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아직도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
  • 김혜식
  • 승인 2007.12.1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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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조 ‘아침 뻐꾸기’ 시집에서
▲ 김혜식(수필가)     ©독서신문
어느 사석에서 일이다. 지날 날 내 가슴에 손톱자국을 남긴 그녀는 당돌하게도 날보고 언제부터 헤어스타일을 바꿀 생각을 했냐고 물어왔다. 그녀의 질문에 난 거침없이 말했다. 당신한테 마음의 상처를 입는 순간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선택한 외모의 변화였노라고.

 사실 그랬었다. 이런 방법으로라도 난 상처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여자의 심경의 변화를 읽으려면 헤어스타일을 눈여겨보라는 말도 있잖은가.
 내가 속한 어느 단체에 갑자기 중책을 맡게 됐다. 그때 나는 이 여인에 의해 음해와 모함을 받았던 일이 있다. 처음엔 그 사실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릴 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었었다. 한편 평소 내게 얼마나 많은 열등감을 지녔으면 그런 비열한 방법으로 날 짓밟으려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달래기도 했었다.

 지난날 그녀는 자신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손을 내민 여인이었다. 그런 연유로 누구보다 믿었던 사람이기에 나는 그녀의 배신 앞에 분노로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애써  ‘용서’라는 알량한 자비를 내세워 내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에 이르렀다.

 처음 ‘용서’라는 단어를 내 마음에 들여놓았을 땐 가슴이 얼얼했었다. 마치 심한 상채기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그것은 그녀의 잘못을 도저히 용서할 수없는 나의 분노 때문이었다.

 흔히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예전보다 내 마음은 많이 안정 된 듯 하지만 그녀를 대할 때마다 나는 지금도 그녀가 안겨준 상처가 자꾸만 덧나 가슴이 아리다.
 인간이 살면서 본의 아니게 입게 되는 마음의 상처, 그 고통이 얼마나 크면 문학 작품에도 종종 상처에 대한 내용이 등장할까 싶다. 그만큼 상처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심리적 영향을 끼치고도 남음이 있나 보다.
 현재 중국 로양 대학 석좌 교수며 시인, 평론가, 문학 박사이기도 한 성기조 시인의 『아침 뻐꾸기』시집에도 ‘상처’에 대한 시가 표현 됐다. 
 
 꽃잎을 따 상처에 문질렀다/ 핏빛 꽃물이 앉은 자리에서 통증이 왔다/아픔이 가슴을 뚫고 사라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인내/ 상처는 영광도 아니었다
 
 인간의 마음은 늘 오욕칠정에 얽매여 고른 숨결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시기, 질투라는 마음의 손톱까지 갖춘 인간은 그 날카로운 손톱으로 항상 남의 가슴에 상채기를 남길 자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오장육부엔 심술이라는 노폐물이 쌓여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것은 심장, 신장, 간에도 악영향을 끼쳐 본인의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남을 사랑하면 아름다워짐은 물론, 몸도 건강해진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또한 음해, 모함, 가시돋힌 말 한마디 등은 때론 인간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한다. 그런 행동은 가슴 깊이 각인돼 자칫 또 다른 상처를 준비하게 한다. 즉 상처 입은 자는 그것에 버금가는 응대를 마련하지 않던가.

 허나 성기조 시인은 상처가 안겨주는 고통을 초월하려 애쓰는 모습이 이 시에 역력하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용서’라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그 상처를 봉합하려 한다. 하지만 불완전한 게 인간이기에 용서로 상처를 싸맬 때마다 심한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흐르는 세월에 상처의 아픔을 맡기고 통증이 사라질 날을 기다리지만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그 아픔은 더 해만 가는 눈치다. 부처님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고 있다.

 상대가 입힌 상처에 의연한 척 하나 실은 그것이 허위의 가리개였다. 용서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짓밟힌 자존감을 높이려 애쓸수록 고통에 의한 신음만큼은 숨길 수 없다. 그럼에도 흔히 우린 상처에 대한 분노를 온 몸으로 끌어안은 채 ‘용서’라는 말로 안위를 삼으려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녀의 잘못을 얼마만큼 용서하고 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보니 실은 용서가 아니었다. 아직도 내 가슴 속엔 그녀에 향한 분노가 마그마처럼 들끓고 있었다. 늘 가슴 속엔 분노의 앙금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의 결미엔 ‘상처는 영광도 아니었다’라고 했다. 그것은 어쩜 보상받지 못한 상처의 대가에 대한 간절한 희구가 아닐까 싶다. 깊은 상처의 대가는 역설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이다.
 상처 입은 가슴을 달랠 방법은 오로지 사랑이다. 하여 오죽하면 성기조 시인은 꽃잎을 따 상처에 문질렀다고 하였을까. 이 시속의 꽃잎은 사랑이 아니던가. 우리들 가슴 속에 그 꽃잎이 시들지 않는 한 아직도 우린 사랑할 시간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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