는 중간 중간 문학작품 예를 들어 관심을 끌었다. ㄴ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로 잘 알려진 헤밍웨이의 이 소설 제목은 같은 제목의 영국 시인 존 던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음은 강연 요약.

* 젊어서부터 고전에 심취했던 프리고진 자작(Vicount Ilya Prigogine, 러/벨, 1917~2003)은 특히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프, 1859~1941)이 그의 저서인 『창조적 진화』(1907)에서 도입한 시간에 관한 참신한 개념인 ‘지속(duration)’의 개념을 매우 좋아하였다고 한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시간의 본성으로서의 ‘지속’은 발명, 형상의 창조, 절대적 새로움의 연속적 정교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드 동데르(Theophile de Donder, 벨, 1872~1957) 교수의 지도로 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프리고진은 ‘화학적 활성도’와 비가역성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고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문제에 그가 도전하게 된 것이다.

고전 역학과는 별도로 경험적이고 거시적 현상을 기술하는 열역학에 대한 관심은 프리고진으로 하여금 거시적 수준의 비가역성에 대한 탐구를 본격화하도록 한다.

비가역성에 관한 프리고진의 첫 번째 중요한 기여는 평형 상태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선형 비평형 상태에서의 ‘최소 엔트로피 생산 정리’이다. 선형 비평형 상태의 계는 주어진 구속 조건에 맞도록 이 정리로 규정되는 정상 상태를 향하여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의 두 번째 획기적인 기여이며 그에게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한 연구는 후에 화학 분야의 복잡계로 알려진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비선형 비평형 화학 반응에 관한 것이었다.

프리고진과 그의 브뤼셀 학파는 ‘브뤼셀레이터’로 알려진 화학 반응의 모형을 심층 연구하여 실로 놀라운 결과를 예측하게 되었다.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계에서는 요동의 증폭으로 인하여 계가 불안정해지고 어떤 분기점에서 새로운 자생적으로 조직화된 질서 있는 산일 구조가 생성됨을 보여 주었다. 이로써 그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찾아낸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과학적인 세부적 내용보다 프리고진이 스텡거스(Isabelle Stengers, 벨, 1949~ )와 공동으로 집필하여 단숨에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1984)』2에서 밝힌 바와 같이 프리고진에게 ‘복잡성의 과학’을 연구하도록 한 동기를 부여한 철학적 배경과 예견을 시대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1687년은 인류가 드디어 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한 역사적인 해였다. 뉴턴의 최고의 걸작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발표된 것이다. 제1권에서 그는 그가 찾아낸 운동의 법칙을 설명하였다. 관성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그리고 운동 방정식으로 표현된 가속도 법칙 등이 그것이다.

‘세계의 체계’라는 제목을 붙인 제3권에서 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소개하면서 지상과 천상의 물체들이 공히 이 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밝혀 내었다. 뉴턴적 종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영국의 시인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는 다음과 같이 뉴턴을 칭송하였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들은 밤의 장막 속에 숨겨져 있었다. 신이 말하기를… 뉴턴이여 태어날지어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빛이었다.”

뉴턴의 고전 역학은 첫째로 결정론적이다.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프, 1749~1827)의 악마와 같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전지 전능한 존재라면 모든 것을 고전 역학에 따라 예측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분석적이다. 계를 구성하는 개체들의 움직임을 파악함으로써 전체 계를 분석할 수 있게 한다. 셋째로 기계론적이다. 동역학의 법칙과 초기 조건의 이중성에 따라 세계는 기계와 같이 맞물려 돌아 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넷째로, 비인간적이다. 신(神)으로부터 해방되기는 하였으나 기계처럼 돌아가는 세계에 인간의 자리가 없는 것이다.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뉴턴의 고전 역학의 대두로 인간과 자연의 대화가 끊어지고 철학, 문학을 위시한 인문학 분야와 자연과학 분야 간의 괴리를 낳게 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행한 리드 강연을 토대로 스노우(C. P. Snow, 영, 1905~1980)가 집필한 『두 문화』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두 주제가, 두 분야가, 두 문화가, 심지어는 두 은하가 부딪치는 점에서 창조적인 기회가 발생한다. 정신적 활동의 역사에서 돌파구는 바로 이 점에서 이루어졌다.”

