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싫은 아이, 방아쇠를 당기다
질 파리의 '꾸르제뜨 이야기'
질 파리의 '꾸르제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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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툭하면 신세타령을 내뱉었다. 엄마가 싫어하는 대상은 주로 우리의 머리 위를 덮고 있는 ‘하늘’이었다.
호박덩어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꾸르제뜨’는 엄마가 싫어하는 하늘이 너무나도 싫었다. 남들에겐 희망을 주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존재일지 몰라도 꾸르제뜨에겐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생활을 외면하는 일종의 적이었다.
하늘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가던 소년은 어느 날 권총을 손에 넣게 된다. 꾸르제뜨는 자신의 적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총구를 하늘에 겨누고 서서히 힘을 주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총성이 울린다. 하지만 모든 것이 뚫어줄듯 했던 하늘에 대한 발포는 소년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앗아간다. 이때부터 꾸르제뜨는 ‘친족살해자’ 라는 명찰을 달게 된다.
이후 재판에서 판사는 꾸르제뜨를 “무기력한 미성년자”로 선포하고 그는 감화원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꾸르제뜨에게 감화원은 ‘감옥’ 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꾸르제뜨는 이 때부터 삶을 배우고 사랑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오히려 절망이 있던 곳에서 탈출한 것이다. 소년은 비로소 우정과, 아직은 어린애다운 풋사랑을 경험해 나간다.
이것은 분명 슬픈 아이의 성장 이야기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해맑고 유쾌함을 자아내어 배꼽을 잡고 웃게 하다가도 불현듯 딱한 마음에 코끝 찡하게 만드는 맹랑한 이야기다. 꾸르제뜨는 이제 더 이상 하늘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지상에서 더 큰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나 성장기의 아이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마치 하늘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처럼 이 세상이 싫어지기 마련이다. 꾸르제뜨가 하늘을 쏘았을 때는 그랬다. 희망을 쏜 것이 아니라 절망에 대한 절규를 쏘았다. 비록 하늘을 없애버리는데 실패했지만 그로 인해 땅을 바라보게 되었고 주변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을 찾아가게 되었다.
삶이 힘들 때 굳이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필요는 없다. 절망의 하늘 대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았던 꾸르제뜨처럼, 삶이 힘들 땐 잠시 여유를 가지며 주변을 바라보길 권하고 싶다. 어디선가 희망의 손길이 우리를 향해 내밀어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꾸르제뜨 이야기
질 파리 지음 / 성귀수 옮김 / 열림원 펴냄 / 412쪽 / 12,000원
<권구현 기자> nove@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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