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진정한 청소년문학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우리시대 진정한 청소년문학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 안재동
  • 승인 2007.12.1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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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소설가
▲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표지     © 독서신문
1986년 8월 14일 정오의 하늘을 기억한다. 뙤약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번개가 떨어지고 천둥이 두 번 울었다. 작게 한 번, 크게 한 번. 이윽고 잠잠해졌다.
열다섯 살이었던 해의 한여름날, 그것도 찰나의 일기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내가 천재라서가 아니다. 속으로 바란 일이 곧장 일어나 버려 화들짝 놀란 탓이다. 다시 말해, 그 순간 내가 '날벼락이나 떨어져 버려라' 하고 염원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원하는 것에 떨어지지 않아 유감스러웠다. 그 장소와 그 장소에 있던 이들은 벼락이 치든 날든 맡은 바 소임을 다 했으니 말이다.
   위 글은 세계일보에서 제정한 5천만 원 고료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당선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의 서문 첫대목이다. 이 작품은 여류작가 정유정 씨의 장편소설로써, (주)비룡소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소설쓰기를 가르쳐 준 사람도 없다. 세상의 작가들이 다 스승이었고 열망이 인도자였을 뿐이다. 어쨌거나 2000년 여름,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나름 포부가 야무졌다. 머릿속에는 두 개의 종탑이 있었다. 신나는 모험 이야기, 겁나는 심리 스릴러, 어느 쪽 종이 먼저 울릴지는 나 자신도 몰랐다."
   작가는 이같이 밝히면서, "세 권의 소설을 내는 동안, 종탑은 서서히 잊혀졌다. 내 고민은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로 흘러갔다. 폼 나게 쓰고 싶다는 '어떻게'에 대한 집착은 나를 궁지로 몰고 갔다. 어떻게 써도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머릿속의 '무엇들'은 죄 사라져 버렸다. 나는 길과 신발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라면서 창작과정에서의 그간의  고심을 '작가의 말'에서 털어놓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삼년 전 어느 겨울 아침, 나는 두 개의 종탑을 기억해 냈다. 그날 새 노트를 마련하고 이렇게 썼다. // 만약, 우리 인생에도 스프링캠프가 있다면? // 이 한 줄의 문장을 매일 들여다보았다. 사라진 '무엇'이 거기에 숨어 있으리라 믿었다. 기다리면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오리라 믿었다.그리고 정말 말을 걸어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섯 여행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소년과 한 소녀, 할아버지와 개 한 마리. 그들과 함께 긴 미로를 헤맸다. 된통 엎어지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같은 곳을 맴맴 돌기도 했지만 조금씩 진전이 있었다. '어떻게'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몸이 가벼워졌다. 본성에 따라 움직이자 '무엇'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느새 출구에 다라라 있었다. 출구의 햇살은 눈부셨다."라고 말을 이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의 과정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의 수상소감도 퍽 인상 깊다. “상을 받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으려 기를 썼다. 기대했다가 절망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책을 읽던 중에 소식을 들었으면, 했다. 감사합니다, 우아하게 말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어야지, 했다. 그러나 막상 당선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욕실 변기를 박박 문지르는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다."
  이 책은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으로 제1부 '자정의 불청객들', 제2부 '긴 하루', 제3부 '머나 먼 바다', 제4부 '비밀', 작가의 말, 심사평 등으로 엮어져 있다.
 
