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철학자들은 우아한 신전에 살아야 하나" - 정해창 교수 강연 '윌리엄 제임스, 미국과 실용주의' 발췌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철학자들은 우아한 신전에 살아야 하나" - 정해창 교수 강연 '윌리엄 제임스, 미국과 실용주의' 발췌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5.30 17:5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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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뉴스/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문화의 안과 밖’의 5월 27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1섹션 철학/사상의 아홉 번째 강연으로 정해창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월리엄 제임스, 미국과 실용주의'를 주제로 진행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정해창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대에서 석사 학위를, 뉴멕시코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델란드 라이덴대 교환교수, 독일 뒤스부르크대 방문교수, 일본 동양대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제임스의 미완성 세계』, 『듀이의 미완성 경험』, 『퍼스의 미완성 체계』, 『현대 영미철학의 문제들』 등이 있고 역서로 윌리엄 제임스가 쓴 『실용주의』 등이 있다.

정해창 교수는 이날 강연을 통해 미국 살용주의는 새로움을 갈구한 끝에 철학 황무지라는 미국에서 처음 수확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실용주의 태동을 이끈 윌리엄 제임스에 대해서는 "실용주의가 경험세계와 종교적 가치라는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영역을 중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보았다"고 말했다.

특히 제도권 밖에 있던 철학자 제임스가 기존 철학자들에 한 비판 섞인 발언은 눈길을 끈다. "철학자들이 그리는 삶은 우아하고 고상해 소수의 전문가들만 접근할 수 있는 저 언덕 위에 빛나는 대리석 신전이다."

다음은 정해창 명예교수의 강연 발췌 요약.

철학에 관해서 19세기 말의 미국을 유럽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문명화된 세계에서 미국만큼 철학의 불모지는 없다고 한 토크빌(Tocqueville)이 아니어도 미국은 철학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던 나라이다.

미국 철학자들에게는 유럽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함께 숨 쉬어온 철학적 전통이라는 것이 없었다. 전통은 기댈 언덕이지만 동시에 새로움의 출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이들은 새로움을 갈구했고, 이 황무지에서 처음 수확한 결실이 실용주의이다.

실용주의가 처음 알려졌을 때 유럽 철학자들은 이 '아마추어들’의 교의를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철학사에 등장했다 사라진 수많은 철학 에피소드 중 하나 정도로 간단히 여겼던 것이다.

(참고로, 듀이는 러셀의 실용주의 비하에 조롱으로 응답했다. “영국의 신실재론은 영국인의 귀족적 속물 근성의 반영이고, 프랑스인의 이원론적 사유 경향은 본처 이외에 첩을 두고 싶어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적 성향의 표현이며, 독일 관념론은 맥주와 소시지를 베토벤과 바그너의 정신적 가치에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려는 능력의 표명이다.”)

반면에 실용주의를 종교 개혁에 비견하여 철학의 중력 위치가 바꿔져야 한다라고까지 주장한 윌리엄 제임스에게 이들은 철학적으로 화석화된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실용주의자들에게 이들은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과거의 영화를 잊지 못하는 몰락한 귀족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용주의의 태동은 1872년 보스턴에서 일단의 반형이상학적인 지식인들이 '형이상학 클럽'이라는 아이러니컬한 이름을 내걸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진 데서 비롯되었다.

제임스는 자신의 저서 『실용주의』(1907)에 '오래된 사고방식을 위한 새로운 이름'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즉, 실용주의가 새로운 이론이나 새로운 유형의 사고가 아니고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사고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용주의가 형성되던 시기에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적 관념들이 본격적으로 대두했고 이것이 실용주의 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윌리엄 제임스

진화론은 당시 학계의 관심사로 잠시 떠올랐던 관념론에 제동을 걸고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돌아서는 발판을 제공했다. 그 무렵 학계를 포함한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과학 지상주의가 지배적이었다.
과학적 사고와 진화론은 미국인들의 정신적 지주와 같았던 청교도적 종교관에 끼치는 영향 때문에 더욱 논란의 대상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의 공립 학교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놓고 감정적으로 대립하곤 한다는 사실은 당시 상황의 혼란스러움을 어림짐작하게 해준다.

