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책방의 휴가- 북스테이, 북숲테이] 파주 '평화를 품은 집'
[숲 속 책방의 휴가- 북스테이, 북숲테이] 파주 '평화를 품은 집'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7.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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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평화를 품은 집’은 딱 파주에 있는 게 맞다. 경기도 중부나 남부 쪽에 있는 ‘집’이 평화를 내세우는 것은 좀 안 맞다.

파주 저 끄트머리에 판문점 가기 전 오른쪽으로 빠져 임진강 풍천장어집을 보고 우회전해 죽 들어가면 더러 경운기도 만나고 민박집 팻말도 지나고 아직 멀었나 싶을 때 작은 이정표가 보이고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가 비탈인지 산기슭인지 오르면, 이 더운 날 차마저 허덕일 때쯤 산 속에 폭 파묻힌 집이 보인다. ‘평화를 품은 집’이다.

산비탈 지형 그대로 지은 집이라 내부는 경사를 이루며 꽤나 깊숙이 내려간다. 집은 겉보기와 달리 아늑하고 온화하다. 조명을 받은 나무 벽과 천장은 따뜻해 보이고 평화로움마저 느껴진다. 이 곳은 도서관 겸 하루 묵을 수 있는 북스테이 집이다. 책은 대부분 평화와 연관이 있는 책 5천권이 있다. 동화 책도 꽤 많다.

황수경 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하룻밤 자려면 5인 이하는 기본료 3만원에 한 사람당 1만원이다. 다섯명이면 8만원이다. 침대나 침구류는 없어 침낭을 가져와야 한다. 잠은 도서관 내 아무데서나 잘 수 있다. 방 바닥에서 자도 되고 열람실에 적당히 침낭을 펴도 된다. 한겨울에는 카펫을 깔아준다고 한다. 오리털 파카 입고 그냥 자는 손님도 있다. 다락에는 전기 패널이 있어 뜨끈뜨끈하다.

책이 많은 곳이라 취사 시설은 없다. 간식 거리 정도 싸오면 좋고 더러는 캔 맥주에 안주를 사와 밤새 얘기를 나누는 손님도 있다. 아침에는 빵과 커피를 사 먹을 수 있다. 이 집 딸이 만든 수제 국산 밀빵이다. 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해 인기 있다는 게 엄마 황수경의 말이다.

황 관장이 말하는 이 곳 ‘평화를 품은 집’의 특징은 단연 제노사이드 역사 자료관이다. 국내 유일하다. 제노사이드는 인종멸절 또는 인종 대량 학살 등의 뜻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 일본군의 중국 난징대학살, 캄보디아 킬링필드, 르완다 제노사이드 등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고통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평화 관련 책 5천여권, 제노사이드관 국내 유일
뒷산 오르면 개성 보여…자연 속 힐링 따로 없네

황 관장의 남편이자 이 집의 ‘집장’인 명연파 대표가 해외 현장을 가거나 미국 등을 찾아 자료관에 쓸 자료를 요청해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재작년에는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100주년을 맞아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이 곳에 와 추모행사를 갖기도 했다.

평화의 집에 전혀 평화롭지 않은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을 만든 것은 전쟁의 참상을 봄으로써 평화에 대한 의미를 새기고 또 이를 기억하고 후대에 알려야 하는 게 어른들 몫이라 생각해 마련했다는 게 황 관장의 설명이다.

제노사이드,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 좀 끔찍하기도 하고 보고 싶지 않은 사진도 여럿 있지만 안 본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 게 역사 아닌가. 직시하지는 못해도 모른 척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자료관을 찾은 보람이 있는 것이다.

다락에는 위안부 전시관이 있다. 위안부 사건을 기억할 수 있게 닥종이로 소녀상 등 여러 종이 인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천장이 낮아 앉아서 봐야 한다. 앉아서 보는 게 위안부 슬픔에 대한 예의라면 예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1층 서가 책은 홀로코스트, 오키나와 강제집단사, 인권, 한국전쟁, 세월호, 제주 4·3 사건 등 관련 책이 많다. 책이 너무 어렵고 내용이 무겁지 않느냐는 물음에 황 관장은 “북스테이하면서 읽기에는 괜찮아요. 일부러 오는 손님도 많아요. 일반 서점에서는 구하기 어려워서 여기서나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차분해지고 힐링도 될 것 같네요 묻자, 황 관장은 “제노사이드를 다루고 있기에 더욱 평화를 품은 집이라고 말들 해요. 하룻밤 자고 나면 평화로워졌다고 농담삼아 얘기해요. 아픈 이야기가 있다면 그 아픈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해요. 어떤 분은 제노사이드 설명이 끝날 때까지 울기도 해요” 또 어떤 사람은 밖의 풍경이 좋다며 힐링 제대로 했다고 하기도 하며 ‘평화를 품은 집’에서 자연의 품에 안기니 좋다고 하는 손님도 있다고 황 관장은 설명한다.

집에서 나와 4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아이들은 이 산을 ‘평품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전망대가 있어 멀리 개성공단도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은 바로 곁에 있는 ‘숲교실’ 생태 설명 선생님을 따라 둘레길을 돌며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약간의 입장료를 받으며 500여명에게 후원을 받고 있지만 살림은 팍팍하다. 그러면서 돈이 없다면 그냥 와서 보라고 선심을 쓰니 여유가 있을 수 없다. 파주시는 도서관 지원 명목으로 1년에 580만원 준다. 전체 운영비의 10분의 1도 안된다. 그래도 황 관장은 환하게 웃는다. “즐거워서 하는 일이죠” ‘평화’를 품으면 무엇인들 어려울까.
/ 엄정권·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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