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소설가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독자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밤잠을 설친다’
엮은이 김규회가 수많은 소설을 읽다 보니 든 생각이다. 우리는 첫 문장을 통해 작가와 처음 대면하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시작을 마주한다. 그리고는 첫 문장에 이끌려 밤잠을 설치며 소설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기도 한다.
첫 문장은 책의 흐름을 좌우하는, 소설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장 중 하나다. 장편에서는 도중에 끊어질 수도 있는 독자의 눈길을 끝까지 이어주는 감흥의 끈이고, 단편에서는 눈길을 떼지 않고 단숨에 끝까지 읽게 하는 흥미의 끈이다. 그만큼 명작의 첫 문장은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은 ‘명문’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첫 문장에는 작가의 개성과 심오한 문학세계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숨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꽃이 피었다’로 쓸지 ‘꽃은 피었다’로 쓸지 며칠을 고심한 작가는 ‘이’는 사실을, ‘은’은 의견을 가리킨다면서 ‘이’를 택했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2004년 9월 12일 새벽은 내가 아버지 편에 서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라는 첫 문장을 통해 미스터리한 소설의 분위기와 작가 특유의 문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앞으로 살인 사건의 전말을 들려줄 것을 암시하며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토록 매력적인 소설 속 첫 문장들이 책에 가득 실려 있다. 138명의 소설가, 460여편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대표작과 더불어 다른 작품들의 첫 문장도 실려 있으며,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작들의 첫 문장도 소개된다. 『한국인이 사랑한 세계 명작의 첫 문장』도 출간 예정이다.
『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 문장』
김규회(엮음) 지음 | 끌리는책 펴냄 | 280쪽 | 14,800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25호 (2017년 6월 12일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