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김혜식의 인생무대
[수필-김혜식의 인생무대] 여자들이여, 밥상을 차리자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작은도서관장>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젊은 날 연탄아궁이 부뚜막 위엔 광채 나는 냄비를 항상 여러 개 마련해 두었다. 음식만 요리하고 나면 억센 수세미에 일명 예쁜이 비누를 잔뜩 묻혀 양은 냄비를 닦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은 덕택이다.

이런 일상은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육아에 시달리다보니 냄비에 광을 내는 일을 멈추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써 수세미로 닦지 않아도 될법한 금속의 냄비들이 시중에 출시되어서이다. 이것을 몇 개 구입해 놓고 보니 그토록 날만 새면 냄비를 닦던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것 같아 못내 기분이 홀가분했다.

그 당시 주부들 사이엔 은연중 주부의 야무진 손끝 가늠을 냄비 윤기를 보고 평가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어느 땐 억센 수세미로 수없이 냄비를 닦은 탓에 닳고 닳아 냄비가 구멍 난 적도 있었다. 그 때는 왜 그토록 냄비 닦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는지 모르겠다.

결혼 초, 전세방 한 칸 얻을 여유가 없어 사글세부터 시작했다. 그 시절 부뚜막 위에 놓인 광채를 발하는 냄비들을 바라보며 흡족해하던 작은 행복이 요즘 그리워지는 것은 어인일일까.

본디 주부들의 가사 노동은 아무리 힘들여 해도 결과물의 표시가 미미한 법이나 냄비 닦는 일은 달랐다. 수세미 쥔 손에 힘만 잔뜩 주면 그 당시 양은 냄비는 애초의 노란 옷을 말끔히 벗고 번쩍번쩍 빛을 내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요즘은 어떤가. 주방 용품들의 고급화로 시중에 나가보면 수입산 주물 냄비, 법랑 냄비, 스테인레스 냄비 등이 나와 주부 요리 솜씨를 한껏 돕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이즈막은 참으로 살림살이 꾸리기 편한 세상이다. 예전처럼 된장, 고추장 등의 장류는 물론 가솔들을 위해 다량의 김장을 담그지도 않는다. 밥은 전기밥솥이 해주고 청소는 로봇 청소기가 먼지 한 톨 없이 해준다.

뿐만 아니라 동네 슈퍼마켓만 나가면 온갖 즉석밥이며 식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잖은가.  찌개류, 국류를 비롯,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반찬들이 깔끔하게 포장돼 소비자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세태여서 가정에서 애써 밥상 차리는 수고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돈만 쥐고 나가면 입맛대로 외식을 즐길 수 있다.

얼마 전 모 교향악단에 근무하는 큰 딸이 연주를 마치고 며칠간 휴가를 얻어 집엘 왔다. 외출했다가 오는데 구수한 음식 냄새가 아파트 복도 가득 퍼지고 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냄새가 더욱 진동하여 나의 시장기를 자극했다.

마침 딸아이가 냉이 된장국을 끓이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식탁 위엔 새콤달콤하게 무친 달래 나물,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는 시금치는 물론 오이소박이도 정갈하게 예쁜 그릇에 담겨있다.

딸아이가 요리한 반찬들을 바라보노라니 입안에 침이 절로 가득 고여 온다. 겨우내 김장 김치와 뜨끈한 국물에 길들여진 입맛 탓인지 딸아이가 차린 저녁 식탁에서 봄기운을 느끼는 동시에 잃었던 입맛마저 되찾는 듯 했다.

한편 그런 딸아이가 대견스러웠다. 딱히 내게 요리 수업도 받지 않은 딸이 아니던가. 어려서부터 나의 어깨 너머로만 보아온 요리법을 되새겨 솜씨를 발휘한 딸이었다. 모쪼록 결혼해서도 그런 모습을 잃지 않기를 어미로서 소망해 본다.

언젠가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갔다가 계산대에서 적잖이 놀란 일이 있다. 서른 살 중반 쯤 돼 보이는 젊은 여성이 자신이 장을 본 물품들을 계산하기 위해 계산대 위에 물건들을 올려 놓았는데 대부분 햇반과 즉석 식품이었다.

예닐곱 살 쯤 돼 보이는 여자 어린이를 대동했는데 갑자기 그 아이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흔히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아니어도 어린이가 제대로 된 성장 발육을 위해서는 어머니가 정성껏 만들어주는 음식이 최고의 영양식 아니던가.

집안에서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릴 때마다 ‘가난했던 그 시절, 변변한 요리기구도 없는 열악한 환경의 부엌에서 어머닌 어떻게 많은 가족들의 끼니를 요리하였을까?’ 라는 생각에 새삼 어머니의 가없는 희생과 헌신을 떠올려보곤 한다.

요즘은 어떤가. 쌀이 남아돌아 창고에 쌓이고 밥을 해먹는 수고를 덜기 위해 아예 음식을 집안에서 해먹지 않고 외식이나 즉석 식품으로 해결하는 세상이다. 물론 이런 사회적 현상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도 한 몫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맞벌이가 늘다보니 업무에 지치는 일상에서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왜 사는가? 삶의 본질에 대한 많은 해답 중 한 가지를 손꼽으라면 먹기 위해 사는 일도 배제할 순 없다. 음식을 먹되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 먹는 게 중요하다.

제철에 생산되는 채소, 과일, 신선한 육류와 해산물 등으로 차려진 밥상을 통하여 우린 생명을 보전하고 건강을 지키며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어린아이를 안고 젖을 물릴 때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독서신문  

<저작권자 © 독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