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초대석] 건명원 원장 최진석 교수 "창조는 ‘사유’에서 나온다…철학의 시선 없으면 선진국 못된다"
[특별 초대석] 건명원 원장 최진석 교수 "창조는 ‘사유’에서 나온다…철학의 시선 없으면 선진국 못된다"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6.22 16: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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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명원 원장 최진석 서강대 교수. "우리나라가, 국민이, 철학적 사유의 시선을 갖추지 못한다면 선진국 대열 합류는 못할 것"이라고 못박아 말한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으로 산업의 틀이 깨지는 지금이 우리에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서신문] 세상 좀 안다고 하지 말라. ‘철학’을 알기 전에는. 스스로 괜찮은 지성인이라고 말하지 말라. ‘탁월한 시선’을 갖기 전에는. 시대에 좀 앞서 있다고 말하지 말라. ‘건명원’에 가기 전에는.

건명원(建明苑). 북촌 큰 길에서 한 뼘 들어간 골목에 있다. 시선을 높이 두어야 소박하고 간명한 세글자가 보인다. 계단을 오르니 문이 열리며 몇 사람이 빠져 나간다. TV에서 본 낯익은 유명 교수 얼굴도 보였다. 지성의 기운이 무릇 이런 건가. 아연 긴장한 건 소담한 정원의 소나무가 아니라, 기자 일행이었다.

손수 캡슐 커피를 내려 기자를 대접하는 학자는 건명원 초대원장이며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지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다.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발생한다. 시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책 속의 그의 말에 뒤통수를 맞았고 ‘철학은 문명의 깃발을 드는 일이고 인간에게 새 빛을 끌어오는 일’이라는 대목에서는 눈에서 비늘이 벗겨짐을 느꼈다. 도도한 철학의 세계로 들어간 날은 6월 7일, 비 개인 오후의 건명원이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324쪽 | 17000원

철학은 구조화된 관념의 세계로, 그 세계가 언덕위의 신전처럼 우아하게 고고하게 고담준론을 나누는 철학자만의 세계가 아니라는 게 최 교수의 입을 통해 드러났고 책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 세계는 땅에 두 발을 굳건히 하고 있고 시선은 저 높은 곳을 향한 탁월한 사유의 모습이다.

최 교수는 이런 예를 들었다. 전통 완구 회사로 유명한 레고는 1990년대 들어 쇠퇴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레고보다 비디오 게임기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레고는 비디오게임 시장에 뛰어들었고 조립하지 않고도 바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쉬운 장난감을 많이 만들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레고는 한 컨설팅회사를 찾아가 해결책을 구하게 된다. 컨설팅회사의 조언에 따라 레고의 ‘철학’이 바뀐다.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에서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로 엄청난 전환을 하게 된다.

결국 레고는 블록 장난감을 만든다. 블록 장난감은 힘도 더 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지만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과 ‘아이들은 왜 놀까’라는 질문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높이의 차이, 이게 우리 실제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철학적인 말이다.

최 교수는 익숙해진 말이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 없이는 새로운 시선, 높은 시선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소개했다.

최 교수는 산업계 예를 하나 더 들었다. “삼성이 아무리 수익이 좋아도 애플 앞에서는 작아집니다. 수준 차이 때문입니다” 단호하다. 수준이라는 것은 창의적인 회사냐 따라하는 회사냐는 것.

“삼성은 창의적이고 싶어도 창의적이지 못하는 겁니다. 이 어려운 벽을 넘는 게 숙명이고 과업입니다” 최 교수는 덧붙인다. 이 숙명의 벽을 넘으려면 시선의 높이를 상승시키는 일 밖에 없다고. 바로 철학적인 높이, 인문적인 높이, 예술적인 높이, 문화적인 높이가 이에 해당되는 말이라고. 꼼짝없이 수긍하고 말았다.

레고와 삼성전자 얘기를 들려주는 건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알려주는 셈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중진국 한계에 갇혀 있어요. 국민소득 2만7000달러로 10년 넘게 선진국 문턱을 못 넘고 있어요” 중진국 상위권에 있지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다면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책을 쓴 목적을 다시 상기시켰다.

“우리가 어떻게 이룬 나라인데, 여기까지만 살다 가도 괜찮은가, 그럴 수는 없잖은가”. 역시 최 교수의 지향점은 ‘철학’이다. 아니 지향점이라기보다는 시종이 ‘철학’이다. “철학적인 시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여기가 최고 높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사유의 시선을 높이는 것이 우리 생존을 보장합니다”

그렇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시선의 높이 이상으로 살 수 없다. 자기 시선의 높이만큼만 행동할 수 있고 그 수준만큼만 살 수 있다.

건명원의 밤 <건명원 홈페이지 캡처>

‘사유의 시선 높이기’, 최 교수의 이 말은 한 개인을 향한 게 아니라 국민이, 나라가 새김질해야 할 촌철살인 같은 말이다. 그래서 그의 낮은 목소리는 계곡을 가득 메우고 안개처럼 일어나 산등성이를 적시고 정상을 휘감는다. 비로소 천하를 향해 큰 울림이 돼 오래 메아리 진다.

