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아이히만 쇼’가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 “역사의 실체를 마주해야 한다”
[영화리뷰] ‘아이히만 쇼’가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 “역사의 실체를 마주해야 한다”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7.02.2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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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및 독일 점령 하의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을 체포, 강제이주를 계획·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그는 독일 항복 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짜 이름으로 은신하던 중 1960년 5월 이스라엘의 비밀정보 모사드에게 체포돼 이스라엘로 압송된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 정부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법정에 세우고, 생존자들을 증인으로 불러들여 그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전력을 다한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미동도 없이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며 관리였을 뿐입니다”, “지시에 따랐을 뿐 제 책임이 아닙니다”라는 진술만 되풀이한다.

아돌프 아이히만 전범 재판 장면

그렇게 재판이 65일째 진행되던 1961년 8월 14일, 유대인 부장검사와 아이히만의 정면 대결이 이뤄진다. 부장검사는 아이히만의 과거 발언을 심문하고, 아이히만은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며 대답을 회피하던 중 “거기까지는 인정합니다”라며 기나긴 싸움에서 굴복하고 만다. 그렇게 최악의 범죄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600만명의 학살 책임으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 판결을 받는다.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에 대해 “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라고 평가했다.

TV 제작자 밀턴 프루트만 역을 맡은 마틴 프리먼

영화 ‘아이히만 쇼’는 이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TV 제작가 밀턴 프루트만(마틴 프리먼 분)과 촬영감독 레오 허위츠(안소니 라파글리아 분)의 분투기를 그린 것.

‘아이히만 쇼’의 프로듀서 로렌스 보웬은 가려져 있던 실화를 알리기 위해 제작을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 더불어 그의 재판이 생중계됐다는 사실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 앤드류 윌리엄스 감독과 손을 잡고 이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됐다.

영화에는 당시 영국공영방송사 BBC에서 촬영됐던 원본이 그대로 사용돼 사실감을 높인다. 원본 필름과 배우들의 촬영 장면들은 교묘히 편집돼 관객들이 마치 그때의 재판장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촬영감독 레오 허위츠 역의 안소니 라파글리아 <사진제공=위드라이언>

특히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방향이 다른 프루트만과 허위츠의 대립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시청자들이 몰입할 만한, 귀 기울일 만한 쇼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프루트만과 아이히만이 언제쯤 자신의 죄를 입증할지, 단서를 잡아내기 위해 골몰하는 허위츠의 생각 사이에서 관객들은 사건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 세계 최초의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제야 겨우 발언권을 얻었다.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 이후로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전 세계가 라디오를 듣고 TV 생중계를 본다” 이들의 말대로 ‘아이히만 쇼’는 나치의 만행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는지를 낱낱이 알려줬다. 나아가 영화 ‘아이히만 쇼’는 당시 ‘아이히만 쇼’ 팀이 의도했던 바와 같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나치 학살 사건을 알리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한다.

1961년의 재판 장면은 2017년의 한국과 사뭇 닮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은 모른다”며 추궁을 피해 가는 피고인들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할 기회를 준다. 오는 3월 1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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