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39)] “글쓰기 논술 중심의 입시는 선진 교육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
[독일 글쓰기 교육 특집(39)] “글쓰기 논술 중심의 입시는 선진 교육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7.03.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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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비투어’ 시험으로 살펴본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

<독서신문>은 창간 48주년을 맞아 신향식 객원기자(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의 ‘독일 글쓰기 교육’을 연재합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현지 취재와 국내에 체류 중인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일의 선진적인 글쓰기 문화를 소개합니다. 신 기자는 하버드대와 MIT, UMASS 등에서 미국 글쓰기 교육을 심층 취재해 보도한 바 있고, 대학과 고교에서도 글쓰기 및 소논문, 보고서 작성법을 체계 있게 지도하는 논증적 글쓰기 교육의 전문가입니다. / 편집자 주(註)

베를린자유대 본관 도서관

[신향식 객원기자] 2015년 10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공항. ‘독일 글쓰기 교육’ 현장탐방 취재를 마치고 독일 함부르크를 출발한 나는 경유지인 모스크바에서 무거운 배낭을 마치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었다. 중요한 자료다 보니 분실에 대비해 직접 들고 탑승한 것이다. 독일 대학과 김나지움(중고교)에서 구한 글쓰기 자료들이었다.

독일 교육은 철저하게 글쓰기를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교육=글쓰기’, ‘글쓰기=교육’이었다. 한국의 대입 수능시험 격인 아비투어(고교 졸업 자격고사)도 논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과목당 3~4시간에 걸쳐 장문의 글을 써내는 방식이다. 독일이 인재 강국이 된 비결은 독서와 토론과 글쓰기를 결합한 창의적인 교육에 있다고 한다.

독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강조하는 입시는 선진국 교육의 큰 흐름이다. 글읽기(독해)와 글쓰기(표현)를 모든 지적 활동의 출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와 영국의 고교 졸업 자격시험, 호주의 대학입학 논술시험, 그리고 글쓰기(에세이)가 포함된 미국의 수능시험인 SAT를 보더라도 선진국에서는 글쓰기를 중시한다.

◆ 선진국은 논술고사 중심의 대학입시 실시해

귀국한 지 4일 뒤에 ‘어처구니없는 뉴스’가 떴다. 20년 넘게 논술고사를 실시해온 고려대가 2018학년도부터 대입논술전형을 폐지하고 그 대신 서류와 면접으로 신입생을 뽑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논술고사를 처음 도입한 대학은 연세대지만 논술 문제 유형을 발전시킨 데에는 고려대의 역할이 컸다. 따라서 고려대의 논술고사 폐지를 뜻밖이라고 생각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고려대는 논술고사를 폐지한 이유로 사교육비 부담을 들었다. “사교육 비중이 높은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며 논술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학점이나 학교생활 등에서 논술전형 입학생들의 성과가 가장 낮았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순간, 독일 함부르크공대 우베 스타로섹 학장을 인터뷰한 내용이 귓전을 때렸다. “독일에서는 운전면허시험만 객관식이다. 모든 시험이 글쓰기로 이뤄진다. 몇 년 전에 논술전형을 폐지한 서울대의 입학전형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논술고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에서 교환교수를 하고 부인이 한국인이다 보니 글쓰기를 홀대하는 ‘처가(妻家) 나라’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무언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서울대에서 논술전형을 폐지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글쓰기 중심의 시험을 중시하지 않는 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독일 수능시험인 아비투어 문제

◆ 독일 바이에른주, 315분간 논술하는 문제 출제

그러면 독일에서는 대학 입학을 결정짓는 ‘아비투어’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까? 독일은 아비투어를 주별로 독립적으로 출제한다. 아래는 바이에른주의 2016년 아비투어 독일어 시험 문제다. 객관식이 아니라 논술식으로 출제하고, 한 과목을 치르는 시험 시간이 무려 315분이다. 분량에 제한이 없는 문항도 있다. 다섯 가지 문항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다른 과목들도 논술식으로 출제한다.

