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뉴스/독서신문 박재붕 기자] 살아온 삶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어떤 감정이 어느날 불쑥 큰 소리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면, 지금 나이가 몇이든 또 한 번의 탈바꿈, 곧 성장의 조짐이 근접해온 것이라 봐야 한다. 항상 듣고 보아오던 주변 사람의 목소리와 모습이 새삼스레 느껴졌다면,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뭔가 변화의 꿈틀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면 누구든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놓치고 살아온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놓쳤던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지 않은 것, 선택하지 않았던 어떤 것이다. 이 소설 『나는 포옹이 낯설다』는 그런 의미에서 성장소설로 읽힐 수 있다.
냉소적이고 괴팍한 나폴리 노인 체사레. 5년 전 아내를 잃었고 자식이 둘이다. 남은 인생동안 남에게 관심을 갖지 않기로 결심했고, 살아오면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잊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죽음을 앞두고 하는 일이라곤 아래층에 사는 신경과민 노인네 마리노와 포도주 한 잔씩 기울이는 것이고, 이웃집 고양이 부인 엘레오노라와 마지못해 몇 마디씩 나누며, 돈 몇 푼 받고 혼자사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는 나이 많은 간호사 로산나와 잠깐씩 욕정을 푸는 게 다다.
그러던 어느날 아파트에 수수께끼 같은 젊은 여자 엠마가 이사왔다. 체사레는 엠마 부부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눈치챈다. 하지만 절대로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엠마는 그의 일상을 전복시키는 활력소가 된다.
그녀의 부푼 입술과 멍든 눈을 몇 번 보고나자, 가해자 남편에 대한 분노가 이 상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결심이 노인의 가슴에 박힌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는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타인과의 소통 이전에 자신과의 화해이며, 자신의 아쉬움에 대한 위안이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체사레가 엠마로 인해 자신의 삶까지 껴안아 가는 과정을 함께한다. 늘 곁에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 놓치고 살았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삶을 축복해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의 종착점에서 체사레는 살아가는 동안의, 살아있는 동안의 한순간 한순간이 음미하고 사랑해야 할 시간임을 각인시킨다.
『나는 포옹이 낯설다』
로렌초 마로네 지음 | 들녁 펴냄 | 304쪽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