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 “나는 대리인간이었다”
[리뷰]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 “나는 대리인간이었다”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12.26 00: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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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대리사회』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핸드폰에 ‘카카오드라이버(기사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그것을 실행하면 나의 핸드폰은 주변의 대리 호출을 받을 수 있는 단말기로 변하고, 손님과 만나고서는 마치 택시의 요금 미터기처럼 된다. 호출받는 것을 ‘콜’이라고 한다. 콜이 오면 핸드폰의 화면을 그 알림이 가득 채운다. 손님이 주변 몇 미터 근방에 있는지, 목적지는 어디이고 예상 요금은 얼마인지 하는 것이 모두 표시된다.”

“나의 첫 ‘사장님’은 차의 조수석을 반쯤 젖혀놓고는 잠들어 있었다. 그에게 인사하자 그는 “아저씨, 뭐 이리 오래 걸렸어요, 출발하세요” 하고는 돌아누웠다. (중략) 목적지인 그의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 “사장님, 도착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잠에서 깨어 손가락으로 지하 주차장을 가리켰다. 빈자리를 찾아 몇 바퀴를 돌아 주차를 하고는 운행을 종료했다. 첫 운행을 무사히 끝내고서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무엇보다도 맡겨두었던 나의 몸도, 호칭도, 다시 되찾은 것 같아 더욱 소중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통해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삶,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 사회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던 김민섭 작가가 대리기사로 변신했다. 그는 2015년 12월, 8년간 몸담았던 대학을 그만두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고는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가장 좁은 공간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봤다. 차 안과 바깥을 구분하지 않아도, 두 공간은 마치 서로를 축소하거나 확대해 놓은 듯 닮아 있었다. 그는 타인의 공간에 침투해 수백 차례나 운전대를 붙잡으며 “나는 그동안 대리인간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 한 사람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서 현상을 바라보거나 사유하지 않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법을 점차 잊어가고 있었다. 대리사회의 통제에 익숙해진 듯 대리인간으로 살고 있었다. 작가가 대리운전을 하며 ‘행위(액셀과 브레이크를 밟고 깜빡이를 켜는 간단한 조작)’, ‘말(손님에게 먼저 말을 건네지 않는다는 관행)’, ‘사유(아무 생각 없이 운전만 하는 행위)’ 3가지를 통제받은 것처럼 사회는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검열, 통제하고 있었다.

<사진제공=와이즈베리>

하지만, 그는 좌절할 필요는 없다 말한다. 오히려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켜 세우는 이들(“선생님의 차라고 생각하고 운전해 주십시오”,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기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며 자신과 타인을 함께 주체의 언어로 표현하는 이들)과 함께 대리사회의 괴물을 마주하면 되는 일이다. 온전한 나로서 사유하고, 또 주변의 또 다른 나를 주체로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는 이제 대학의 연구자가 아니라 거리의 언어를 기록한다. 전작이 ‘문’이었다면 이번 책은 ‘시작’이다. 앞으로 그가 써내려 갈 르포 문학이 기대된다.

■ 대리사회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펴냄 | 264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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