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자] 풀꽃 시인 나태주 "시 「풀꽃」은 모든 여성에 대한 헌사이며 현실 위로하는 시"
[이 저자] 풀꽃 시인 나태주 "시 「풀꽃」은 모든 여성에 대한 헌사이며 현실 위로하는 시"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6.1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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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풍경에게』 나태주 포토 에세이      
나태주 지음 │ 푸른길 펴냄 │ 248쪽 │ 16,000원

[독서신문] 한 여인이 그의 마음속에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멀리서 빙빙 돌 뿐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마음이 가까이 갈수록 발걸음은 점차 멀어진다.

애타게 만나고 싶어도 정작 만나면 그 감정은 어느새 재처럼 식어가고, 그 사람은 더 이상 자기 마음속에 자리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스스로 만든 애달픔. ‘자세히’ 보고 ‘오래’ 보는 게 그의 지병이다. 그 병은 시가 되어 절창으로 이어진다.

꽃에 가까이 가면 꽃이 흔들린다. 잎이 놀란 듯 수줍은 듯 떨고 암술 수술이 희미하게 웃는다. 알 수 없는 파문이 허공에서 꽃을 흔든다. 꽃 앞에 서면 그의 병은 도져 자세히 보고 오래 본다.

인내심이 직관으로 승화하는 순간, 그는 노래한다. 풀꽃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오늘 그를 찾아갔다. 공주에 사는 시인 나태주. 공주로 가는 길 내내 풀꽃은 어디에나 피어 있었고 함부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는 건 사랑
‘오래’ 보는 건 배려
‘너도 그렇다’에 
 대한민국 온 여성이
 자존감을 회복했다

풀꽃 말고는 말머리를 잡을 게 없었다. 나 시인은 시는 간결하지만 말은 유장하다. “풀꽃 그림을 그릴 때면 내가 종이 위에 그린 이 풀꽃이 원본이 돼요. 자연의 풀꽃은 나를 통해 치환되면서 폐기되는 거예요. 연필그림을 참 많이 그렸는데요. 양귀비도, 의자도 그리고 나면 폐기돼요. 여기 보세요. 2014년도에 그린 양귀비가 아직 지지 않았잖아요” 자연의 양귀비는 이미 지고 없다. 이미 마음속에선 떠났다.

아니, 지워버렸다. 그것도 스스로 만든 애달픔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그 병적인 애달픔.

왜 그 많은 대상 중에 풀꽃인가, 왜 그는 풀꽃에 집착할까. “아. 꽃은 식물의 성기에요. 식물의 성기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어요. 추악하지도 않으면서 선량하고 지고지순하죠. 가장 깨끗해요. 결혼식의 ‘꽃’은 신부, 경찰의 ‘꽃’은 경찰서장, 교직의 ‘꽃’은 교장이듯이. 꽃은 인간 삶의 상징이에요. 나무에 피는 꽃(나무꽃)과 풀에 피는 꽃(풀꽃)이 있어요. 들꽃은 들에만 피는 꽃이라서 들꽃, 산꽃이라는 표현은 안돼요. 나무꽃 아닌 건 다 풀꽃이죠”

이렇게 나 시인은 꽃에 대한 예찬을 먼저 풀어 놓는다.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가치 없이 눈에 띄지 않게 피는 꽃이 풀꽃이에요. 제가 생각하기는요. 그런 꽃이 예쁘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아요” 여기까지는 시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좀 더 들어보자. “이 시는 요즘 한국 사람들의 삶과 연결돼 있어요. 중산층이 무너졌어요. 나는 잘 살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상층과 하층의 격차가 넓어졌어요. 여자도 예쁜 여자, 안 예쁜 여자로 나뉜 거죠. 나도 예쁘다 나도 잘산다라고 생각했던 게 무너진 거예요. 심리적 하락, 추락 현상. 결핍과 상실이 많아진 거죠” 이쯤하면 사회학자의 현실인식과 다르지 않다.

“그때 어떤 인간이 나서서, 풀꽃도 자세히 봐야 예쁘대요.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 나도 예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거에요. 미모 결핍증, 사랑 결핍증에 걸려 있던 여자들이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거예요. 저 말이 바로 나한테 하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나태주가 ‘자세히 보면’ 예쁘다고 선언한 것이다. ‘오래보면’ 사랑스럽다고 부추겼다. 예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에 머물렀다면 그 시는 그저 예쁜 시, 사랑스런 시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나태주의 절창은 여기에 있다. 바로 ‘너도 그렇다’라고 방점을 찍었다. 자세히 보고 오래봄으로써 얻은 섬광같은 직관이다. 이 비범한 나 시인의 다섯 글자는 많은 사람 특히 여성에게 자신감, 자존감, 존재감을 채워줬다는 판단이다.

