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동의보감은 당대 의학 '종합의 종합'…허준은 우주·자연·인간을 꿰뚫었다" - 신동원 교수 '허준과 동아시아 의학의 집성' 강연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동의보감은 당대 의학 '종합의 종합'…허준은 우주·자연·인간을 꿰뚫었다" - 신동원 교수 '허준과 동아시아 의학의 집성' 강연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6.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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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문화의 안과 밖’의 6월 17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2섹션 과학/과학철학의 두 번째 강연으로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의 '허준과 동아시아 의학의 집성'을 주제로 진행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보건관리학 석사, 한국과학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 니덤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소 객원연구원,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이자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조선의약생활사』, 『호환 마마 천연두』, 『사람을 살리는 책 동의보감』, 『조선사람 허준』, 『한국 과학사 이야기 세트(전3권)』 등이 있고 그밖에 『의학 오디세이』,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등을 공저했다.

신 교수는 이날 강연을 통해 "『동의보감』 편찬이 국가적 관심사로 시작됐으며, 곡절 끝에 거의 허준이 대표저자로 활약했고 당대 한국 중국 일본의 의학 지식을 '종합한 것의 종합'이라 할 정도로 높은 의학의 표준화를 이루어냈디"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특히 "허준은 남이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았다"고 말하며 "단지 병을 잘 고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 인간의 몸과 질병, 병과 치료술을 꿰뚫는 그러한 세계"였다고 허준을 기렸다. 다음은 내용 요약.

『동의보감』은 1596년에 편찬이 시작되어 1610년에 집필이 완료되었으며, 1613년에 내의원에서 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 목활자로 발간되었다. 1596년 책의 편찬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태의(太醫) 허준이 왕명을 받아 유의(儒醫)인 정작과 태의 이명원(李命源)ㆍ양예수(楊禮壽)ㆍ김응탁(金應鐸)ㆍ정예남(鄭禮男) 등 6인이 참여했다.

임금은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수의(首醫)인 허준에게 편찬을 맡겼던 것이며, 그는 왕명을 받아 당시의 뛰어난 의원을 망라해 의서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어의인 양예수ㆍ이명원ㆍ김응탁ㆍ정예남 등 4인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유의 정작이 그들이다. 양예수는 허준보다 선배 세대의 어의로 신의(神醫)로 평가받은 인물이고, 정작은 어의는 아니지만 민간에서 형 정렴과 함께 도교적 양생술의 대가로서 의학에 밝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이명원은 침술에 밝았으며, 김응탁ㆍ정예남은 신예 어의였다.

이렇게 많은 의관(醫官)과 의원(醫員)들이 모여서 의서 편찬에 투입된 사례는 세종 때 10인이 참여한 『의방유취(醫方類聚)』 편찬밖에 없었다. 이처럼 『동의보감』의 편찬 사업은 처음부터 국가의 지대한 관심에 따라 대규모로 기획되었다.

그렇지만 1597년 정유재란으로 인해 편찬 팀이 해체되었으며, 이후 허준이 단독 편찬을 맡아 1610년에 집필을 완료했다. 이 책의 재료는 중국의 한나라에서 명나라에 이르는 200여 종의 문헌과 『의방유취』ㆍ『향약집성방』ㆍ『의림촬요(醫林撮要)』와 같은 수 종의 조선 의서 등이었다.

한국 과학사, 중국 과학사, 어느 관점에서도 『동의보감』은 매우 드문 예외에 속한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문명과 한국 문명의 관계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문물이 조선에 유입되어 큰 효과를 일으킨 것이 대부분이었고, 반대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동의보감』은 의학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 또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이 드문 ‘반대’의 사례에 해당된다.

그래서 여러 궁금증이 생겨난다. 조선과 중국, 더 나아가 일본까지 펼쳐졌던 역사적 현상으로서 『동의보감』 유행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런 현상이 일어난 요인은 무엇인가? 『동의보감』의 저술 과정과 발간 배경은 어떠했는가? 『동의보감』의 의학적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성취를 담은 것인가? 이런 의서를 편찬해낸 조선 의학계와 사상계의 잠재력은? 대표 저자인 허준(許浚, 1539~1615)은 어떤 인물이었으며, 다른 공동 저자의 지적, 의학적 배경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또 세계 의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등등이 쉽게 떠오르는 질문들이다.

중국 학자 량윙쉬안(梁永宣)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49년까지 27종이, 이후 현재까지 8종의 『동의보감』이 중국에서 찍혀 나왔다. 가장 최신본은 2013년도 판이다. 타이완에서도 12종이 찍혀 나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9세기까지 두 번 인쇄되었으며 현대에도 여러 차례 인간되었다.

의학 수요의 급증, 출판 산업의 발달, 국내외 유통 시스템의 확장이라는 조류와 맞물려 『동의보감』은 허준의 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국제적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중국 의서로는 『동의보감』 수준의 인기를 누린 책이 몇 가지 있지만, 조선이나 일본 의서로서 이만큼 널리 읽히는 책은 단연코 없다. 동아시아 의학 저작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내용이 독창적이고 오늘날에도 실용성을 가진 중요한 기록유산으로 평가받았다. 현대 서양 의학 이전에 동아시아인 보건에 도움이 됐고, 서양 의학보다 우수한 것으로 인정받는 분야도 있다는 것이 선정 취지였다.

세계기록유산이나 중국에서 누린 인기에 관계없이, 이 책은 출간 이후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의서로 자리 잡아서 한국 역사의 중요한 한 요소가 되었다.

