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소설가 김애란은 문체가 담백하다.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고 때로는 지나치게 간결해 차가운 느낌마저 줄 때가 있다. 작가생활 15년에 접어들었다.
출판사(문학동네)가 보내 준 자료에 따르면 끊임없이 자신을 경신하며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 없다. 이런 마음으로 『바깥은 여름』을 폈다. 단편 7편이 실려 있다. 기자는 습관대로 먼저 맨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일독했다.
소설집 문을 연 작품은 「입동(立冬)」이다. 소설집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하고 첫 작품은 「입동」이라…, 궁금했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 그들의 일상은 부서지며 시도때도 없이 밀려드는 슬픔은 이들 부부 자리에 옹이처럼 남는다. 태어난지 52개월된 아이가 없는 집은 어둠에 싸이고 남편이 퇴근 후 딸각, 스위치를 켜면 부엌 한 쪽에서 흐느끼던 아내의 얼굴과 다시 딸각, 불을 켰을 때 거실 구석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아내의 윤곽(23쪽)뿐이다.
그러다 입동 즈음 도배를 한다. 벽에 붙은 수납함을 뒤로 빼내는데, 바닥에 뽀얀 먼지가 네모나게 드러나고, 걸레질하던 아내가 갑자기 꼼짝 않는다. "여기… 영우(아이 이름)가 뭐 써놨어…. ‘김’이라는 성과 ‘이응’을 써놓았다. 아이가 쓰다 만 이름을 어루만지는 아내의 텅 빈 눈동자는 불 꺼진 형광등처럼 어두웠다. <57쪽>
무엇을 잃든 누구를 잃든 상실은 그만한 부피의 공백을 남기고, 남은 것들 또는 남은 자들은 그 공백을 메울 방법을 찾는다. 아니 그 공백을 메워야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 물이 앞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듯이.
그런 점에서 떠남과 상실은 소설 맨 마지막 편에 다시 등장, 독자들은 작가가 만든 웅덩이에 빠졌다 흠뻑 젖은 채 나온다.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72쪽 │ 13000원 (133×200㎜)
앞 웅덩이를 채워야 물이 앞으로 나아가듯
상실의 부피만큼 일상은 또 채우는 것
상실은 채움이 되고
또 다른 만남의 기약이 된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을 그렸다. 계곡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고 물 속에 뛰어든 남편. 아내는 나를 남겨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자기 삶을 버릴 수 있느냐고 울음으로 묻는다.
캄캄한 심연을 향한 질문은 제자(지용)의 누나로부터 ‘사모님 앞’ 편지를 받고는 줄곧 외면했던 눈을 보게 된다. 바로 소리도 못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들이켜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265쪽>이다.
제자의 누나는 편지에서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라고 한다. 남편은 그렇게 따뜻함을 남기고 간 것이다.
「입동」에서 (아들이) 미처 다 쓰지 못했지만 성과 이응을 남겼듯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남편은 따뜻한 손을 (죽은 제자에게) 남긴다. 상실로 빠져나간 일상의 부피는 이렇게 새로운 부피가 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상실은 또 다른 채움이고 또 다른 만남의 손을 내민다.
'작가의 말'을 그래서 다시 봤다.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작가는 상실을 보고 있을까, 채움을 보고 있을까. / 엄정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