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자]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 펴낸 이승구 박사 "의학이 되기까지 인류는 고통과 무지의 연속"
[이 저자]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 펴낸 이승구 박사 "의학이 되기까지 인류는 고통과 무지의 연속"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7.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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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고흐의 귀 잘린 자화상 그림이 나오고 뭉크의 걸작 ‘절규’도 등장한다. 마취 없이 맹장수술을 하고 부상병 다리를 자르는 그림도 있다. 1950년대 영국의 한 병원 대기실은 지금 서울 시내 종합병원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죽음을 앞둔 조지 워싱턴과 주치의들’ 작품은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인다.

동서를 가로지르고 고금을 꿰뚫어 의학과 관련된 그림을 모았다. 의학의 상징이라고 알려진 뱀이 휘감긴 지팡이와 십자가부터 1950년대 병실 그림까지 수백여점에 이르는 그림과 도판은 의학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른다. 이 작품을 고르는 몫은 당연히 의사 아니면 안 될 노릇이다.
 

이승구 박사. 자작시집 '동심'을 내기도 했다.

의사의 눈으로 작품을 고르고 의사의 손으로 쓴 책이 바로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다. 지은이는 정형외과 전문의 이승구 박사다.

이승구 박사는 가톨릭의대 명예교수를 마치고 대전 선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2월에 은퇴하고 3월부터 대전에서 일하고 있으니 쉴 짬도 없었다. 그를 선병원 진료실에서 만났다.

이 박사는 독서신문이 주최하는 '책 읽는 대한민국- 북금콘서트'의 8월 11일 강사다. 북금(book金)콘서트는 '불금' 금요일을 벗어나 책과 함께하는 금요일에 저자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다.

진료실은 환자용 침대(흔히 볼 수 있는 비닐 재질에 색깔은 아주 옅은 연두색으로 앉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높았다) 하나에 역시 환자용 의자(등받이가  없는 대신 회전은 된다)가 하나 있다.

왜 환자용 의자는 어느 병원이나 이렇게 옹색할까 하는 의문을 가진 채 기자는 환자용 의자에 앉고 닥터 이승구 박사는 컴퓨터가 두 대 맞물려 있는 널찍한 책상 앞 푹신한 의자에  앉고, 기록 담당 여기자는 노트북을 켜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타이핑이 매우 불편한 자세로 자주 몸을 뒤척였다.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됐다. 의학에 문외한인 기자는 작품 수집 등 변두리 얘기를 많이 했고 이 박사는 당연히 전문적인 의술 얘기가 많아 대화는 때로 얽히고설키기도 했지만 이 박사의 호탕한 웃음 덕에 시종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       
이승구 지음 | 생각정거장 | 296쪽 | 16,000원

무엇이든 모으려면 발품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하고 비용도 지출해야 한다. 이 박사는 외국에서 학회 등이 열리면 반갑게 나섰다. 투어 일정이 있으면 다른 참석자들은 관광이나 쇼핑에 바빴지만 이 박사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가면 지하 1층 지하 2층으로 바로 가죠” 가서는 의대교수라고 소개하고 옛날 의학 그림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그림을 보거나 사고 싶다고 한다. 두어시간 뒤 다시 가보면 컴퓨터에 그림을  죽 보여준다. 20~30장 골라 돈을 지불한다. 프린팅된 그림으로 한 번에 20만원 정도 돈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의학도 시대상을 반영하고 거기엔 거짓이 없구나. 톱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무지함이 오늘날 매끈한 수술로 발전하고 (이 수술은 특히 이 박사 전공인 정형외과 분야다) 청진기도 숲속에서 속이 빈 통나무를 두드리며 노는 아이들을 보고 고안한 것임을 보여주는 그림을 보면 새삼 의학의 발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청진기 발명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양쪽 귀로 듣는 청진기가 선보인 것은 1850년이니 160년 정도 됐다.

