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음악이 있는 책 공간, 마포 초원서점
[책 읽는 대한민국] 음악이 있는 책 공간, 마포 초원서점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6.07 1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포 염리동 초원서점. 오른쪽 국기 게양대에 꽂힌 종이 깃발이 이 집 풍경의 압권이다. 아스팔트 바닥 기울기에 맞춰 만들어진 의자 받침대가 서점의 키를 높여주는 것 같다.

음악이 쉬면 책 한 줄 읽고
책에 지치면 음악이 달래준다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이대 앞에서 향수를 뿌리면 그 향이 닿을 거리. 신촌에서 삼겹살을 구우면 냄새가 미치는 지척 거리. 대로에서 한 뼘 벗어났을 뿐인데 풍경은 사뭇 변해 집들은 모두 키가 낮고 가게 간판은 페인트칠이 다 벗겨졌다.

좁은 길은 울퉁불퉁하고 이리 휘고 저리 굽고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지면서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까치둥지 같은 전선을 머리에 이고 사는 동네, 한 집 건너 있는 부동산중개소가 이곳이 재개발지역임을 말하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488 일대. 겨우 찾았다. 오른쪽으로 굽은 길에 살짝 돌아 앉아있어 십미터 정도 앞에 가야 알 수 있었다. 초원서점.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주인이 나와서 국기 게양하는 홈에 ‘초원서점’이라는 깃발을 꽂았다. 

옛 것을 버리지 않고 남들이 촌스럽다는 것을 사랑하고 요란함을 거부하고 그렇다고 숨는 것은 아니니 이렇게 책으로, 음악으로 동네를 감싸고 있다.

초원서점 주인 장혜진씨. 아날로그 향이 은은한 조용한 여성이다.

주인이 어떤 이인지 궁금했다. 멋을 냈으면 꽤나 예쁠 것 같은 소박한 얼굴, 화장기도 살짝 감도는 듯 마는 듯하다. 방송작가도 했고 공연 카페 같은 데서 매니저도 했다. 그러다 영 글 쓰는 것을 멈출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여기에 서점을 열고 음악을 틀었다. 음악에 책이 얹혀 있다고 해도 맞고 책 위에서 음반이 돈다고 해도 맞는다.

사방이 책으로, 음반으로, CD 등으로 빼곡하다. 가운데 탁자는 손바닥만 하지만 공간을 다 잡아 먹었다. 앉으면 맞은 편 사람과 무릎이 닿는다. 통로라고 할 것도 없다. 둘이 엉덩이를 부딪쳐야 ‘통행’이 가능하다.

책도 모두 음악 관련된 것으로 이 좁은 공간에 600권이 훌쩍 넘는다. 이런 경우를 두고 알짜라고 하는 것 같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특유의 흰자위 많은 눈을 치뜨며 반항아 같은 표정이 가득한 음반이 눈길을 끄는가하면 마이클 잭슨이 문워크를 선보인 음악잡지도 보인다. 존 레논을 좋아한다면 그의 음반과 책도 만날 수 있다. 음악가들이 추천했다는 데 좀 의외다. ‘경청’. 그러나 바로 이해가 됐다.

시간이 멈춘 공간이라는 생각은 타자기를 보자 나를 한 걸음 더 과거로 이끈다.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주인 장혜진 씨의 손때 묻은 기계다. 메뉴판을 만들고 강의 노트를 만드는 등 쓰임새가 많다.

메뉴판은 영업비밀이라 했지만 살짝 들춰보았다. ‘봄철 주메뉴’ 페이지에는 봄에 들으면 좋을 음악이 줄줄이 적혀 있는 등 열어보는 사람만이 그 은은함을 즐길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의 감촉은 책갈피를 헤집는 감각을 닮았고 타자 글씨체는 컴퓨터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섦으로 반갑고 살갑다고 할만하다. 

