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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칼럼] 별은 어둠이 왔을 때 비로소 빛난다
보림에스앤피 부사장

[독서신문] 여러 권의 책을 내다보니 명함 대신 책으로 인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를 찾아오거나 좋은 만남이 있어 인사를 드리러 갈 때는 책을 준비한다. 누군가에게 줄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메마른 세상에 책은 천편일률적인 생활용품 선물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러기에 작가들도 ‘나도 책을 냈다’는 식의 받아서 오히려 짐이 되는 책이 아니라 마음을 녹이는 위안을 주는 책이 되게 각별히 노력을 해야 한다.

어느 날 책을 받았던 한 분이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황작가님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웃으며 답했다. “제가 수필로 남들을 울릴 만큼 글을 잘 쓰지는 못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황작가님 글은 따뜻하고 참 좋았습니다. 별은 어둠이 와야 밝게 빛나듯 그런 글은 시련과 상처 없이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황작가님이 흘렸을 눈물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실제 상처받고 힘들 때 글도 더 잘 쓰이고 마음에도 더 든다. 암 환자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죽음에 직면해서야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때문이다. 죽음에 임박해서라도 추구하던 어떤 것이 허상이었고 외면했던 어떤 것이 실상이었지 한번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깨우침은 족하다.

시련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시련을 통해 삶은 더 성숙되고 더 아름다워진다. 시련이 오거나 상처를 받게 되면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기 보다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감이후지(坎而後止),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듯 평탄하던 삶도 늘 실패와 시련을 만나게 된다. 구덩이에 갇혀 자학, 절망하는 경우도 있고 물이 차서 넘칠 때까지 다듬고 단련하는 경우도 있다.

구덩이에 갇힌 친구를 외면하는 경우도 있고 기다리고 격려하며 함께 가는 경우도 있다. 구덩이에 갇혔을 때 삶의 실상과 허상이 구분되고 구덩이에 갇혔을 때 삶은 새로이 빛나게 된다. 구덩이는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성찰의 시간이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 평화롭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 평화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높이 나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린다. 뼈 속까지 비우며 단 하나의 사치품도 가지지 않는다.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새 한 마리도 실은 각고의 노력으로 무심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시련은 병이 아니라 약이다. 좋은 쇠는 뜨거운 화로에서 백 번 단련된 다음에 나오게 되고, 매화는 추운 고통을 겪은 다음에 맑은 향기를 발하게 된다(精金百鍊出紅爐, 梅經寒苦發淸香).

한 사업가가 사업에 실패했다. 차압이 들어오고 재기가 요원해 보였다. 하도 고생스러워 목매달아 죽으려고 넥타이 두 개를 묶었다. 넥타이에 목을 매려는 순간 거실 가득 햇살에 먼지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먼지도 스스로 저렇게 빛나려고 애쓰는데…’ 먼지보다 못한 인간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을 포기하고 각고의 노력을 하여 지금은 크게 성공을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지칠 때면 그 넥타이를 꺼내보며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볼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밤을 지나지 않고서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다. 어둠이 내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산이건 강이건 들이건 어둠의 강도도 모두 동일하다. 누구에게 더 어둡고 누구에게 덜 어두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둠을 대하는 태도는 다 다르다. 어둠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빛이 되려는 사람도 있다. 시련이 닥치면 모두들 기적을 기다린다. 그러나 기적은 신이 주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빛이 되려는 사람들만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

희망의 반대는 절망이 아니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절망 속에서 희망이 자란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희망이 없는 순간은 없다. 희망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추운 겨울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봄꽃은 겨울에 만들어 진다. 한파에 굴하지 않고 꽃들의 희망은 소리 없이 그렇게 자라난다. 눈보라가 아무리 설쳐도 피는 꽃을 막을 수는 없다. 작고 가녀린 것이 겨울의 모진 풍상을 이겨냈다는 것이 대견하기만 하다.

그래서 봄꽃을 보면 눈물이 난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증오가 아니라 용서가 눈물을 흘리게 한다. 권력이 아니라 노래가 눈물을 흘리게 한다. 돈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어둠의 두려움보다 그것을 딛고 일어나는 별의 희망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시련과 상처가 어둠 아닌 빛이 되었을 때 눈물은 원망 아닌 감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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