나는 줄곧 혼자였다. 세 인간과 검둥개는 한편을 먹었다. 승주는 허수아비의 밀짚모자를 훔쳐 쓰고 할아버지와 정아의 호위를 받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놈의 입은 한시도 쉬지 않고 내 속을 뒤집고 긁었다. 규환이와 친한 꼴을 못 봐서 질투하는 쪼다라느니, 건수만 생기면 자기 엄마 흉을 본다느니, 더럽게 옴에 걸려 와서 자기한테 옮겨 준 적이 있다느니, 잔머리 구 단, 내숭 십 단, 삐치기 백 단짜리 좁쌀영감이라느니·····.
그러면서 떠드는 틈틈이 뭔가를 먹고 마셨다. 비닐봉지 뜯는 소리와 캔 뚜껑 따는 소리는 텅 빈 내 위장에 불을 질렀다. 기차역 매점에서 돈을 얼마나 써 댄 것인지, 할아버지는 배낭에서 끊임없이 먹을거리를 분배하고 있었다.
외롭고 분했다. 돌아서서 따지고 싶었다. 박정아, 너 이래도 되는거야? 난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나 지금 무지막자하게 화났어. 상처받은 쪽은 나란 말이야, 승주가 아니라 나.
                                               ―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제2부 '긴 하루' 일부
 


▲ 정유정 소설가     © 독서신문
  세계일보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심사를 맡은 김주연 문학평론가와 서영은 소설가는 "당선작으로 뽑힌 정유정 씨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한번 손에 들면 놓을 수가 없다. 숨 가쁘게 읽힌다. 청룡열차를 탄 것 같다. 문자로 형상화된 속도, 그것이 이 소설의 실험적 메시지다. 한 노인과 한 소녀, 그리고 두 사람의 소년, 루스벨트란 이름의 사냥개. 각각의 이유로 왜곡된 현실의 사슬을 끊고 탈출하면서부터 쫓기는 입장이 되어 길 위에서 만난 도망자의 한 무리. 이들은 노상으로 나서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사건과 맞닥뜨리며 모험을 계속하게 된다. 서울을 벗어나 남도로 내려가는 그 빤한 길을, 일대 모험의 장으로 바꾸어 가는 작가의 익살스럽고 재치 넘치는 활달한 필치가 농익은 서사의 맛을 제대로 보여 주는 마술과 같다." (중략) 심사위원에 따라, 사건의 개연성이나 리얼리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부분도 있으나, 디지털 시대의 경계를 허무는 상상의 활력으로 당당하게 재미를 추구한 이 작품의 성과는, 그와 같은 지엽적 결함을 덜고도 남음이 있다."라고 심사평을 적고 있다.  
   
또, 이번 심사의 '소장들 심사평'(김경연 문학평론가, 이순원 소설가, 원종찬 문학평론가, 은희경 소설가, 안도현 시인)을 살펴보더라도, 그 맥락이 유사함을 감지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여로(旅路) 형식의 작품으로서 모험적인 줄거리가 작가의 경쾌한 입담에 실려 있어 무척 재미나게 읽히는 장점을 지녔다. 소년 주인공의 행로가 처음엔 작은 빌미로 시작하지만 제각각 사연을 지니고 우연찮게 합류한 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뒤로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짜임새이다. 쫓고 쫓기며 온갖 사건들에 휘말리는 과정이 앞뒤로 매우 정교해서 뒷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속도감을 더해 준다. 인생은 누구나 예상치 못하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휘말린 짧은 여행에 나름의 필연성을 부여하고, 시대와 인간과 풋풋한 사랑을 새겨 넣은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이 작품은 우리 청소년 문학의 발전에 좋은 자극이 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다."
 
   첨단, 다매체, 멀티미디어의 홍수시대라고나 할까, 우리시대에 넘치다시피
▲ 안재동 시인·평론가     ©독서신문
수많은 볼거리 읽을거리들이 있지만 그중 청소년을 위한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이며 또한 몇이나 되던가? 물질만능의 풍조에 편승하여 온 세상에 흥행위주의 갖가지 작품들만 난무하지는 않는지...? 현 세태가 이러하니, 청소년의 순수한 정서를 제대로 지키고 함양하며 미래지향적인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참으로 절실한 상황이 아닐 수 없겠다.
   정유정 작가의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야말로 그런 역할을 하기에 '딱' 맞는 한 편의 좋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면서, 어떤 형태로든 우리 주위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이 책이 한번 쯤 일독되어질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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