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 ‘메트로 북’]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7.07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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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강병융 온전히 ‘저’다운, ‘병융맛’스러운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제 안에 크게 두 가지 맛이 있는데, 하나는 ‘병융맛’이고, 다른 하나는 ‘태희아빠맛(혹은 민영남편맛)’입니다. 보통, 소설은 ‘병융맛’으로 요리하죠(‘병융맛’이 MSG가 많이 들어갑니다).
규. <우라까이>를 읽으면요, 제대로 고약하게 눙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작가가 쓴 게 결코 아니라고 말하는 소설, 혹은 주석으로서의 <우라까이>가 표방하는 작가님의 세계정신(아, 거창하다), 대체 뭔가요? 1)
융. 살짝 ‘진지’빨고 말씀드리자면, ‘포스트모던’한 아재 개그 스타일 소설을 표방한다고나 할까요? 탈중심적으로 주변부나 맴돌면서, 개념 없이 탈이성적인 데다가, 정체성 또한 없는 잡종성과 질서 없는 복합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팎이 마구 뒤섞인 채로, 패러디와 혼성모방이 원칙 없이 공존하면서, 질서 없는 나열과 의미 없는 병치가, 아마추어 콜라주처럼 펼쳐져 있음과 동시에 알 듯 말 듯한 상호 텍스트성으로 맞붙인 그런 작품을 써보고 싶었는데...실패했죠? 2)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강병융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 266쪽 | 13000원 (128×189㎜)

“스트라이크를 바라고 던진 공이 아닙니다. “그냥 내가 이런 구질을 개발했으니 한 번 보렴!”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3)
규. 또 <우라까이>와 관련된 질문인데요. 주석이 무려 250개나 붙었어요. 이건 대충 짜깁기인가요? 아님, 원래 천재스러운(이거 놀리는 거 아닙니다. 정말, 아시죠?) 작가님 발군의 능력 발휘인가요? 이도 저도 아님, 이슈에 따라 나름 치밀하게 맞춰나가는 퍼즐 같은 기법인가요? 질문이 좀 이상해도 존경하는 마음은 여전하니 너그럽게 양해해주세요. (웃음) 4)
융. “이상한 능력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한번 읽은 기사는 절대 까먹지 않아요. 신문, 날짜, 기자 이름, 내용까지 그러니까 많은 기사가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셈이죠. 그러니까 제가 생각한 이야기를 만들고, 이 이야기에 맞는 OOOO년 O월 O일 OO신문 OOO기자가 사회면에 쓴 바로 그 기사를 쓰면 되겠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우라까이>의 경우, 이야기 틀을 만들고, 수만번 검색을 해서 그 이야기에 맞게 인용할 수 있는 기사를 찾았어요. 아시겠지만, 단 한 자도 제가 쓰지 않았어요. ‘Ctrl+C’ ‘Ctrl+V’만을 이용해서 만든(!) 소설입니다. 그래서 문장의 호응이 어색하거나, 의미상, 맥락상의 틈이 좀 있죠.  5)

‘Ctrl+C’ ‘Ctrl+V’만으로 만든(!) 소설 「우라까이」
작가는 한 글자도 안 쓰고 신문기사 등 그대로 베껴

“포스트 모던 아재 개그”
‘복붙소설’의 도전과 경험 패러디인가 콜라주인가

세상에 이런 소설이 있을까 싶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는 의문이 들다가 아, 하면서 계속 읽게 만든다. 강병융 소설집은 『여러분, 이게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의 「우라까이」라는 소설 말이다. 위 기사도 「우라까이」를 흉내냈다. 위 내용은 소설집 맨 뒤 소설가 강병융과 소설가 주원규가 나눈 대담을 ‘Ctrl+C’ ‘Ctrl+V’만을 이용해서 만든(!) 기사다. 각주까지 달아 흉내를 제대로 내보려 했다. 우라까이는 원래 기자 세계에서의 은어로 ‘기사의 내용이나 핵심을 살짝 돌려쓰는 관행’을 이르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그냥 ‘기사 베끼기’를 통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강병융은 이 소설을 2008년 2월 25일부터 2013년 2월 25일까지의 기사들을 ‘복사하고(Ctrl+C), 오리고(Ctrl+T) 붙여서(Ctrl+V)’ 만든 일종의 ‘(복사하고 붙여서 만든)복붙소설’이다.
<우라까이> 53쪽을 보자.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의 물결 속. 6)
보통 사람들에게는 좀 생소할 수도 있는 거대한 쥐 한 마리가 7)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8) 자원외교로 살 길 찾아야 9)한다고 생각했다. 10)
이처럼 신문기사 위주로 복사하고 오리고 붙여서 문장을 만들고 스토리를 이어갔다. 강 소설가 말대로 스트라이크를 노린 것은 아니겠지만 놀라움과 새로움을 준 것은 틀림없다. 쥐와 닭의 시대가 저물고 남은 한 권의 소설집!! 11)이다. / 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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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가 강병융 지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한겨레출판> 248쪽
2) 소설가 강병융 지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한겨레출판> 249쪽
3) 소설가 강병융 지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한겨레출판> 250쪽
4) 소설가 강병융 지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한겨레출판> 250쪽  262쪽
5) 소설가 강병융 지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한겨레출판> 262쪽
6) 송호균 기자. ‘MB, '촛불 증오'의 마음으로 ‘아침이슬’ 불렀나?’ <프레시안>, 2010년 5월 11일자
7) 유두선 웹캐스터, ‘한 입 조르는 ‘슈퍼 쥐’ 깜찍? 끔찍?’ <동아일보>, 2009년 8월 11일자
8) 송호균 기자. ‘MB, '촛불 증오'의 마음으로 ‘아침이슬’ 불렀나?’ <프레시안>, 2010년 5월 11일자
9) 길진균·최창봉 기자, ‘통상·자원외교로 살길 찾아야’ <동아일보>, 2009년 1월 9일자
10) 윤형중 기자, ‘이재오 “이명박 정부 성과 이어가려면 박근혜 후보 뽑아야”’ <한겨레>, 2012년 12월 16일자
11) 소설가 강병융 지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한겨레출판> 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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