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한나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의 정치를 꿈꾸었다" - 박명림 교수 강연 '한나 아렌트와 정치철학' 발췌 요약
[네이버 열린연단] "한나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의 정치를 꿈꾸었다" - 박명림 교수 강연 '한나 아렌트와 정치철학' 발췌 요약
  • 엄정권 기자
  • 승인 2017.05.2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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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뉴스/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문화의 안과 밖’의 5월 20일 순서는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 1섹션 철학/사상의 여덟 번째 강연으로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한나 아렌트와 정치철학'을 주제로 진행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북파크 카오스홀).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합동연구학자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Ⅰ·Ⅱ』,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고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 『비전과 관점 열기』,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통일 이후 통일을 생각한다』 등을 공저했다.

박명림 교수

박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오늘날은 가장 평화로운 시기에 세계화의 이름 아래 시장이 주도하는 불평등이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며 "인간 삶의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심저히 파괴되는 도정이 다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세계의 평화 및 안전과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관계)에 대한 가장 깊은 고뇌를 보여준 한나 아렌트가 지금 다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세계는 다시금 신자유주의가 압도하는 일반주의와, 몇몇 근본주의와 테러라는 두 가지 구조적이며 구체적인 폭력들에 시달리고 있다"고 현실을 강조하며 "정치의 회복을 통한 민주주의와 자유와 평등의 모색이 절실한 때이다."라고 밝혔다.

독서신문은 한나 아렌트가 '자유와 평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한 점에 주목, 박 교수의 강연 내용 중 <용서와 화해 :세계사랑의 출발> 부분을 발췌 요약해 싣는다.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을 정치의 핵심으로 본다. 화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오랫동안 지탱되어온, '생명에는 생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손에는 손, 발에는 발(life for life, eye for eye, tooth for tooth, hand for hand, foot for foot)'법칙(신명기 19;21. 마태 6;38. 同害報復法. lex talionis)을 야만의 행동으로 명백히 반대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용서는 실로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관용은 하느님에게 용서를 받기 위한 절대적 선결요건이었다. 이것은 기독교 근본교리이자, 아렌트의 입점이다.

성서는 인간 사이의 용서와 관용을 반복하여 먼저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신에게보다 인간들 사이의 용서가 먼저인 것이다. 성서의 가르침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명확하다.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고 일관된다. 성서에서 신의 용서에 앞서 인간 사이의 용서보다 먼저, 더 반복되는 가르침은 없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저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 6:14-1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 18:3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마가 11;2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주기도문. 마태 6;12)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먼저 돌로 치라”(요한복음.8;7)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데전 5;15)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누가 17;4) 일찍이 노자는 전쟁에서 사람을 많이 죽이면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나아가고, 승전을 하였을 때는 승전고를 울리고 축제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패자를 위한 상례(喪禮)를 올리라고 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 중 누가 과연 자기에 맞서 싸우다 죽은 자를 위한 상례를 갖출 수 있을 것인가? 동서를 막론하고 애도와 비통의 표현인 매장의 예를 적에게 갖춘다는 것은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가장 놀라운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죽음의 포용을 통해 이생의 갈등을 용서하는 동시에 용서를 빌며, 관용하는 동시에 관용받고 싶은 인간의 절대적인 생명열망과 화해열망을 내포한다.

특별히 재림과 심판[죽음]이 다가올수록 관용해야 한다. 심판이 다가온다는 말은 죽음에 가까울수록 죄가 큰 만큼 더욱 용서하라는 가르침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결국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태 16:27)고 정면으로 언명한다. 모든 인간행위들을 지켜본 뒤, 최후의 심판은 용서도 사랑도 아닌, 인간들 각자가 행한 대로 받는 ‘공정한 응보’다. 인간은, 자신부터 매일 죄를 짓는 존재다.

따라서 탄생과 함께 원죄만큼이나 용서는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양대 본질을 구성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세계는 평화를 결코 꿈꿀 수 없다.

폭력이 힘이 아니라 용서가 힘이다. 적대가 힘이 아니라 관용이 힘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세계사랑의 출발점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인간화해와 세계사랑은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종교는 물론이려니와 현실에서도 말이다. 갈릴레이 갈릴레오와 찰스 다윈의 사례는 우리를 정녕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한다.

산타 크로체 성당은 필자가 자주 들른 곳이다. 거기에서 특히 주목을 끈 묘지는 마키아벨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무덤이다. 이들이 이곳에 안장된 것을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

주지하듯 마키아벨리는 기독교에 의해 악의 화신으로까지 묘사된 사람이다. 금서조치는 물론이었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천동설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람이다. 둘 다 가장 반기독교적인 인물들로 낙인찍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프란체스코 성인을 기리는 성당에 안장되었다. 세속 현실에서의 이 화해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무덤들은 또 어떠한가? 찰스 다윈과 그의 친구 후커. 이들은 가장 강력하게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반대한 사람들이다. 진화론은 창조론을 반박한 가장 체계적이고 강력한 과학이론으로 간주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무덤은 당당하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셔져 있다.

가장 권위있는 다윈의 전기에도 이 부분은 나와 있지 않다. 너무 당연하였기 때문인가? 다윈의 묘가 고향이 아닌 웨스트민스터로 모셔질 때에도, 어떤 논란도 없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였을까?

한나 아렌트, 유대인 출신…『인간의 조건』 유명

한나 아렌트 <사진=네이버캐스트>

<이하 네이버캐스트 참조> 한나 아렌트는 1906년에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칸트가 평생을 보냈던 도시다. 그녀의 조부모까지는 유대계 상인의 생활을 했지만,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파울 아렌트와 어머니 마리아는 독일의 보통 중산계급 시민으로서 다른 시민들과 어울리며 살았다.

한나가 어릴 때 집에서는 ‘유대인’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유대인이라고 놀리는 소리를 학교나 거리에서 듣게 되고, 그것이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16세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할 만큼, 조숙하고 명석한 소녀였다. 칸트만이 아니라, 같은 유대인 여성이면서 대표적 사회주의 사상가로 명성을 날리던 로자 룩셈부르크도 그녀의 우상이었다.

1958년에 낸 『인간의 조건』은 그녀를 현대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인간이 살면서 하는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하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사진=네이버캐스트>

1960년,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악명 높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정보부에 붙잡혔다. 그가 이스라엘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렌트는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 과정을 취재했다.

1961년 12월에 열린 아이히만 재판을 직접 재판정에서 지켜본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는 1963년에 출판되어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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