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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칼럼] 액자가 좋다고 명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독서신문]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이름난 산이요(山不在高 有仙則名)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신령한 못이다(水不在深 有龍則靈)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斯是陋室 惟吾德馨)
- 유우석의 누실명(陋室銘) 중에서

산의 값어치는 높은 데에 있지 않다. 신선이 살고 있다면 그게 바로 명산이다. 물의 값어치는 깊은 데에 있지 않다. 용이 살고 있다면 그게 바로 신령스런 물이다. 집의 값어치는 큰 것에 있지 않다. 군자의 덕이 있어야 향기 나는 집이 된다. 액자가 좋다고 명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1분 1초가 급박한 시간에 한 올림머리를 아름답게 보는 사람은 없다. 헤어롤을 하고서라도 즉각 현장에 달려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름다워지고 싶다면 외형을 가꾸기 전에 먼저 마음을 닦고 덕을 쌓아야 한다. 올림머리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아름답다.

임제종의 고승인 잇큐선사는 술, 고기, 여색을 즐기는 등 일본불교사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선사가 교토의 한 부호 집에서 열리는 법회에 법사로 초청받은 적이 있었다. 약속한 날 잇큐선사는 누더기 옷을 입고 온몸에는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거지꼴을 하고 부호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 주인은 당장 내쫓으라고 고함을 쳤다. 잇큐선사는 하인들에게 매를 흠씬 맞고 쫓겨났다.

잠시 후 선사는 깨끗하게 목욕하고 화려한 금란가사를 몸에 두른 후 다시 그 집에 갔다. 그러자 주인은 아주 공손하게 선사를 맞이하며 안으로 안내를 하려 했다. 그러나 잇큐선사는 문 앞에 서서 더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주인이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선사께서 답했다. “방금 제가 누더기 옷을 입고 왔을 적에는 매를 쳐서 쫓아내시더니 금란가사를 입고 오니 이렇듯 환대를 합니다. 주인께는 저 보다 금란가사가 더 필요한 듯합니다. 옷을 드릴 테니 오늘 법회는 금란가사로 하여금 주관토록 하십시오.”

양포지구(楊布之狗)란 말이 있다. 양포(楊布)가 외출할 때는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비를 맞아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는데 양포의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짖었다는 뜻이다. 겉모습이 변한 것을 보고 속까지 변해버렸다고 판단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겉모습을 보고 사람의 속까지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좋은 그림은 현란한 색상으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다. 속이 꽉 찬 사람은 겉모습으로 상대를 현혹하려 하지 않는다. 또 겉치레로 자신의 부족함을 보상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높은 지위보다는 높은 지혜가 머리를 숙이게 한다. 비싼 옷보다는 부패한 냄새가 나지 않는 옷이 명품이다. 아파트 평수보다는 마음의 평수가 큰 사람이 정이 가고 사귀고 싶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세계 10위권대의 경제 대국으로 초고속 성장을 자랑해 왔다. 빠름만을 추구하고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 왔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모두 삶에 지치고 힘들어 한다. 행복지수는 방글라데시나 인도 같은 저성장국보다도 오히려 낮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학교에서부터 ’경쟁에 승리한 자가 패배한 자를 지배한다.‘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국가경쟁력이 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행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형적 성공이 곧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이제는 출세하고 돈 버는 기술만 배우려 할 것이 아니라 공존과 배려의 미덕도 배워가야 한다.

사슴의 몸 속에는 똥이 있고 누에의 몸속에는 비단이 있다. 겉이 아름답다고 속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겉이 징그럽다고 속까지 징그러운 것은 아니다. 화려한 겉치레를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어가야 한다.

비싼 립스틱을 바른 입보다 진실을 말하는 입이 아름답다. 올림머리보다는 헤어롤을 한 머리가 더 큰 위로가 된다. 하늘처럼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모두 진짜 하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뻐기고 짓누르는 하늘이 아니라 보듬고 품어주는 치유의 하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높은 것이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맑은 것이 감동을 준다. 맑은 하늘은 보는 이의 마음도 맑게 만든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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