<문제 1>

힐데 도민(Hilde Domin)의 시(詩) ‘낯선 자(Fremder)’를 독해하여 해설하시오. 특히, 시적 자아인 ‘나’가 이 시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논술하시오. 당신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실존적 자아상실(die existenzielle Verunsicherung)’이라는 주제가 다른 문학적 작품에서는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밝히시오. (제시문 있음)

<문제 2>

게하르트 하웁트만(Gerhart Hauptmann)의 극작품 ‘외로운 인간들(Einsame Menschen)’에서 발췌한 제시문을 해설하시오. 당신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어떻게 ‘성 역할(Geschlechterrollen)’이라는 주제가 다른 문학 작품에서 형성되고 있는지 논술하시오. (제시문 있음)

<문제 3>

고트프리트 켈러스 노벨레(Gottfried Kellers Novelle)의 극작품 ‘시골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und Julia auf dem Dorfe)’에서 발췌한 제시문을 추론하여 해석하시오. 특히 각 인물들이 갈등하는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집중적으로 해설하시오. 당신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다른 문학 작품에서는 사랑을 시작하는 부분을 어떻게 형성하여 묘사했는지 설명하시오. (제시문 있음)

<문제 4>

다음 주제 발표문의 도입부를 작성하시오. 가령, 학교에서 ‘욕망-유혹-조작’이라는 주제로 연구 발표회를 한다고 가정합시다. 마무리 발표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은 이 프로젝트를 참관하는 다른 사람들-학생들, 교사들, 학부모들-에게 주제에 관한 여러 가지 관점을 각자의 강의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기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참가한 독일어 교실에서는 ‘문학 속의 유혹’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문학 작품에서 발췌한 제시문을 통하여 객관적 정보들과 사진 자료들, 그리고 시청각 자료들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문학 속의 유혹’이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발표 활동에서 시작 부분을 맡고 있다고 합시다. 당신은 지금부터 도입부 발표문을 작성해야 합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줄거리에서 ‘문학 속의 유혹’에 관한 실마리를 얻어 작성하면 좋습니다. 본론에 이론적 배경(1~5쪽 분량)과 탐구 결과(6~9쪽), 그리고 탐구 결과를 논의하는 결론에 여러분의 생각이 담긴다고 가정하고 작성하면 됩니다. 도입부 분량은 1,200자로 제한합니다.

<문제 5>

다음 두 가지 문항 중 하나를 선택하여 논술하시오. (제시문 있음)

(선택지 1) 디지털화된 미디어 세상에서 ‘읽기’가 의미를 잃어가는지 논술하시오. 다음 제시문에 근거하여 작성하되 개인적 경험과 배경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시오.

(선택지 2) ‘글쓰기 문화의 종말’이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신문에서는 ‘디지털화된 미디어 세상에서 읽기 활동이 의미를 잃는다’면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 제기에 관한 당신의 생각을 800자로 논술하시오. 다음 제시문에 근거하여 작성하되 개인적 경험과 배경지식을 활용하시오. 적절한 제목도 붙이시오.

이처럼, 독일에서는 대입시험 문제를 논술식으로 출제한다. 한국의 수능시험 국어영역 문제와는 출제방향이 근원적으로 다르다. 독일어 문제는 문학작품 분석에도 초점을 맞추지만 철저하게 글쓰기를 기반으로 한다.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어 교과서에 실린 지문을 읽어가면서 해설해 주지만 독일에서는 학생 스스로 지문을 분석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모국어를 읽고 쓰는 교육에 있어서 접근방식이 원천적으로 다르다.

정치나 사회, 역사, 경제 과목은 독일어보다도 더 치열하게 자신의 주장에 논거를 곁들여 논술하는 방식으로 출제한다. 이런 문제는 독서를 충분히 해 제시문 독해력과 배경지식, 사고력을 키워 놓지 않으면 손도 대기 어렵다. 수학이나 과학 문제도, 질문 문항에 맞춰 답안을 글로 쓰기 전에, 제시문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 분량이 2쪽을 넘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출제자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도 적잖은 지적 활동이 필요하다.

딜타이 김나지움 독일어 시간

◆ 한국은 교사가 교과서 지문 해설…독일은 학생 스스로 지문 분석

반면, 한국에서는 서울대, 서울교대, 고려대를 필두로 논술고사를 완전히 폐지했거나 축소하기에 바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하고 논술 전형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도록 유도한 데 따른 현상으로 분석된다. 수능시험과 내신시험은 모두 객관식 위주로 출제하다 보니 암기를 해 정답을 맞히는 게 대부분이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비교과 활동을 많이 할 뿐 독서와 글쓰기의 비중은 적다.

그렇다면, 객관식 문화에서 성장한 한국 학생들과 독서(읽기), 토론(발표), 논술(글쓰기) 위주의 문화에서 교육받은 독일 학생들은 독해력, 표현력, 배경지식, 사고력에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어느 나라 학생들이 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까.