국내에서 조선 후기에 『동의보감』이 대여섯 차례 공식적으로 인쇄, 발간되었음이 확인되며, 후대 조선 의학계에서 『동의보감』이 끼친 영향력은 이 책을 존숭하여 계승한 후학들의 의서를 통해 더욱 짙게 나타난다.

의학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린 사실은 『동의보감』을 조선 의학사라는 일국의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의학사의 관점에서 볼 것을 요구한다. 『동의보감』이 국내에서 명성을 굳히게 된 결정적 계기도 중국에서 누린 인기에 있다.

사실 『동의보감』은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 진행되는 여러 대형 연구와 같은, 또는 그 이상의 세계적 지평을 지닌 책이다.

1613년 『동의보감』의 출현 이후 이 책은 후대 조선과 일본, 중국에서 후한 평가를 받았다. 조선에서는 경전이 되었고, 일본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으며, 중국에서는 매우 경쟁력 있는 의서로 자리 잡았다. 조선의 학자와 의가들은 『동의보감』을 극히 존숭했다.

1766년 중국판 서문에서 링위(凌魚)는 “천하의 보배는 온 천하의 사람이 같이 나눌 일”이라면서 “아무리 조선이 먼 구석에 있어도 그것이 천하에 결코 감춰지지 않는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으며, 이에 앞서 18세기 초반 일본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는 정부 주도로 『동의보감』을 찍었다. 1724년 일본판 서문에서 미나모토노 모토토루는 “의학이 난립하여 질서를 잃었기 때문에 의학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이처럼 동아시아 3국에서 의서 『동의보감』이 높은 경쟁력을 지니게 된 것은 그 책이 의학의 범위와 계통을 밝힌 ‘의학의 표준화’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과학, 영국 과학, 일본 과학을 특별히 따로 구별하지 않고 전체로서 ‘과학’을 먼저 논의하는 오늘날의 보편 과학 체제와 성격이 비슷하다. 허준의 시대에도 중국 의학, 조선 의학, 일본 의학이라는 ‘지역적’ 특성보다 우선시하는 ‘의학’이 기본으로 존재했다.

그것 전체와 씨름하여 낸 성취물이기 때문에 『동의보감』의 시간적, 지역적, 분야별 독자층이 그만큼 넓었던 것이다.

'종합의 종합'이라 이름 붙일 만한 『동의보감』의 성취는 동아시아 의학사상 칭찬받을 만한 점이 여럿 있다. 사실 『황제내경』에서 강조한 양생(養生)을 앞세우고 치료술을 그에 종속시킨 의학 체계를 제시한 것은 『동의보감』이 최초다.

이런 생각에 입각해서 질병의 치료보다도 몸을 앞에 내세워 질병을 하위로 종속시킨 의학 체계도 『동의보감』이 최초다. 이후 청대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서 이 비슷한 체제를 채택했다.

오늘날 한의학을 이해하는 데 첫머리로 제시되는 정(精)ㆍ기(氣)ㆍ신(神)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내세워 의학 책을 시작하는 서술 방식도 『동의보감』이 최초다. 이런 시도는 진단, 치료, 본초, 침구 등 의학의 모든 영역에서 다 나타나는 특징이다.

수십 년간 의학에 종사하면서 허준은 남이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았다. 그 세계란 단지 병을 잘 고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 인간의 몸과 질병, 병과 치료술을 꿰뚫는 그러한 세계였다.

허준은 자신이 본 세계를 『동의보감』을 짜는 데 적용했다. 비록 담기는 내용은 모두 이전부터 있었던 재료지만, 담는 그릇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그는 몸의 기본을 다룬 몸 안의 세계, 몸의 겉을 다룬 외형(外形)의 세계, 병의 근원과 종류를 다룬 ‘잡병’의 세계, 약을 제공하는 자연 세계의 질서를 새로 그렸다. 그리고 경락과 혈과 관련된 침구법을 덧붙였다.

이런 의학 체계는 의학의 임상 능력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의학을 메타적인 시각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고도의 자연관과 생명관이 뒷받침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허준은 비단 의학 내용뿐만 아니라 도가와 유가의 저작을 섭렵함으로써 이러한 혜안을 얻었고, 그것을 토대로 『동의보감』이라는 책을 엮어냈다. 『동의보감』이 다른 의서와 달리 사상서의 느낌을 풍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의학을 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으며, 그 새로움은 한 차원 높은 데서 거시적으로 의학을 정리할 수 있는 허준의 사상적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허준의 의학적, 사상적 능력은 그의 자질이 총명하고 출중한 데 일차 기인하겠지만, 15세기 세종 대 이후 본격화한 의학 능력 배양과 16세기 조선 사상계의 난숙함이 그 배경으로 깔려 있다.

허준의 문장력을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문장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허준은 과감하게 축약 정리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책이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서술되는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동의보감』 서문에서 이정구(李廷龜)가 “이 책은 고금의 서적을 포괄하고 제가(諸家)의 의술을 절충하여 본원(本源)을 깊이 궁구(窮究)하고 요긴한 강령을 제시하여, 그 내용이 상세하되 지만(支蔓)한 데 이르지 않고 간약(簡約)하되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15라고 칭찬한 구절이 이를 나타낸 것이다. 원 인용처의 글과 비교할 때, 적어도 읽는 맛으로 볼 때에는 『동의보감』이 더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는다. / 정리=엄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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