오는 손님도 주인을 닮았다. 한 청년이 고개를 젖히고 오래 느리게 걸음을 옮기며 음악을 듣는다. 책을 뒤적이는 손길은 무심한 듯 정적을 이어간다. 청년 탓에 인터뷰 진행이 늦어졌다.

책은 잘 팔립니까, 물었다. “생각보다 많이 팔려요. 손님이 처음에는 동네주민이 많이 오기를 바랐지만 외부 손님이 많은 편입니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젊은이들은 떠나고 동네엔 노인과 어린이들만 남았다. 그 남은 것 중 하나가 ‘해피’다. 하루에도 몇 번 찾아오는 동네 강아지다. 인터뷰 중에도 찾아와 연신 꼬리를 흔든다.

장혜진씨의 강의 노트.

음악을 듣고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다. 저녁 무렵에는 강의실로 변한다. ‘초원음악교실’이라는 이름으로 기타 수업, 작사 수업 등이 열린다. 현재 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가 선생님으로 나선다.

또 번역가이자 음악 평론가와 함께 음악 관련 책과 기사들을 읽는 영어로 음악읽기 수업도 있어 분위기가 가볍지만은 않다.

기타는 4주에 10만원, 작사 수업과 원서 수업은 5주 15만원이다.

주인이 직접 진행하는 ‘초원 살롱’도 열린다. 장씨가 갱지 묶음을 꺼내온다. 직접 만든 강의자료집이다. 요즘 이런 갱지는 본 적이 없다. 옛날 학창시절의 시험지를 떠올리게 한다. 사랑 이별 등 주제를 정해 시대별로 구성, 노랫말 위주로 소개하고 노래 배경 등을 들려준다.

1930년대 평양 기생 노래가 있는가 하면 요즘 대중가요 ‘한계령’,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악보와 함께 장 씨 메모가 가득하다.

이 타자기를 쳐 서점에 있는 주요 유인물들을 만들었다.

중간에 또 손님이 와 자리를 비켜주었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두 젊은 여성. 치마가 청바지에게 속삭이면 키 큰 청바지는 다시 소곤소곤 한다. 음악의 쉼표 사이에 이들의 대화는 이어지는 것 같다.

동네서점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역할이라는 말이 목적 지향적이라 딱딱한 표현이지만  서점 주인들에겐 꼭 물어본다. “작은 동네라도 문화의 향기가 스며들고 동네 분위기가 좀 문화스러워진다면 좋겠죠. 그게 꼭 목적은 아니라도 자연스러운 지향점 아닐까요” 깔끔한 답변이다.

이어지는 답은 역시 아날로그다. “동네 인심이라는 걸 새삼 느껴요. 고구마를 놓고 가는 아주머니도 있고 강아지는 무시로 드나들고요” 문 연 지 1년 됐다. 동네 사람들도 초원서점이 낯설어 애써 문 앞을 빙 둘러갔다면 요즘은 빼꼼하게 문을 열고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읽을 만한 책이 뭐가 있냐고 묻기도 한다. 초원서점이 점차 염리동으로 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초원서점은 또 책 선물대행도 한다. 책을 사거나 주문하고 누구에게 보내달라고 하면 예쁘게 포장해 보내준다. 발신자 이름은 밝히지 않을 수 있다. 짝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면 제격이겠다. 아니면 깜짝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꽤 여러 권 쌓여 있는 거로 봐 주문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선물로 보내달라고 의뢰받은 책을 일일이 포장했다. 연인에게 많이 보낸다고 한다.

장 씨는 ‘잘 쉬다 갑니다’라고 말하는 손님이 참 좋다고 한다. 주인 장 씨 말에서는 최고·진짜·정말 등 극단 표현은 찾을 수 없다. 그냥 ‘참’ 정도가 최극단 표현법이다. ‘참’ 조용한 여인이다.

초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초원서점, 주인 장혜진 씨는 맨발로 걸으며 그 푸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 사진=이태구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