물론 글쓰기 위주의 독일 교육에 단점이 있을 수도 있다. 독일 방식을 한국에 100% 적용하기도 어렵다. 또, 논술고사를 폐지한 고려대와 서울대, 서울교대의 입시전형을 존중할 필요도 있다. 신입생 선발 방식을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논술전형을 폐지·축소하라는 교육부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재정 지원을 줄였기에 대학들 처지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문제 제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사교육비의 역기능이 논술의 순기능보다 심각한지 검증 필요

첫째, 글쓰기 논술 교육은 정말로 사교육비를 심각할 정도로 발생시키는가. 사실, 사교육비가 더 많이 드는 과목은 영어와 수학이다. 입시논술 사교육비는 수능 직후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구조다. 수능 시험일 하루 이틀 뒤에 13개 대학이 논술고사를 치르는 데다 주로 상위권 대상이므로 사교육 시장이 크지 않다. 통계상에 나타나는 논술 사교육의 대부분이 초·중학생들의 독서토론논술이다. 따라서 대입논술의 사교육비 유발 요소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고 이것을 사교육 주범으로 마녀 사냥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사교육비가 문제라면 공교육 교사들이 연구하여 제대로 지도하면 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연세대·성균관대·이화여대·중앙대·한국외국어대·한양대 등 6개 대학이 논술전형을 유지하겠다고 2015년 11월 24일에 공동발표를 했다. 고려대의 논술 폐지 파동으로, 학부모들의 문의가 빗발치자 “논술 없이는 교육 선진화가 어렵다”며 논술을 폐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논술전형이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창의성 향상의 효과가 있다는 게 6개 대학의 판단이었다.

둘째, 교육 당국이 권장해 논술전형 대신 확대 도입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사교육비에서 자유로운가. 비교과 스펙을 쌓기 위한 과외비와 컨설팅료가 더 많은 사교육비를 필요로 한다. 면접 지도비도 만만치 않게 비싸다. 서류와 면접만으로 선발하면 공정성도 떨어지고 고교등급제로 악용될 수도 있다. ‘금수저전형’이요 ‘엄마표전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기초자료인 학교생활기록부에 적는 문구를 학생들에게 직접 적어오게 하는 고교도 많다.

셋째, 논술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력이 낮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주장인가. 일부 명문대에서는 정시 출신과 수시 출신 사이에 위화감도 있다고 한다. 지역균형전형으로 입학한 친구들을 ‘지균충’이라고 깎아내리고, 편입생들을 서자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논술전형 입학생들의 성과가 가장 낮다’고 대학 당국이 언론에 발표하는 게 ‘제정신’인지 당혹스럽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렇다.

2015년 2학기 연세대 석사 논문으로 ‘대입논술 사교육과 대학생활의 관계에 대한 질적 연구’가 나왔다고 언론에서 보도한 바 있다. “교육 당국이 논술을 보는 시선은, 논술의 교육적 성격을 고려하기보다 사교육에 관한 편견이 작용해 지극히 부정적이다. 이러한 편견은 올바른 교육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장애가 된다. 논술을 공부한 학생들은 능동적인 사유와 글쓰기 경험을 통해 종합적인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시험 답안과 보고서 작성은 물론 자신을 성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유용하다”는 게 이 논문의 결론이다.

독일은 과거 나치의 만행을 반면교사 삼아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우려고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론을 교육했다. 자기 생각이 부족했기 때문에 독일 국민들은 한때 나치를 지지했고, 비극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토론, 글쓰기를 결합한 교육을 하면서 자기 생각을 확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대학입시 문제도 논술식으로 출제했다. 예컨대, 어느 정당의 정책이 타당한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었다.

논술 교육의 순기능과 사교육비의 역기능을 비교해 보면 논술을 폐지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논술은 그나마 ‘생산적인 사교육’이기 때문이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면 논술은 패자부활전이라는 교육 효과도 있다. 기존 논술시험 유형에 문제가 있다면 한국형 논술 문항을 연구해 개선하면 된다.

단언컨대, 서울대, 고려대, 서울교대는 어떤 형태로든 글쓰기(논술)를 포함한 유형의 입시전형을 부활할 것이다. 논술은 선진국형 입시전형으로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독서, 토론, 논술의 교육 효과를 검증하고, 뼈를 깎는 공교육의 노력을 통해 논술 교육을 확대하는 게 옳은 선택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권 유력 주자들이 깊이 고민해볼 대목이다.

* 이 기사는 2017년 3월 27일자 독서신문 [독일 글쓰기] 지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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