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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빗속의 '폐지 할머니', 서울을 향해 울다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리더스뉴스/독서신문] 늦봄의 날씨답지 않게 우박이 섞인 작달비가 쏟아지던 며칠 전이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빗속에서 토악질을 하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거센 빗줄기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으며 길옆에 쪼그리고 앉아 연신 음식물을 토하는 할머니 모습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나 다름없었다.

할머니 곁에 걸음을 멈춘 나는 우산을 할머니께 씌워주며 연유를 물었다. 할머니는 아침에 국수 먹은 게 급체한 것 같다며 모기소리 만한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잇는다. 나는 할머니를 부축한 후 손수건과 생수병을 건네주었다.

그 때 할머니는 한기를 느끼는 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그 모습을 보자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를 보다 못하여 우리 집에 가서 몸에 물기라도 닦고 가는게 어떠냐고 권유하자 할머니는 선뜻 응한다. 할머니를 모시고 집에 도착한 나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할머니께 장롱을 뒤져 헌옷을 드렸다. 할머니 옷을 세탁하며 자세히 보니 옷이 너무 남루했다.

몇 시간 후 안정을 되찾은 듯 할머니는 가까스로 입을 연다. 슬하에 일곱 명의 자녀를 둔 할머니는 이북이 고향이란다. 6·25 때 남편과 함께 남한에 내려온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이 세상을 뜨자 온갖 고생을 하여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단다. 그러나 늙고 병들자 그 자식들 중 어느 한 명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아 폐지를 주워 간신히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하였다.

얼마 전에는 손자가 보고 싶어 어렵사리 차비를 마련하여 서울 큰 아들 집을 찾았단다. 그곳에 간 지 몇 시간 만에 아들 내외는 해외여행 가야 한다며 할머니를 집으로 내려가라고 종용했단다. 아들 내외로부터 문전박대 당하고 생활비 한 푼도 못 받은 채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는 연신 눈가를 훔친다.

할머니가 큰 아들 내외 집에 도착했을 때 며느리는 기르는 반려견 먹이를 마침 사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반려견 먹이의 겉봉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우, 홍삼이 가미되었더란다. 평소 할머니에게는 한우, 홍삼은커녕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사는 큰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르는 반려견한테는 한우와 홍삼 성분의 비싼 사료를 먹이로 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보자 더욱 서러운 생각이 들었단다. 자신의 처지가 집에서 기르는 개만도 못한 듯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란다.

할머니의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싸아 해왔다. 나또한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홀로 계시지 않는가.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뵙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 전화를 드리련만 어찌 어머니의 지난날 희생과 가없는 사랑을 다 갚는 일이라고 할 수 있으랴.

어려서 어머니는 우리들이 혹여나 그릇될까봐 자나 깨나 걱정하였지만 이제는 내가 늘 어머니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 수차례에 걸친 척추 수술, 잇몸이 부실하여 틀니지만 야채나 과일, 고기 등은 입에도 못 대어 일주일에 한 번씩 쑤어다 드리는 죽으로만 연명 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 모습이 할머니 모습에 겹쳐져 더욱 할머니가 측은해 보인다.

더구나 할머니는 청상에 홀로되어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온갖 풍상과 맞서며 일곱 명의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자랑스러운 어머니가 아니던가.

이런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면 여생을 불편함 없이 보살펴 드리고 생계를 책임지는 게 자식의 당연한 도리이건만 할머니의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를 방치하고 외면하였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한 분이다. 가난했던 지난 시절 자신의 노고와 희생으로 자식들 입에 흰쌀밥 넘기는 것을 큰 낙으로 삼고 살아온 분이다. 자신의 안위보다 오로지 자식 잘되기만을 천지신명께 기도 하고 또 기도하던 분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마다않고 뛰어든 우리의 부모님들이다.

지난날 부모님들이 자식 위해 당신들의 심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것처럼 이 분들의 노후만큼은 이제 자식들이 돌봐드려야 한다. 이 때 앞서는 것은 물질보다 부모님에 대한 관심과 진심어린 공경심이 아닐까 한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는 금수(禽獸)만도 못한 자이다. 짐승도 자신을 거두어준 사람의 은혜는 안다.

우연히 만난 어느 할머니의 눈물을 대하며 날이 갈수록 희석되는 경로 효친 사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에 새로 선출된 대통령께서 이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자에겐 일자리도 우선적으로 마련해 주고, 세금 혜택도 더 많이, 그리고 부모를 모시는 자에겐 전세자금이나 주택 자금도 지금보다 더 저금리로 대출 해 주는 등 피부에 와 닿는 효도 권장을 나라의 정책으로 펼치는 게 그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인 경로효친 사상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다시금 일깨워 준다면 더욱 밝고 따뜻한 세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대를 새 대통령께 가져 볼까한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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