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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 『열한 계단』 펴낸 채사장 "인문학 열풍 또 다른 스펙쌓기…일자리 창출 더 급해"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엄정권 기자] 열한 계단. 아침 출근길부터 지하철 타러 계단을 오르내리고 회사 계단에 발 디딜 때도 곰곰이 생각했다. 뭔가 목적지를 향한 발의 수고로움이 계단에 있고, 한 계단 오르는 게 하루에 하루를 더하는 마음 속 달력일 수도 있고, 인생의 연륜을 더하기도 하겠다. 그런가하면 오르는 계단은 필연적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왜 열한 계단이냐고?

인생의 단계를 열한 계단으로 나눠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 또 다른 지식과 교양의 세계로 안내하는 이 시대의 ‘교양 전도사’ 채사장을 만났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이 11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다. 채사장 이전에 책 제목에 감히 ‘지식’이라는 말을 넣는 배짱은 없었다. 누가 지식이라고 제목 박힌 책을 고를까. 재미 없을 것 같고 따분한 것 같은 느낌의 이 역발상 책은 대박을 냈다. 최근 몇 년새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책은 ‘지대넓얕’말고 국내 서적은 눈씻고 봐도 없다. 물론 팟캐스트를 통해 상당부분 검증된 내용이기에 독자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채사장 작가. 채 작가는 너무 어려서 책을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며 나이가 좀 든 중년 정도돼야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니 독서교육을 서두르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채사장 작가는 당대의 지적 흐름을 꿰뚫어 보았고 가지고 있는 지식 ‘서말’을 ‘구슬’로 잘 꿰었다. 채 작가는 ‘지대넓얕’이나 『시민의 교양』은 뼈대나 구조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정보의 과잉이며 결코 인문지식의 부족은 아니라는 진단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웬만한 작가들에게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채 작가는 “다만 정보가 너무 과하다 보니 구조화를 못한다는 느낌, 그래서 앨범 같은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진이라는 콘텐츠는 갖고 있으니까 분류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하나의 분야에 대해 디테일한 내용을 다룰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렵지 않게)쓸 수 있었어요.”

여기에 대박의 한가지 비결이 있는 것 같았다. 구조화, 앨범, 분류 등 단어가 기자에게 확 다가왔다. 즉 잡다한 콘텐츠를 계통을 세워 나누고 정리하고 맥을 잡아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 그러나 구조화 분류 등을 위해선 그만큼 내공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는 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글 쓰려면 무조건 국문과에 가야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강의에 재미를 못붙여 대학 내내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의 ‘넓고얕은’ 지식은 대학 도서관이 낳은 것이다.

이 정도 글을 쓰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놓지 않았어야 할 것 같은데, 채 작가는 고2때 처음 소설이라는 것을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이었다. 제목도 그럴듯하고 책도 두툼해서 일단 폼나 보였다. 여기서 채 작가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면서 남과 다른 사춘기의 신세계로 들어선다.

‘지적 대화를 위한’ 첫 걸음이 된 것은 아닐까. 이후 그는 책의 세계에 빠지고 그의 지식은 넓어졌다. 전혀 얕지 않았다. 그러면서 채 작가는 인생 열 한 계단에서 새로운 한 계단을 올라섰다. 

그런데 110만부 이상 자신의 책이 팔린 울트라슈퍼베스트셀러 작가로서는 다소 의외의 말을 들려준다. “너무 어릴 때부터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언어에 익숙해지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어렸을 때는 그 콘텐츠가 와 닿지 않거든요. 너무 어릴 때부터 많은 걸 읽히는 것도 좋지만은 않다는 뜻이죠. 책도 재미로 읽는 거에요. 소설에 학문으로 접근한 것도 얼마 안됐어요. 300~400년 전만 해도 소설은 저급하다고 여겼죠. 책은 재미로 읽어야 해요. 조기교육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린 왕자』만 봐도 동화라고 생각해서 어렸을 때 읽고나면 어른이 돼서는 읽지 않아요. 정작 어른이 읽어야 하거든요. 아무리 성숙한 아이라고 해도 체험이 있고 나서야 책을 읽을 수 있거든요. 책을 통해서는 실질적인 체험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 정도의 나이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책 읽을 수 있는 준비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채 작가와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일반 문인들과는 좀 다른 ‘결’을 느꼈다. 그게 결이라고 해도 좋고 무늬라고 해도 좋지만 어쨌든 느낌이 달랐다. 일반 글쓰는 문인들은 텍스트를 통한 타자와의 교감과 경험 전달을 중시하면서 대체로 어린 시절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채 작가는 일단 이것부터 좀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었다.