이보다 훨씬 후인 2010년대에 아이폰을 개발하여 휴대전화의 새로운 세상을 연 최고의 영원한 몽상가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 미, 1955~2011)는 ‘인문학과 기술의 경계면에서 창조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개발한 잡스는 실제로 사람들이 이메일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고 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는 것을 선호한 그는 애플 본사를 지을 때 건축 설계에서부터 직원들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배려하였다고 알려졌다. 이야말로 현대판 인간적 상관 관계의 조성의 한 사례로 보인다.

고전 역학이 시간에 대하여 가역적이라면 인문학은 시간에 대하여 비가역적이다. 서강대 철학과의 최진석 교수는 EBS 「인문학 특강」 ‘현대 철학자 노자’에서 인문(人文)이란 ‘인간이 세월 따라 그려내온 무늬’라고 정의하였다. 인문학의 비가역성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자유의 두 가지 개념들』(1958)에서 부정적 자유와 긍정적 자유의 정의로 유명한 벌린(Isaiah Berlin, 영, 1909~1997)은 이미 두 문화 사이의 분열을 예측하였다. 그는 반복적이고 보편적인 자연과학과 특정적이고 독특한 인문학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영국 성공회의 신부이며 형이상학적 시인이기도 한 존 던(John Donne, 영, 1573~1631)은 다음과 같은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써서 유명하다. "아무도 그 자체의 전부로서 섬이 아니다. 누구나 대륙의 한 조각이며, 주류의 한 부분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버리면 유럽은 작아진다. 만일 곶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로. 만일 그대의 친구의, 또는 그대 자신의 저택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왜소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하는 것을결코 알려고 하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후에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미, 1899~1961)는 존 던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제목을 붙인 명저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로 노벨 문학상(1954)을 받게 된다.

완벽한 것으로 보이던 뉴턴의 고전 역학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첫 번째는 아인슈타인에 의한 특수 상대성 이론이었다. 원래 고전 역학에는 보편적 상수가 없다.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발견된 최초의 보편적 상수인 빛의 속도는 또한 불가능성을 나타내는 한계치이기도 하다. 이에 따르면 어떤 관측자도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신호를 전파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균열은 양자 역학의 등장이다. 1900년에 흑체 복사에 관한 연구를 하던 플랑크(Max Planck, 독, 1858~1947)에 의하여 폭탄처럼 던져진 양자(量子, quantum)의 개념은 뉴턴의 고전 역학의 아성을 뿌리부터 흔들어놓았다.

고전 역학적인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어떤 값이든지 갖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양자 역학에서는 에너지가 오직 불연속적인 값만을 갖게 된다. 또한 양자 역학에는 보편적 상수인 플랑크 상수가 등장한다. 플랑크 상수의 유한한 값은 고전 역학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파괴하여버렸다. 두 가지의 물리적 양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확률론적인 세계관이 등장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1917년에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정적이고 시간이 없는 견해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FLRW 계량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 1922), 르메트르(Georges Lemaitre, 1927), 로버트슨-워커(Howard Robertson-Arthur Walker, 1935) 등은 아인슈타인의 장(場) 방정식의 정확한 시간에 따른 또 다른 해를 구함으로써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게 되었다.