「풀꽃」 시의 인기 배경을 여자들에게 돌리는 게 나 시인의 판단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자세히 보고 오래보는 행위에 주목한다. 자세히 보는 것은 누구인가를 갈망하며 알려는 노력의 겉모습이고 오래 보는 것은 사랑 또는 보살핌과 같은 말이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행위를 저토록 간명하게 표현한 예는 드물다.

여기에 ‘너도 그렇다’는 비로소 타인을 향한 마음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 나에게 돌아오는 사랑의 회귀, 위로의 순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온몸을 전율케 하는 다섯 음절.

‘너도 그렇다’는 이 시대 척박한 마음밭에 뿌려준 단비다.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니라, 너는 어느새 내가 되고 나는 알고보니 너와 다름없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나태주 「풀꽃」 은 사랑의 본질을 노래한 사랑시이며 차가운 현실을 위로하는 참여시다(나 시인은 아마 참여시라는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나 시인의 시는 짧은 게 많다, 특별히 시를 쓰는 데 원칙이 있나고 물었다. “좋은 시에는 반전과 결론이 있어야 해요. 딱딱한 결론이 아니라 위로, 감사, 축복, 기쁨, 긍정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시의 결론이라면 결론이죠” 나 시인 시는 쉽고 편하다.

나 시인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도 사람들이 왜 제 시를 좋아하는지 그 심오한 뜻을 나중에 알았어요. 사과는 자기가 사과인 줄 모르고 익는다는 말이 있어요. 미인은 자기가 미인인 줄 몰라야 해요. 알면 불행이에요. 시인은 자기가 유명한 줄 몰라야 해요. 날마다 쓰러지고 외롭고 쓸쓸해야 시인이죠” 역시 외롭고 쓸쓸함을 빼놓지 않는다. 스스로 만든 애달픔이 이렇게 매일 외로움에 쓰러지고 쓸쓸한 불면의 밤이 만든 평생의 작품이었음을 시인은 고백한다.

나 시인의 『풍경이 풍경에게』를 보니 ’사람도 풍경‘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설명을 부탁했다. “당연하죠. 쟤(풍경)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제가 풍경이잖아요. 내가 볼 때는 쟤네가 바깥이고. 쟤네한테 동의를 얻어야 할 것 아닙니까” 풍경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니,

역시 자연과 함께하고 순간순간 꽃과 치환하는 삶이 결국 자연에게 ’동의‘를 얻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나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바깥 꽃들은 내가 직접 물 줘요. 풀도 내가 직접 메요. 그 이유가 있어요. ‘정’을 먹이는 겁니다. 마당을 쓸어야 마당이 저를 받아줘요. 이 집을 밤에 오면 사람들이 무섭대요. 그런데 나는 안 무서워요. 집이 나를 받아줬기 때문이죠” 자연이 사람을 받아줬을 때 사람은 자연과 대화하고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임은 자명하다. 특히 나 시인은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마치 생명운동가 같다.

나 시인은 사진 찍기를 즐긴다. 『풍경이 풍경에게』에 나오는 사진도 거의 나 시인이 직접 찍은 것들이다. 손때묻은 작은 카메라 몇대를 보여준다. 사진을 모르는 시인은 시인도 아니라 주장이다. 시 쓰는 것과 사진 찍는 것의 공통점은 순간의 미학에 있다.
나 시인의 시 정의는 ‘물을 컵에서 다른 컵으로 확 따르는 순간’이다. 소설은 컵 속의 물을 흩뜨리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시는 사진 촬영과 닮았다.

나 시인은 공주문화원장을 8년 맡아하고 6월말 임기를 마친다, 마침 기자가 찾은 날이 공주문화원장 퇴임 기념강연을 하는 날이었다. 그는 어디선가 양복 저고리를 꺼내 와 ‘8년 전 문화원장 취임 때 입은 옷인데 오는 다시 입는다’고 설명하면서 강연 주제는 ‘호칭’이라고 했다. 주제 ‘호칭’을 꺼낸 이유는 역시 풀꽃에 있었다.

꽃을 부를 때도 사랑을 담으라는 것. 또 위에서 쳐다보지 말고 눈높이를 맞추라는 것. 꽃이 편해야 사람도 편하다는 설명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학관을 나서는데 깔아놓은 보도블록 사이에 풀꽃이 노란 머리를 내밀었다. 새끼손가락 마디만한 솜털이 보송보송한 풀꽃이다. 나 시인이 쪼그려 앉았다. “아이구,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자세히 본다, 오래 본다. 문학과 앞마당 꽃들은 행복하다. 아니 나 시인이 더 행복하다.

돌아오는 길, 나 시인 마음속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던 여인은 누구였을까. 끝내 물어보지 않았다. 
 /글=엄정권 기자, 기록=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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