또 하나. 인문학 열풍에 대한 소견이다. 채 작가가 인문학 열풍에 기여한 게 작지 않다면서 이런 열풍이 바람직한 면이 있지 않느냐는, 별 이견이 없을 것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답은 의외였다. “지금의 인문학 열풍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부는 게 아니잖아요. IMF, 금융위기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이게 많은 현상을 불러일으켰어요. 대표적인 게 개개인의 경쟁이 강화됐다는 거죠. 90년대나 80년대에는 대학만 나와도 기업에서 모셔갔지만 이젠 경쟁이 심해지면서 학벌, 스펙, 외모까지 보게 됐어요. 구조적으로 일자리가 적다는 문제가 경쟁 심화를 불러왔죠? 그래서 인문학에 관심갖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즉, 인문학도 스펙 중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게 마치 인문학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나 분석은 잘못입니다.”

채 작가의 설명이 길어진다. “이상적인 사회를 생각해볼까요. 안정적인 일자리가 충분히 있는 사회, 중간 정도 노력해도 괜찮은 삶 영위하는 사회, 그 사회에서도 인문학 열풍이 불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취미로 하겠죠. 일이 끝난 뒤 문학과 예술에 대해 논하겠죠. 지금 한국 사회와는 분명 괴리가 있어요.”

당연히 인문학 열풍에 대한 찬사를 기대했던 기자는 머쓱해졌다. 마치 줄다리기를 하다 완전히 밀린 기분이다. 줄을 아예 놓을 순 없어 한 번 당겨 봤다. 그래서 물었다. 시민 교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성숙을 향한 교양적 밑바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인문학을 배우면? 그러나 답은 또 멀리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한국 사회가 민주적인 성과에서 퇴보하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머물러 있는 게 인문학을 몰랐기 때문인가요? 기초적인 교양이라는 건, 계급에 대한 인식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누가 내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누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인가? 정당인가? 그런 점에서 철학자나 서구의 정통 교양을 배우는 게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것을 연구하는 분들의 가치는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요.”

채 작가의 현실을 보는 눈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인문학이 사회구조를 바꾼다는 데는 회의적입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기면 우리는 누구가 시키지 않아도 예술을 논할 겁니다.” 이말을 듣고 기자는 다시 현실로 온 듯한 느낌이었다. 기자도 채 작가를 따라 한 계단 더 올라갔다. 어느 소설가의 말이 떠올랐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개소리 말아라.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펜이 약하니까 억지 쓰는 거다’라는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채 작가는 주식 단타매매의 고수다. 아니 고수였다. 수익률이 하루 0.5%였다고 한다. 돈도 벌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 갔다 사고로 친구를 잃은 뒤 주식을 끊고 글쓰기에 나섰다. 일찍 죽을 수도 있는데 너무 투자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 미국 경제상황이 주식투자 하기엔 상황이 안 좋아 접었다.

그의 현실적 발언은 이런 주식투자로 단련된 감각에서 뿜어 나오는 것 같은 포스다. 주식투자 요령을 물었더니, 20여가지의 알고리즘이 있다고 한다. 그를 바탕으로 (어쩌고저쩌고), 기자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어쨌든 그러한 익숙한 알고리즘이 말하자면 ‘지대넓얕’ 글을 쓸 때 자료를 정리 분류 계통화하는 데 영감을 주었을 것 같다.

채 작가를 만나기 위해 평창동 스타벅스 계단을 오르내렸고 사진 촬영을 위해 주변 박물관 계단도 오르내렸다. 회사로 돌아오며 또 지하철 계단을 걸어 오르내렸다. 하루하루가 계단이다. 계단은 또 다른 노동의 흔적이며 분명한 목적지를 일러주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발걸음에 익숙해져 그 목적지를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책 『열한 계단』은 그래서 걸을 만한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첫 페이지를 여는 것은 마지막 계단을 향한 용기 있는 결정이 될 것이다.

/ 정리=이정윤 기자, 사진=이태구 기자

* 이 기사는 2017년 2월 27일자 독서신문 1618호 [이 저자] 지면에 실렸습니다.

엄정권 기자  tasto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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