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미술의 피부』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미술의 피부』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7.1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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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미술잡지 편집장을 오래 한 저자 이건수는 예술의 현실에 대한 사색자이며 비판자이다. 그래서 여러 글들을 쓰고 모았다. ‘단상’이라고 해 버리기엔 미련이 많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피를 토하듯 쓴 어느 편집장의 미술계 현장에 대한 번뇌의 기록을 의미 있게 바라봐줄 일반 독자는 많지 않다”고 했다. 또 ‘글은 죽어서 바스러진 생각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읽어보면 이건수 글은 죽지도 않았고 바스러지지도 않았다. 팽팽한 캔버스처럼 사고는 팽창하고 맑은 수채화를 보듯 마음이 경쾌해진다.

저자가 지쳐 잠든 아내에게 바치는 시의 첫 구절 “너도 한때는 푸르렀으리라”를 생각하면 짠한 마음이 들지만 글쓰는 사람들 마음이야 언제 들어도 다 짠하다.

『미술의 피부』 저자 이건수

미술계 겉만 번지르르 욕망의 아귀다툼
순수함을 잃었다

몸짓과 과정 삭제된 얄팍한 젊은 작가들
땀도 눈물도 없다

굳이 패러디한다면 “누구나 한때는 푸르렀다. 그 한때가 있어 그가 추억된다”고. 중간중간 그의 글을 옮겨만 놓아도 책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몇 대목을 옮긴다.

* 지금 이 순간 동시대 우리의 미술은 왠지 모르게 암울하고 비굴하다. 어쩌면 한국미술의 중세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미술인’과 ‘미술적 정치인’이라는 대립적으로 보이는 미술인들이 미술계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것이 권력화되어 영원으로 이어지는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는 결론밖에는 없다. (…) 이제 미술계는 겉만 번지르르한 축생계일 뿐이며 욕망덩어리들의 아귀다툼이 되어버렸다. <11쪽>

* 자기 인생의 경로와 결과를 마치 스마트폰에서 지식 검색하듯 찾아내어 그 성공의 지름길에 올라타려고 하는 젊은 작가들을 많이 보았다.
실질적인 몸의 쓰임이 없는 디지털 환경에 도취되어서 그런가. 그들의 작품은 스마트하지만 얇다. (…) 그러나 몸짓과 과정이 삭제된 그림 속에선 영민함만 빛난다. 그들에게서 향기로운 땀 냄새와 찬란한 눈물 자국을 느끼고 싶다. <42쪽>

 

『미술의 피부』   이건수 미술산문집   
이건수  지음 | 북노마드 펴냄 | 272쪽 | 11000원 (123×191㎜)

* 책이 주는 아날로그적 시간의 관성을 나는 옛 시집을 뒤지다가 발견했다. 한참 전에 돌아가신 김광균 시인의 「목련」이었다. “목련은 어찌 4월에 피는 꽃일까 / 창문을 열고 내다보시던 / 어머니가 가신 지도 이제는 10여년 / 목련은 해 저문 마당에 등불을 켜고 / 지나는 바람에 조을고 있다” 그 옛날 이 시를 읽었을 때처럼 나는 또 한 번 울컥하였다. <74, 75쪽>

* 침묵도 음악이고, 여백도 그림이다.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 ‘대중의 예술화’는 한 걸음 가까워진다. 예술에 대한 경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술에 ‘예의’를 지키는 대중이 탄생하는 것이다.

반바지 슬리퍼 차림에 껌을 씹으며 근정전 월대(月臺)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무례한’ 대중이 사라질 것이다. ‘미술관에 가기 전 무슨 옷을 입을까’를 고민하는 순간, 우리는 예술 체험에 이미 진입하는 것이다. <160, 161쪽>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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