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영화-눈길·어폴로지] 기억해주세요, 그들의 아픔을. 잊지 마세요, 슬픈 역사를
[위안부 영화-눈길·어폴로지] 기억해주세요, 그들의 아픔을. 잊지 마세요, 슬픈 역사를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7.03.0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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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사진제공=영화사 그램>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나도 언젠가 평온하게 눈 감을 수 있을까?”
“나와 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
“혼자 있을 때면 그때로 돌아가. 아직 거기 있는 거야”
“사죄 받으면 상처는 안 없어져도 마음은 조금 풀어지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증언들이 이어진다. 할머니들은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열고 있다. 60대 초반, 처음 집회에 나섰던 할머니들은 어느새 90대를 바라보고 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도 239명에서 39명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영화 ‘어폴로지’의 아델라 할머니

그 긴 세월 일본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일방적인 대응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 극우 단체들은 일본을 찾은 피해자들에게 “돌아가 할망구들! 꺼져라 늙은 매춘부들! 물러가라 창녀들!”이라는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고 표출하고 있다. 이제 할머니들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영화계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관련된 영화를 제작해 전 세계 관객들이 이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조정래 감독이 10년 넘게 준비한 ‘귀향’을 통해 할머니들에게 위로를 전했다면, 올 3월에는 이나정 감독의 ‘눈길’과 티파니 슝 감독의 ‘어폴로지’가 극장가를 찾아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해맑은 웃음을 지닌 어린 종분(김향기 분)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지난 1일 개봉한 ‘눈길’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운명을 타고난 두 소녀를 통해 아픈 역사를 그린다. 1944년 일제강점기 말, 가난하지만 씩씩한 종분(김향기 분)과 부잣집 막내에 공부까지 잘하는 영애(김새론 분)는 동갑내기지만 서로 대비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영애는 학교 대표로 일본으로 향하던 중 낯선 열차로 끌려가고, 종분 또한 느닷없이 집으로 들이닥친 일본군들의 손에 이끌려 영애와 같은 열차를 타게 된다. 

어린 두 소녀가 향한 곳은 지옥 같은 위안소다. 영문도 모른 채 깜깜한 방 안에 던져진 소녀들은 쉬지 않고 찾아오는 일본군에 의해 씻기지 않는 상처를 입는다. 낯선 땅, 의지할 곳 없는 종분과 영애는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전쟁과 폭력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작은 소녀들. 이나정 감독은 두 캐릭터의 힘을 빌려 실제 피해자들의 아픔을 관객과 함께 느끼고 위로하고자 한다.

나이 든 종분 역을 열연한 배우 김영옥

종분과 영애라는 캐릭터는 분명 허구다. 하지만, 종분의 나이 든 모습을 연기한 김영옥의 현실적이고 사무치는 연기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돕는다. 가장 찬란해야 할 어린 시절,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막사로 끌려갔었지만 고향에 돌아가려는 마음 하나로 끈질기게 살아남은 어린 소녀의 모습, 함께 절망적인 상황을 견뎌냈던 친구 없이 홀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 슬픈 뒷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눈물이 맺힌다. 영화가 마무리되며 스크린에 떠오르는 ‘현재 위안부 생존자는 39명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문구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편, 오는 16일 개봉을 앞둔 ‘어폴로지’는 실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중국의 차오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의 삶을 티파니 슝 감독이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정성을 담아 촬영했다. ‘어폴로지’는 첫 장면부터 ‘역사가 위안부라 낙인찍는다 해도 우리에겐 그냥 할머니다’라며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뒤이어 지긋이 나이가 든 80~90대 할머니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 또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면 어떡하나 하는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한다.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하며 위안부 피해자의 실상을 알리고 있는 길원옥 할머니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의 문제를 넘어 중국, 필리핀 등 동아시아 전 지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루빨리 일본 정부가 사죄할 날만을 기다리며 힘든 몸을 이끌고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길원옥 할머니,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몸은 만신창이가 됐어. 더는 임신할 수 없었지”라며 덤덤히 증언하는 차오 할머니,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것을 마음 깊이 후회하는 아델라 할머니의 모습을 가감 없이 만나볼 수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2014년 스위스 제네바 UN 본부를 찾아 전 세계 1500만명의 서명을 UN 인권 이사회에 전달한 바 있다. 공식 석상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렸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수요집회는 어느덧 1500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해맑은 할머니들의 웃음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물을 가슴으로 기억해야 한다.

* 이 기사는 2017년 3월 13일자 독서신문 1619호 [영화] 지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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