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book 조리book 지대폼장-『틈만 나면 살고 싶다』] 인형탈 쓴 슈트액터 아빠·로또 연구하는 수학강사·월급 91만원 엘리베이터걸… 틈을 찾아 사는 사람들
[요리book 조리book 지대폼장-『틈만 나면 살고 싶다』] 인형탈 쓴 슈트액터 아빠·로또 연구하는 수학강사·월급 91만원 엘리베이터걸… 틈을 찾아 사는 사람들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7.05.24 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신준익 작가>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 칼은 슈트액터다. 슈트액터는 탈 인형을 쓰고 연기를 하는 배우를 말한다. 칼은 최근 몇년간 바이오맨부터 후레시맨, 울트라맨, 파워레인저까지 온갖 히어로물의 영웅이 되어보았다. 아동극에서 수많은 캐릭터 인형을 쓰기도 했다. 꼬마버스 타요의 인형 머리를 벗겨보려고 안간힘을 쓰다 우는 아이들도 있다. 힘을 합쳐 가면을 벗기려는 삼대 가족도 봤다. 가면만은 벗겨져선 안 됐다. 칼의 일상이며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인형을 벗어주는 프로답지 못한 영웅들은 그날로 거리로 쫓겨난다. 칼의 아이들은 그가 오늘은 놀이공원에서 어떤 영웅이 되어 세상을 구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칼의 직업을 배우로 알고 있다. 칼은 늘 멋진 액션 배우가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엑스트라 배우로 생활하는 건 가난하고 어려웠다. 수많은 영화 오디션을 보기도 했지만 주로 자객이나 전쟁 군인이었다. 주인공에게 얻어맞는 속칭 ‘방망이’가 되는 역할이었다. 그러다가 이 일로 들어섰다. 주로 뭘 뒤집어쓰는 일이었다. 뒤집어쓰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9~12쪽>

* 꽝은 영등포에 있는 학원에서 중학교 수학 강사로 일한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통계학 대학원에 진학한 꽝은 연구실 조교로 있으면서 틈틈이 학원 강사를 했다. 어느날 지도 교수의 연말정산을 처리해주던 꽝은 문득 삶이 헛헛해졌다. 몇년간 연구실에서 지도 교수가 룸살롱에 가서 쓴 수많은 영수증을 모으는 일만 했다. 살아온 인생을 대충 통계 내보니 잘돼야 학교 전산실 취업이었다. 꽝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로또를 왕창 샀다. 그 후 로또는 꽝의 ‘완전연소 프로젝트’가 됐다. 로또를 분석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꽝은 방바닥에 앉아 홀짝 비율과 고정 수와 제외 수를 분석한다. 경향 역전 수에 대한 도표를 만들고 당첨 수기를 열심히 읽으며 마인드맵을 작성한다. 꽝은 로또를 성실하게 분석하는 것만이 무산 계층을 우습게보지 않는 건강한 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등을 해결하고 자수성가할 수 있는 자발적 동기를 한탕주의로 몰고 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꼬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95~97쪽>

* 텐은 K그룹 본사 빌딩의 엘리베이터 안내원이다. 제복을 입고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된다. “몇층 가십니까?” 공손하게 물어주고 원하는 층을 안내해주거나 여닫기만 하면 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두 종류다. “몇층, 눌러주세요” 하고 말하는 친절한 쪽과 “몇층!” 하고 반말하는 쪽이다. 텐은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배가 너무 고플 때도 엘리베이터를 사수하고 있어야 한다.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애환은 주당 40시간 평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 토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순환을 요구하며 월급 91만원으로 책정돼 통장에 돌아온다. 일한 지 6개월 동안 텐이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몰래 삼각김밥과 삶은 계란을 먹은 건 두번 정도다. 고개를 돌려 1분 만에 입에 쑤셔 넣고 목으로 넘겼지만 경비원에게 발각됐고 불려가 싸대기를 몇차례 맞고 무릎을 꿇고 빌어야 했다. 텐은 그래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 <110~113쪽> 

『틈만 나면 살고 싶다』 
김경주 지음 | 신준익 그림 | 한겨레출판사 펴냄 | 232쪽 | 13,000원

*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24호 (2017년 5월 22일자)에 실렸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