한스 폰 게르스도르프, ‘전쟁 부상에 관하여’에 실린 삽화, 1517년. 소작 치료용 도구들과 소작법 치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절단 수술용 기구, 17세기 이탈리아 수술 도구 상자, 브레시아. 톱 망치 끌 등이 보인다.

청진기와 관련, 환자의 배나 가슴을 두드리는 타진법 에피소드 하나. 현대적인 타진법은 300년 전 오스트리아 의사 레오폴트 아우엔브루거가 처음 보고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맥줏집을 경영했는데, 아버지는 맥주통을 주먹이나 나무망치로 두드려 맥주가 통 속에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보곤 했다.

아버지의 이 기술은 탁월해 다른 술집처럼 맥주가 동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빈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아우엔브루거는 힌트를 얻어 많은 사람을 실험해 ‘가슴을 두드려 병을 알아내는 새로운 진단 타진법’이라는 책을 냈다. 그러나 빈정거림이 쏟아졌다. “환자 몸에서 나는 소리로 오페라라도 작곡하려나?” 빈은 음악의 도시 아닌가.

이 박사는 10년 전부터 그림을 수집하면서 책 내는 것도 아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도대체 의학과 관련된 예술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의학 자체가 예술품이 되기가 어렵잖아요. 수술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그렇고 사진을 찍는 것도 작품이 안 될 것 같고 조각품은 더욱더 안될 것이고…” 그래서 이 박사는 고대 의학서를 뒤졌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은 어떻게 했는가를 살펴보았다. “불에 달군 숯덩어리를 상처 위에 올려 지져 ‘치료’하기도 하고, 약초를 으깨 붙이는 건 양반이죠. 환자가 고통에 울고불고하면 술 한 잔 먹이거나 재갈을 물리는 게 고작이었죠. 1차 세계대전 때는 부상병 치료하면서 화약 가루를 상처부위에 뿌리고 불을 붙여 태웠죠” 생각만 해도 끔찍한 모습이다. 당시엔 수술하면 60%가 감염으로 죽었다. 소독법이 개발되면서 15% 정도로 줄었고 지금은 절단수술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박사는 책 만드는 데 4년 걸렸다. 의학과 예술의 만남에 대한 책이 국내에는 전례가 없고 외국 서적도 찾을 길이 막막했기에  개척자와 다름없었다. 우선 단편 지식을 중점으로 모았다.

예를 들어 마취과학 책을 통해 마취의 역사 등을 조각조각 모으고, 외과학 책을 통해 과거 수술 얘기 등을 하나 둘 모아 씨줄로 삼고 의사, 간호사, 병원 등 역사를 모아 날줄로 삼아 엮었다. 여기에 미술작품으로 옷을 입혔다. 그 옷 입히는 데 10년을 바쳤다.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년, 캔버스에 윷.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뒤 그린 그림이다.

이 책에는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과 ‘별이 빛나는 밤’도 실렸다. 모두 자살 직전의 그림이다. 고흐는 귀를 면도칼로 자르고 병원에 제 발로 찾아갔을 정도니, 후세에선 그의 작품과 함께 정신세계를 화제에 놓을 수밖에 없다. 당시 프랑스 화가 카미유 피사로가 고흐를 두고 “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게 될 것이다”라고 한 말이 여운을 남긴다고 할까.

또 하나 걸작 뭉크의 ‘절규’도 보인다. 뭉크는 5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누이 아버지 등을 차례로 잃는다. 죽음의 공포가 평생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를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사람’이라고 불렀으니 그는 생은 죽음의 그림자와 늘 함께였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공포와 죽음과 이웃해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박사는 두 거장을 「두려움, 신경정신증의 시초」라는 챕터에서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1893년, 판지에 혼합재료

이 박사는 책머리 ‘들어가며’를 통해 “옛 의학 예술품들과 관련 삽화들을 감상하면서, 과거 의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현재와 미래의 건강한 삶을 즐길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여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흰 가운을 입은 역사학자’였다. 그가 컴퓨터 화면 속 그림들을 보며 설명하는 손가락은 어느덧 고흐의 붓처럼 힘찼다.
/ 엄정권·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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