그러면 시선을 어떻게 높인단 말인가. 수준 높은 삶을 살려는 의지가 그 출발점이다. 그냥 생각만으로, 지식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이루는 것, 자기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행한 여기자는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금쪽같은 최 교수의 말을 기록하느라 힘이 드는지, 손가락을 잠시 노트북 자판에서 떼고 손목을 돌린다.

이어지는 최 교수의 말은 귀를 통해 듣지만 머리로 이해하려면 곰곰 생각해야 한다. 몇십년 고된 ‘사유의 노동’을 거친 학자의 말을 대번에 이해한다는 건 철학자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일단 옮긴다. “(생각이) 독립적이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것을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려고 해야 해요. 좋은 것 찾아 헤매기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노력해야, 그게 꿈을 좇는 과정입니다. 눈 앞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일거리를 처리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만든 내 꿈을 향해 가면 독립적일 수밖에 없죠. 비로소 고유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자는 이게 독창성, 창의력인줄 몰랐다. 가장 높은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 창의성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이 애플을 못 따라가는 이유가 점차 선명해진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삼성과 애플 사이에서도 설명되는 얘기인가라고.

“(삼성이) 오랜 시간 따라하기가 습성이 돼 있어서 그럴 수도 있죠. 안전하게 하려다 보면 모험을 삼가죠. 그러나 모든 생각은 모험이 필요해요. 특히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면요”

수준 높은 삶은 무엇인가. 최 교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의문이 고개를 든다. 미처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테마다. “인간으로서 어느 수준에 있는가를 보려면, 내가 지금 어떤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를 본인한테 물어보면 돼요”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내 꿈을 실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또 물어보라고 한다.

해야 하고 하는 일이니까 하는 것인가, 내 꿈을 실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등을 묻고 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꿈이라…. 어느덧 아스라이 멀어진, 줄이 끊겨 멀리 멀리 날아가 소실점보다 멀어진 연이라도 되는 게 꿈 아니던가.

요즘 세상 꿈이 없다고 한다. 신랑 신부가 서로의 꿈을 물어본 적도 없고 자신들의 꿈이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무엇인지 분명치 않고, 신랑 측 부모나 신부 측 부모나 며느리 사위에게 꿈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꿈에 관심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내용을 담은 신선한 주례사를 기자가 들은 적이 있어 최 교수에게 들려 줬다. (주례사 결론은 신랑 신부가 서로의 꿈 실현을 돕는 조력자가 되라는 것)

“이런 사례가 바로 극단적으로 말해, 결혼이 인격적 만남이 아니라 조건의 만남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죠. 꿈이 만나는 게 아니고 조건이 만난다면 사회가 창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가 있을까요” 부모가 자식의 꿈을 모르는 건, 자식의 자존심을 망각한 일종의 폭력이라고 진단한다. 시선의 높이와도 밀접하다고 단언한다. 일상에서 수준 높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못 박는다. 

수준 높은 삶 얘기는 자연스레 중산층 이야기로 번졌다. “선진국 어딘가는 중산층 남자들은 직접 할 수 있는 요리가 몇가지 있답니다. 그리고 진보성향 신문을 읽고요. 우리나라 중산층은 아파트 몇평, 자동차 몇씨씨 등으로 규정되다시피 하고 있죠” 선진국과 우리를 이렇게 비교하니 그 차이가 극명하다.

극명한 차이는 예술의 향유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최 교수에 따르면 감각의 세계, 경험의 세계에서 즐거움을 만드는 것은 예능이고 철학적 세계에서 즐거움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라고 한다.

“주말에 술집에 가느냐, 아니면 박물관이나 갤러리를 가느냐 하는 겁니다. 일상에서도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면 좀 더 나은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해야죠” 기자는 궁금했다. 예술이라는 게 근본 소양, 아니면 취미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해 따지듯 물었다.

“예술을 즐기는 문제는 소양의 문제가 아니에요” 역시 단호한 답이 돌아온다. 박물관이나 갤러리 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이제 가는 것은 직접 결심하고 실천하는 문제라며 감동이 처음부터 생길 수는 없겠지만, 들여다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알다보면 감동도 느껴진다는 게 최 교수의 ‘즐기는 예술’ 지론이다.

인터뷰 내내 답답하기도 하고 (순전히 기자의 뇌 능력 탓이다), 우울하기도 했는데(한국이 선진국이 못 된다니) 다행히 최 교수는 희망의 물꼬를 터 주었다.

이런 대목이 없다면 강사로 이름을 높일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게 유리함도 있어요. 산업 패러다임이 깨지고 전혀 달라지고 있어요. 4차산업혁명을 맞아 후발 주자들에겐 이렇게 판이 깨질 때 기회가 옵니다” 그 흐름을 놓치지말고 꿈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업은 4차 산업혁명으로 가고 있는데 이를 보는 프레임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미래의 프레임을 설정할 것을 당부했다. 산업계 뿐 아니라 정치권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최 교수는 요즘 뇌과학, 빅 데이터 관련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철학은 이렇게 과학에 닿아 있고 산업과 고리지어 있다.

일상을 철학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유의 노동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건명원 문패는 말하고 있었다. 날은 화창하고 북촌은 더욱 환해졌다. 
/ 글=엄정권 기자, 기록=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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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2017-07-03 01:54:20
기자님 글을 참 잘 쓰시네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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