이 논란의 배후에는 과학이 경험적 사유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도덕, 종교와 같은 인간의 심리적 요소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제임스는 실용주의가 이런 곤경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실용주의가 경험 세계와 종교적 가치라는 양립될 수 없어 보이는 두 영역을 중재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제임스는 제도권 내의 철학자였지만 마치 재야에 있는 사람처럼 자유분방하게 수필의 형식으로 글을 썼다. 그의 글은 거의가 강연 원고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제도권 밖에 있었지만 마치 제도권 내에 있는 사람처럼 글을 쓴 퍼스와 대조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비주류에 대한 주류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가 비주류로서 생전에 지불해야 했던 대가가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다음의 언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학계에서 사유의 흐름이 나와 반대로 가기 때문에 (……) 나는 문이 닫히거나 잠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열려 있는 문에 등을 재빨리 기대야 하는 사람처럼 느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여러분의 철학 교수가 열어 보이는 세계는 단순하고 깨끗하고 품위가 있다. 실제 삶의 모순들은 거기서 배제되어 있다. (……) 이성의 원리는 그 윤곽을 그리고, 논리적 필연성은 그 부분들을 붙인다. (……) 그 세계는 언덕 위에 빛나는 대리석 신전과 같다.”

철학자들이 그리는 세계의 모습에서 삶의 혼란스럽고 우연적인 면은 배제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철학자들은 관념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서 마음대로 그리거나 지울 수 있다.

변화, 혼돈, 감상 등과 같이 다루기 쉽지 않거나 거북한 것들은 아예 배제해버린다. 그리하여 철학은 우아하고 고상한 어떤 것을 위한 이름 즉, 고도의 정신적 훈련을 받은 소수의 전문가들만 접근할 수 있는 성역이 되었다.

철학자들은 이 신전에 '지혜의 사랑'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스스로 거룩한 사제가 되었다. 철학자들은 여기에서 자신들만의 배타적 리그를 만들어 소위 ‘지혜의 유희’라는 것을 즐긴다.

한편 실용주의자로서 제임스가 기독교와 같은 종교를 신봉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기독교적 유일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을까? 대답은 ‘결코 아니다’가 될 것이다.

물론 그는 종교가 삶의 능동적 힘이고 그 실질적 중요성은 과소평가될 수 없다는 점을 잘 안다. 종교는 도덕과 마찬가지로 행위와 관련되는 영역에 속하지만 종교적 경험은 다른 경험들과 그 성격이 다르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대체로 종교와 도덕을 혼동하거나 아니면 종교를 정서로 물들여진 도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종교가 절대자의 이름을 빌려 사람들에게 선한 행동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면 종교를 도덕과 연관시켜 이해하는 것이 별다른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종교학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이런 인식은 오늘날에도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제임스의 종교 이해는 이와 다르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신적 존재가 끼치는 영향, 보이지 않는 것의 실재, 개종에서 숭고함의 역할 등을 강조하면서 종교는 도덕적 교훈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철학사에 이름을 올린 미국 철학자들 중에서 제임스만큼 빈번하게 인구에 회자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다양한 철학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철학자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그의 철학이 대단히 비옥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는 현상학자, 과정철학자, 실존주의자, 분석철학자, 해체주의자, 사해동포주의자 등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을 '제임스의 신화' 또는 '실용주의의 신화'라고 부른다.26 제임스라는 풍성한 밥상에 숟가락이라도 올려놓아야 그와 겸상을 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으리라.

실용주의는 1950년대 초 듀이의 서거와 더불어 철학사 창고의 한구석으로 퇴장하는 듯 했으나 로티의 『철학과 자연의 거울』(1979)이 출간된 후 많은 관심을 받으며 부활했다.

그 중간에 콰인, 셀라스(W. Sellars)와 같은 분석철학자이면서 실용주의를 위한 이론적 작업을 한 철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철학자는 신실용주의자 로티이다. 결국 그의 신실용주의는 “철학을 위한 최선의 희망은 철학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숙제를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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