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영 칼럼] 토끼는 달리고 새는 날아야 한다
[황태영 칼럼] 토끼는 달리고 새는 날아야 한다
  • 독서신문
  • 승인 2017.01.20 08: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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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대한북레터협회장 / 희여골 대표

[리더스뉴스/독서신문] 토끼는 달리기를 잘 한다. 그러나 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나무위에서 떨어뜨리면 다리가 부러져 달릴 수도 없게 된다. 잘 나는 새에게 두더지처럼 땅 파는 기술을 배우라고 하면 날개와 부리를 다쳐 날지도 못하게 된다.

토끼, 새, 두더지에게 달리기, 날기, 땅파기 세 과목 시험을 다 치러서 등수를 매긴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각자 3분의 2는 원하지 않는 것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야하고 고통스럽고 힘들 것이다. 평준화된 성적은 창의성을 사라지게 하고 사회적 손실도 그만큼 커지게 될 것이다.

1986년 1월 15일 전교에서 1등을 하던 여중생이 자살을 했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 봉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있고 행복한 거잖아….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난 눈이 오면 한껏 나가 놀고 싶고…. 산이 좋고, 바다가 좋고….>

그로부터 20여년 후 또 남들의 부러움을 받던 한 외고생이 투신자살을 했다. 엄마가 요구하던 성적에 도달한 직후였다. 엄마에게 남긴 유서는 단 네 글자였다. “이제 됐어?”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던 초등학생부터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다’며 괴로워하던 자율형사립고 전교 1등생까지 성적을 비관한 자살이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수다 떨며 마냥 웃어야만했을 젊음이었다. 부모님의 사랑과 친구의 우정을 등지는 극단적 선택을 할 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장 꿈 많고 밝아야 할 시절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버려야만 하는 한 맺힌 통곡과 절규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어릴 적에는 순서를 매기지 않는다고 한다. 예컨대, 숙제를 낼 적에도 사과나 꽃을 그려오는 게 아니라 ‘즐거운 우리 집’을 그려오라는 식이다. 누가 잘 그렸고 못 그렸고를 판가름 낼 수도 또 판가름 해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정답이다. 순서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 창의적으로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기만 하면 된다. 프랑스에는 ‘1등을 위한 질주’, ‘자살’, ‘왕따’, ‘거지 밥’ 같은 것은 없다. 가장 맑고 발랄해야 할 시기에 아파트 평수를 기준으로 친구를 나누고 경쟁에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며 패배한 자를 지배한다고 배운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러한 적자생존의 논리만 배운 아이들에게 토론과 설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아이들이 지도자가 된다면 법과 제도는 흉기로 변하고 사회는 탈법과 불법에 무감각해지게 된다. 스펙을 쌓기 전에 먼저 품성을 쌓아야 하고 스펙을 보기 전에 먼저 품성을 보아야 한다.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 오로지 명문대 진학을 위한 암기식, 찍기식 교육이라면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와 같은 도전과 창조를 즐기는 괴짜도 길러낼 수가 없다.

세계최고의 공교육을 자랑하는 핀란드는 모든 학생이 같은 속도로 같은 내용을 공부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또 교사들은 공통의 학습목표만을 공유할 뿐 수업계획을 지시받지도 표준화된 시험을 요구받지도 않는다. 등수를 매기지 않고 우열반도 없다.

주입식이 아니라 토론 위주의 교육을 한다. 경쟁과 이기심보다는 함께 협동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체득하도록 한다. 인성에 중점을 둔 교육은 양심을 속이는 파렴치한이 없는 최고수준의 행복국가를 만들었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경제도 행복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제는 아이들을 입시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창의력을 살려주어야 한다. 서울대를 폐지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산과 바다를 돌려주어야 한다.

토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걱정을 하지 않고 새가 땅을 파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부패한 천재가 아니라 상상력이 풍부한 괴짜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성적이 아니라 도전과 창의정신이 세상을 바꾸어왔고 또 바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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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락 2017-01-21 09:10:21
작가님의 좋은글을 읽으며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절감합니다. 새시대에는 꼭 필요한 정책이라 생각하고 이 중요한 개혁을 이룰수 있는 후보자는 박원순밖에 없다라고 결론 지어지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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