프리고진

그 후 이들의 예측은 1920년 말에 팽창하는 우주에 관한 허블(Edwin Hubble, 1889~1953)의 실험으로 증명되었고 1930년에 에딩턴(Arthur Eddington, 영, 1882~1944)에 의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은 본의 아니게 ‘물리학의 다윈’이 된 셈이다. 다윈에 의하면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의 관점에서 본 우주적 모형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또한, 아인슈타인의 원래 본의와는 다르게, 진화하는 우주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카르납(Rudolf Carnap, 독, 1891~1970)과의 대화 중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은 물리학에서는 다룰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과학 영역 밖의 어떤 본질적 것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하였다.

에딩턴은 『물리적 세계의 본성』(1928)에서 시간의 일방적 행로로서 ‘시간의 화살’을 언급하였다. 그에 의하면 시간의 화살은 첫째로 의식에 의하여 생생하게 알려지게 되고, 둘째로는 화살을 뒤집으면 외적인 세계가 엉망이 되어버린다는 이성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으며, 셋째로 개체들의 조직화에 관한 연구를 제외하고는 물리적 과학에 시간의 화살은 없다는 것이다. 단, 이 경우에는 무작위 요소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방향이 화살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미국 태생으로 일찍이 영국에 귀화한 위대한 시인 엘리엇(T. S. Elliot, 미/영, 1888~ 1965)은 그의 너무나도 유명한 서사시 「황무지」에서 ‘잔인한 사월’을 노래하였으나 또한 시간에 대하여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 만일 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존한다면 모든 시간은 회복될 수 없다. …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었던 일은 한 끝을 지향하며, 그 끝은 언제나 현존한다. … 나의 시작에 나의 종말이 있다. … 나의 종말에 나의 시작이 있다. - 엘리엇, 『네 개의 사중주』 「번트 노튼」 중에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철학자로 알려진 포퍼(Karl Popper, 오/영, 1902~1994)의 시간의 화살은 넓고 평평한 수면에 돌이 떨어지는 장면을 찍은 영화의 필름을 되감으면 알 수 있게 된다. 이때 진폭이 증가하며 수축하는 원형 물결파를 볼 수 있으며 가장 높은 파고 바로 뒤에는 전혀 교란되지 않은 원형 영역이 중심을 향하여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은 고전적으로 불가능하며 따라서 따라서 고전적 비가역 과정이 존재함을, 즉, 시간의 화살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가 얻어진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계가 다시금 불안정해지며 또 다시 나타나는 분기점에서 새로운 혼돈 상태로의 진화가 이루어진다. 자연 현상이 혼돈에서 질서로, 다시 질서에서 혼돈으로의 진화가 이루어지듯이 인류의 역사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는 복잡성의 과학을 탄생시켰고 이는 다른 분야에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역사학, 정치학, 행정학, 경제학, 의학, 예술, 종교 등 실로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많은 현상들이 혼돈과 질서의 교향곡인 셈이고 이들의 진행 과정과 발생 원인을 잘 파악함으로써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프리고진은 1983년 미국 종교학술원 연차 총회의 ‘종교와 새로운 물리적 과학: 열역학, 진화, 그리고 신(神)’을 주제로 하는 심포지엄에서 행한 강연에서 시간의 재발견이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의 모든 수준에서 마주치는 변화의 메커니즘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태어난 우주에 보다 나은 인류의 동상사상을 이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도록 했다고 하였다.

레이저와 에딩턴이 이야기했던 시간의 화살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팽창하는 우주에서는 정보의 보존이 불가능하며 또한 푸앵카레 식의 회귀도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비가역적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고유한 비가역성을 포함하는 미시적 이론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타계한 프리고진의 꿈인 베르그송의 ‘지속’을 내포한 ‘시간의 화살’이 누군가에 의하여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을 기대해본다.
프리고진이 인용한 탈무드에 의하면 신의 천지창조도 26번의 시도 후에 이루어졌거늘, 제2의 모세인 뉴턴과 세기의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능가하여 비가역적인 미시적인 세계와 거시적인 세계를 연결하는 혁명적인 새로운 종합이 사변적인 철학에 의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시도 끝에 결국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는 것이다.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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